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외로운 우리의 계급사회.
공감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불안으로 감정은 사치라고도 말합니다. 우리는 공감을 원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올바로 표현할 곳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모이면 서로의 감정을 숨기기에 바쁩니다. 솔직히 말하게 되면 손해 본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이상합니다.
우리는 외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사람들이 모이면 서열을 정합니다. 먼저 직급 순서로 나눕니다. 이것은 일종의 계급과도 같습니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기분은 낮은 사람은 낮은 사람대로. 높은 사람은 높은대로 외로움을 느낍니다.
직급이 없는 경우 나이로 나눕니다. 한 살이라도 더 많으면 윗사람입니다. 아래위가 나뉘게 되면 모두가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보단 체면치례 하기에 바쁩니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
삶에서 만족도가 높은 국가들은 대부분 유럽과 동남아에 치우쳐 있습니다. 한쪽은 복지가 잘되어 있고 개개인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편입니다. 동남아의 경우 가진 것은 없지만 모두가 함께 즐기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제 우리는 삼시세끼 먹을 수 있고. 외롭다고 하지만 만날 사람은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식사량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인구가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함정에 빠져 사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결코 개개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온 사회적 합의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사람들 안에서 무언가 공통점을 찾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특이하다고 정의 합니다. 그 문화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 느끼는 이질감은 큽니다. 그것은 다양함을 존중하지 못하기에 나타납니다. 일원화된 '통일된 것'을 좋아하는 조직 문화 특성상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입을 다물고 살아야 합니다.
정말 특이한 상황입니다.
회식자리엔 모두 가기 싫어하지만 열외 없이 모입니다. 그 회식자리에서 으쌰 으쌰 하지만 '언제 돌아갈지'만 생각합니다. 회식을 주최한 사람도 외로울 수밖에 없고. 모여 있는 사람도 외로운 자리입니다.
우리가 모여 사는 이유는 분명 서로가 필요할 때 함께 힘이 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을 위한 개개인이 되어 희생을 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어느 누가 조건 없는 희생을 강요하는 자리를 즐거워할 수 있을까요? 모임이 즐겁지 않다면 그 자리는 존재할 필요가 없고. 개개인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곳에 강제로 끌려가 시간을 보낼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대중 속의 외로움은 공통의 문제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가치 존중을 받으면 무언가 느리게 움직여 보입니다. 그러나 빠르지 않기 때문에 천천히 움직이면서 조율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만약 행복하지 않은 이가 있다면 돌볼 수 있는 타이밍이 있습니다.
개개인은 행복을 위해 삽니다. 그것은 단순히 밥을 먹거나 물건을 사는 만족만으론 부족합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고. 억울한 일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마치 불가능한 것처럼 치부합니다.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언젠가는 은퇴합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어디든 존재합니다. 지금은 내가 다수일지 모르지만. 어디에서는 소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남을 배려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행복하고자 한다면 이런 문제들이 풀려야만 나 역시 사회에서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조직에 맞게 뜯어고쳐 사는 삶은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내 행복을 다른 사람의 시간으로 대체할 수도 없습니다.
달라질 수 있을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회가 점점 변하는 것을 느낍니다. 이전에 비해서 나이로 인한 차별을 조금 덜 받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반말로 시작하는 경우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나이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조직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회식문화는 2차 3차로 이어지던 것이 1차에서 마치는 것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좀 더 선진화된 시스템을 갖춘 경우엔 영업시간 외에 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각자의 휴식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죠.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것이 비록 느려 보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좀 더 빠르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삶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작은 부분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도록 환경이 될 때 더 많은 기회도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친구를 사귈 수도 있습니다.
나이와 계급이 사라진 곳에선 모두가 친구로 우정을 나눌 수 있습니다.
'양평 김한량' 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