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욕심은 악한 것으로 취급받아왔습니다. 그리고 무리한 경쟁시대로 인해서 이제는 욕심을 내기보다는 많은 것을 포기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 꿈이 무엇인지.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 아예 떠올리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직 꿈을 찾지 못했어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의욕이 없어요.
하고 싶은 게 없어요.
하지만 그게 우리의 모습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과 희망을 놓아야 괴롭지 않다며 그렇게 살아간다. 삶의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사는 대로 사는 시대의 씁쓸한 그늘이다. 욕심을 악으로 생각하면 외면할 수 있지만. 그것은 포기를 위한 방어막이 되어줄 뿐. 착한 욕심마저 포기하면 인생에 의미는 없다.
착한 욕심.
욕심에서 안 좋은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그러나 착한 욕심은 모든 것을 개선한다. 나 자신을 개선하고. 사회를 좀 더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게 된다. 과거와 다른 내일. 그리고 미래가 있다.
만약 집집마다 스마트폰, 노트북이 있는 현재와 달리. 지금도 핸드폰 하나가 직장인 몇 개월치 월급에 해당하거나. 노트북 하나가 소형차 값과 맞먹는다면 어떨까?
작은 병에 걸린다고 하더라도 약 한병 쓰지 못해 사망에 이르는 시대라면 어떨까? 이 모든 것은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한 수많은 도전의 결과이며. 만약 도전이 없었다면 전 세계로 번져나갈 기술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착한 욕심은 무언가를 조금 더 낫게 만든다. 무언가가 나아지기 시작하면 삶에 희망이 생긴다. 지금 하는 행위들이 무의미한 행동들이 아니라 목적의식도 생기게 된다. 그러나 착한 욕심은 지나친 욕심과 구별되지 못하고 억제의 대상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꿈이 사라진 이유.
꿈이 사라지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스스로 해본 게 없는 경우.
둘째. 해도 안된다는 실패를 믿는 경우.
만약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모든 것을 선택해주었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히 스스로 해본 경험의 기회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또한 해도 안된다는 실패만 경험하게 된다면. 이번에도 안될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인식이 다르다면 스스로가 변화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익숙한 것에 끌리고 어제와 같은 오늘에 젖어있게 되므로 꿈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꿈이 없다는 것.
꿈이 없다는 것은 삶의 이유라는 뿌리가 흔들리는 것이다. 꿈은 강요될 수 없으나 누구나 가질 권리는 있다. 현재 상황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이루게 될 꿈이라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럼 아무리 현재 힘든 일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고난을 극복할 힘을 얻게 된다. 고난을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닌 힘이다.
물질이 풍요로우면 풍요로울수록 꿈도 커질 것 같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편하면 편할수록 꿈은 사라지고 과거와 다르지 않은 정체된 사회로 나아가며. 그런 것이 인정받는 상황이 된다. 나 자신이 꿈을 잃기 좋은 환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사람마다 실력과 운, 그릇이 다를 수 있지만. 무엇을 하든 사람은 계속해서 개발하게 된다. 아무리 나이가 많은 노인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분야를 매일매일 실행한다면 그 영역은 무조건 확장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에너지가 넘치는 어린이 혹은 청년은 어떨까.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은 없다. 시간은 흘러간다.
꿈이 없는 사람은 주변에 꿈이 생기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 도전하는 사람에게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걱정해주는 척하며. 겁을 은근히 불어넣어준다. 어차피 할 거라면 된다고 생각해야 하지만. 안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일을 하는 내내 생각이 든다. 그럼 될 일도 안된다.
삶의 다양성. 그에 따른 가치.
각자의 삶엔 가치가 있다. 가치가 없는 삶은 없다. 만약 내가 현재 힘든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그 인생엔 가치가 있다. 어려운 일을 겪으면 겪을수록 겸손해지며.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힘이 생긴다. 그럼 자신 안에만 갇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경청하며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다.
꿈이라는 단어가 너무 허망하다는 사람도 많다. 어른이 되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당당히 말하곤 한다. 그러나 무엇을 바라보고 살건 사람마다 선택의 자유가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다.
우리는 자동차 운전을 하며 도로로 달린다. 그런데 도로 밖의 엉뚱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달린다면 어떨까? 심각한 사고에 이를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내 삶의 초점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 곧 나고. 행동하는 것도 나다. 그러므로 힘든 일 가운데서 가치를 찾아내는 것도 스스로의 몫이 된다.
착한 욕심은 시선을 기다린다.
무언가 매력적인 것을 보면 사람은 심장이 뛴다. 이성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다. 아니면 직장 혹은 철학, 종교가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나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제공한다. 수단과 방법을 모두 총동원해서 자신의 영역 안에 그것이 존재하길 바란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착한 욕심이 있는 사람은 크게 개념치 않는다. 착한 욕심은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기회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제공해준다.
그래서 욕심이 없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내가 먹는 밥, 집, 자동차 등. 물질적인 것들 역시 과거에는 밥을 굶었고, 내가 살 집이 없었으며. 자동차는 마을에 한대가 있었던 시절이 있다. 만약 그런 시절이 추억이 아닌 현실이 된다면. 과연 어떤 누가 좋아할까? 이 모든 것은 작은 착한 욕심이 모여 사회의 개선을 불러온 것이다.
우리는 보이는 모든 것에서 매력을 느낀다. 대부분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나 역시 그러므로 인간의 한계는 분명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본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갖기란 무리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지나친 욕심을 피해야 하는 것이다. 그저 분야를 정하기 위해 시선은 항상 그곳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기 때문이다.
삶은 단 한번.
로또가 가능성이 낮다고 하지만. 인생을 두 번 살 확률에 비하면 놓은 편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두 번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불가능하다. 그러나 로또는 매주 리셋이 된다. 확률이 높은 편이다.
만약 삶이 단 한 번이고. 다음 주, 혹은 내일 내가 죽는다면 어떨까? 아마 오늘부터 초비상이 발령될 것이다.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일 등.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평소엔 그렇지 않았으나 삶이 저무는 상황에서 더욱 욕구가 생긴다.
하지만 그런 극한 상황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는 같은 날이다. 시간이 차고 넘칠 때 아무것도 안 하다가. 결국 중요한 순간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일에 기웃기웃하게 된다. 이렇게 한 해. 두 해. 넘기게 되면 머지않아 그 일은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단 한번 사는 삶의 의미를 배우지 못한다면 반드시 뒤늦게 후회하게 된다. 안락사가 합법인 나라에서도 안락사 직전에 삶의 이유를 찾아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전까지 덧없이 보이던 삶이 마지막이라고 하니 그 짧은 순간에 진짜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것도 더 절박하게.
착한 욕심은 모든 것을 바꿀 힘이 있다.
포기하면 편하다. 그러나 당분간이다.
포기한 사람은 극심한 자격지심에 시달리게 된다. 반대로 쟁취한 후에 헛됨을 아는 것은 교훈을 얻는다. 해보지 않고 말로만 하는 것과 해본 후에 피드백을 얻는 것엔 이런 차이가 있다.
그래서 무언가 조언을 얻을 때는 무언가 해본 사람에게 얻는 것이 맞다. 아무런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면 당연히 부정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며 불안감을 조성한다.
일본은 이제 잃어버린 30년에 이르게 된다. 만약 30년 전 불황이 올 당시에 20대였다면.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30년 동안 포기만 하고. 욕심을 악으로 여겨 어느 것도 경험하지 않았다면 어떨까? 몸은 어른이지만. 생각하는 것은 그저 어린 상태 그대로 일 것이다. 상처도 쉽게 받기 때문에 움츠려들 뿐. 착한 욕심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것이 내 삶을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다. 진짜 자신의 모습을 모르는 상태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 진짜 내 모습이 훼손되는 것을 지켜보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스펙 혹은 외모보다 중요하다. 진짜 내 모습은 누구도 훼손할 수 있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
지나친 욕심은 큰 화를 부른다.
그러나 착한 욕심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살고. 매일이 가슴 뛰는 삶으로 인도해줄 것이다.
지나친 욕심 - 나와 남에게 화가 미친다.
착한 욕심 - 나와 남에게 이로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