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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평김한량 May 27. 2019

나의 진짜 모습에 적응하기

사람에겐 천성이 있다. 타고난 성품을 말한다. 그 성품대로 살게 되면 마음이 편하다.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나는 천성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무언가 모를 신나는 삶을 동경하고 살았다. 어린 시절의 그 느낌을 찾고 싶었고. 남들처럼 키덜트로도 살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보상심리에 불과했다. 이미 세상은 변했고. 그에 따른 추억일 뿐이다.


천성적으로 무언가 탐구하는 걸 좋아한다. 무언가에 빠지면 그것에 대한 결판이 날 때까지 그만두질 않는다.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고. 많은 만류로 인해서 스스로가 타협점을 찾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천성을 억누르는 일이었고. 끈기가 장점인 나의 모습을 희석하는 결과를 낳았다.


누구나 천성을 되찾아야.


자신의 진짜 모습은 누구도 잘 모른다. 자신의 천성대로 살기보다는 세상과 타협하며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대손손 자신의 천성을 억누르는 법을 배운다. 그 결과 자손에게 천성을 살리는 법을 가르쳐주지 못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걸 남에게 가르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천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먼저 고민과 실행 그리고 그에 따른 피드백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시도가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시간이 필요하다. 고민 없는 시도엔 결과도 없기 때문이다.


여유 있는 시간 확보는 기존의 것들에서 많은 포기를 요구한다. 그 포기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히 하고. 포기한 것 안에 새로운 것을 넣어야 한다. 지금의 것을 모두 가져가면서 새로운 것을 해볼 수는 없다. 시간이 없는 것이 주된 요인이다.


30대 40대 50대까지 방황하는 이유


계속해서 방황하는 이유는 인생을 숙제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정해준 숙제. 사회가 정해준 숙제만 풀다 보니 책상에서 떠날 수 없었다. 그러나 숙제는 어디까지나 교과서 범주이며. 교과서는 모든 사람을 위한 맞춤이 아니다.


결국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정해준 답을 찾는다는 것은 천성과 무관한 것으로 너무 오랫동안 지속될 경우 부작용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 시간 해볼 수는 있지만 오래 하게 되면 점점 자신이란 누구인지 잊게 되고 직책과 책임을 자신으로 혼동하게 된다.


스스로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책임과 숙제가 자신임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개선하기 힘들다. 남이 시켰기 때문에 남이 그만두게 해야만 비로소 멈출 수 있다. 그게 바로 퇴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지만 그때는 늦는다. 그때부터는 누구도 나에게 무언가 정해주질 않는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직책과 책임이 없어졌기에 자유가 아닌 난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무너질 수 있다. 그걸 알기에 또 퇴사 또한 마음대로 하기 어렵다.


자신의 진짜 모습에 적응하기.


이미 우리는 너무 높은 기준으로 스스로를 채찍질 해왔다. 꿈도 비슷하고 목표도 비슷했다. 남들이 하는 건 다 해보려고 발버둥 쳤지만. 남에게 비교가 될 뿐 신나지도 않고 미래는 두렵기만 했다.


그러나 나란 존재의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좀 덜 불안하고 자신의 모습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먼저 사람에겐 희로애락이 기본이다. 여러 가지 고민이 있는 만큼 즐거움도 있고. 아프기도 하고 건강하기도 하다. 우리에겐 이렇게 양방향을 경험할 권리가 있다.


자신이 아프다면 멈추기도 하고. 승승장구한다면 마음껏  달리기도 하고 각자의 리듬이 있는 것이다. 다른 이의 리듬과 나의 리듬을 완벽히 맞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 억지로 사회 규범과 남을 맞추려고 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나의 리듬이 다른 사람의 리듬과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이의 리듬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의 리듬도 존중받아야 한다.


남이 정해준 매뉴얼을 따라 하기도 멈춰야 한다. 취직과 창업 역시 매뉴얼만 따르다가 이젠 퇴사 조차 학원 강의처럼 매뉴얼을 따른다. 자유를 위해 살지만 결국 남의 옷을 바꿔 입을 뿐 색깔만 다른 같은 길을 걷게 된다. 그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과거의 길로 다시 되돌아 가버린다.


먼저 어려움이 없길 바라는 태도에서 우린 약해지게 된다. 리듬 구간에서 어려운 구간이 오면 긴장되는 비트와 함께 힘든 순간이 오기도 한다. 정말 밑바닥일 것 같기 때문에 우리는 그곳에서 탈출하길 원한다. 그러나 그건 진짜 바닥으로 이제 상승기류가 코앞임에도 그때 포기한다.


그 리듬을 알게 되면 어려울 때는 이 또한 지나갈 것을 알게 되고. 그 어려움 속에서 고민을 통해 자신을 알 수 있게 된다.


노는 것. 먹는 것이 나 자신인가?


노는 것과 먹는 것이 행복인 줄 알고 많이 쫓게 된다. 소확행 역시 잠시 해보았지만 그건 잠시뿐 현실이 되면 또 불안해진다. 어차피 해도 불안하고 안 해도 불안하다면 그건 과연 해야 할 일일까.


우리는 나가 뭘 하고 놀았고. 무엇을 먹었는지 끊임없이 집착한다. 내 자신에 대한 본질을 깨닫기 위한 시간보다 지금 잠깐의 오감을 위해 모든 걸 바친다. 요즘엔 그 값도 비싸서 그걸 하기 위한 하루를 위해 일주일을 일해야 할 수준에 이르렀다. 결국 난 놀기 위해 일하게 되고. 짧은 즐거움을 위해 긴 시간 고통에 빠지게 된다.


나의 진짜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일단 몸이 가벼워야 한다. 책임이 많아지고 할 일이 많으며. 유지비용이 많이 들 수록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시간 역시 없기 때문에 진지한 고민을 할 틈도 없게 된다.


만약 스스로가 느끼기에 왠지 모를 압박감이나 부담을 느끼며 산다면 무언가 털어낼 것이 많은 것이다. 그리고 마땅한 취미도 없고 수십 년간 미뤄놓은 꿈만 있다면 그건 어린 시절 환상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진짜 내 모습을 찾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습관은 무섭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유지해온 것은 떨쳐내기 힘들고 이미 습관이 내 모습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바꾸기 힘들다.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만 가능하다. 미루면 미룰수록 어려워진다.


몸이 가볍다는 느낌.

높은 유지비가 들지 않는 삶.

자신이 만든 미래의 두려움이 없는 것.

다른 사람의 리듬과 나의 리듬이 다름을 인지.

혼자 있어도. 여럿이 있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관계.


등등.


이 과정들이 이뤄지고 진행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순간들이 오게 된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익숙해지면 속도 편안하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눈도 편안해지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진짜 모습에 익숙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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