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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평김한량 Mar 05. 2016

인기 없는 사람이 반장 되는 법.

초등학생의 꿈을 향한 도전.

그래서 반장이 됐어?


아내는 실패 끝에

결국 성공했는지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응. 나중에 됐지만.
처음 선거를 나간 네 번은
계속 떨어졌지.


정말 가능성은 없어 보였어.
처음 나갔을 때.

내가 스스로 나를 뽑았는데.
기적적으로 한 표가 더 나와서 2표가 됐어.

지금 20년이 지나서도 가장 궁금한 건
바로 그 친구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야.


살아가면서 모든 일이 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반장이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92년부터 1999년까지 약 7년이 걸렸다. 다른 사람 같으면 포기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첫 반장선거로 돌아가 본다.


 저를 반장으로 뽑아주신다면.


으로 시작한 나의 선거연설은 아무도 설득하지 못했다. 물론 열심히 연습을 한다고 했지만. 그 당시엔 연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너무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반장이 될 수 없었다. 최근에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당시 학급 회장 (반장) 선거는 첩보전을 보듯 치열했다. 그리고 단순히 아이들의 경쟁이 아니라. 부모님들의 눈치 경쟁 또한 치열했다.


나는 어머니께서 '반장을 해라.' '공부를 잘해라' 같은 강요를 한 적이 없다. 어린 시절에는 좋아하는 것을 보면 정신 차리지 못하는 망아지처럼 뛰어놀기만 했다. 다른 친구들의 반장 준비는 달랐다. 말끔하게 신사처럼 차려 입고. 2대 8 가르마를 하고 선거를 했다.


투표를 시작했다. 당시 친구들의 이름은 '철수' '짱구' 정도로 가칭을 해보겠다.


"철수"
"짱구"
"짱구"
"철수"

"짱구 짱구 짱구 철수 짱구 철수 철수 철수.. "


이렇게 이어지는 투표 발표엔 내 이름은 없었다. 단순히 철수와 짱구의 박빙이었다. 투표용지를 뽑으며 읽던 친구가 갑자기 종이를 펼치더니 내 이름을 불렀다.


준태.


 물론 그 투표용지는 내가 찍은 것이다. 나는 내가 찍어서 1표를 얻었다. 계속 짱구와 철수의 박빙은 계속되었다. 당시 한학급에 50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투표를 했기 때문에 투표용지를 읽는 것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마지막 한 장이 남았다.


준태.


 완전히 의외의 결과였다. 나는 갑자기 나 외에 한 명이 궁금했다. 나는 저학년 때. 학급에서 그다지 인기가 없던 아이였다. 선생님께 미움도 받고 있던 터라 딱히 친구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나를 믿어준 단 한 명의 친구가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그 친구에게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지금 그 친구도 자신이 나를 찍은 것을 잊고 있었겠지만. 철수와 짱구라는 대세를 거스르고 소신 있는 한 표를 나에게 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떨어진 것보다 2표가 나왔다는 것이 기뻤다.


그리고 해가 바뀌었다. 반장은 참 멋지다는 생각을 초등학교 때 했다. 어쩌면 창업으로 친다면 멋진 CEO처럼 보였는지도 모른다. 학년이 올라가게 되어서 나는 선거만 있으면 무조건 나가고 싶어 했다. 다행히 선생님이 바뀌게 되면서 친구들과의 관계도 조금 더 개선이 되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반드시 뽑혀 보겠다.


그리고 신나게 까불었다.


 까불 까불 거리는 친구는 전혀 안정감이 없다. 그리고 선거를 나가서 이야기할 때. 아이들도 안다. 그 친구가 믿음직한 친구인지. 아니면 단순히 까불이 인지...  그렇게 다시 투표를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 반장은 재선 삼선을 하는 국회의원처럼. 이전에 뽑혀서 잘했던 애들이 다시 뽑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나는 그 빈틈에 들어가기에 가능성이 적었다. 다시 말하면 내 스스로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단순히 원하는 것만 혼자 말하는 정도였다.


3표.


결과는 3표였다. 우울하거나 그런 기분은 없었다. 그러나 반장이 하고 싶을 뿐. 나는 다시 재도전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반장이 될 수 있는지. 우리 반에 있는 반장들의 행동을 보고 배우기 시작했다.


1. 모두에게 신뢰 있게 행동.
2. 숙제와 준비물 잘 챙기는 모범.
3. 모두를 위하는 생각.


물론 저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여자아이만 보면 장난을 심하게 치기 때문에 여자아이들의 표는 모두 잃고 있는 상황이었다. 괴롭히는 것은 관심의 표현인데. 그것은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는 것으로 개선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도 별다른 상황 없이 또 떨어지게 되고. 다시 한 번 기회가 오게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이번에도 떨어지면. 내년 단 한번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올해 아니면 내년에 한번 반장을 해보고 싶었다.


저를 뽑아주신다면.
게임처럼 재밌는 학급을 만들겠습니다.


이 말 한마디로 인해서 나는 아이들을 웃길 수 있었다. 그리고 투표가 시작되었다. 중간중간에 내 이름이 불리기 시작했고. 나는 3등을 했다. 이것은 분명 지난 3년과 비교하면 최고의 쾌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3등이면 낙방이다.


선거를 마치고 이변이 생겼다. 2등을 한 친구가 '일본으로 이민을 간다'는 것이었다. 결국 부반장은 공석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 선생님은 3등을 한 아이에게 양보를 할 것인지. 아니면 부반장을 하다가 일본을 가게 되었을 때. 그만둘 것인지 물어보았다. 그 친구는 당연히 부반장을 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기다리면 부반장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딯는 순간이었다.



잠깐 그런데 공석은 재선거를 해야 하지 않아?


아내는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


물론 재선거도 가능하지.
그런데 그 친구가 언제 떠날지도 모르고.  
아이들도 재선거보다는
3등이 부반장을 하는 것에 동의를 했어.


 사실 나는 당시에도 준비가 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1등과의 격차가 20표 가까이 차이가 났기 때문에 반장이 되려면 아직도 많은 표가 필요했다. 그러나 부반장의 경험은 나중에 값지게 쓰일 보석처럼 중요했다.



다시 95년 반장선거로 돌아간다.


 부반장이었던 친구는 얼마 있지 않아 일본으로 떠났다. 그리고 내가 부반장이 되었는데. 남자 반장, 부반장. 여자 반장, 부반장. 이렇게 넷이 활동을 한다. 학급 회장이 하는 일은 간단하다. 학생들이 이용해야 할 시설 확인이나 선생님과 학생들의 교두보 역할. 그리고 민주주의의 꽃인 학급회의와 반장들이 모여서 하는 임원회의가 대표적이다.


부반장이 되었을 당시는 시인이 와 세이벨을 만들었던 시기다. 게임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을 하였고. 시인이가 전학을 가기 전까지 학급과 집을 오가며 바쁘게 지냈다.


 그런데 이 글을 읽는 초등학교 학생이 있다면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좀 더 자신감을 가지라는 것. 왜냐하면 내가 내 스스로를 의심할 때와 나를 믿을 때의 가치 차이는 크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 자신감을 알아본다. 결국 남이 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스스로를 빛나게 할 때. 가치가 올라가고. 내가 내 스스로를 깎게 되면 존재의 가치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신감을 기반으로 6학년 마지막 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여기는 96년. 6학년 8반.


이전에 사회 과목을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께서 담임이 되셨다. 생각해보면 나의 독특한 행동을 가장 많이 받아주신 것은 95년 5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96년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던 것 같다. 나의 자신감도 두 분이 길러주신 부분이 분명히 클 것이다.


다시 선거 이야기를 하면. 나는 이번 선거에서 반장이 되면 '전교 회장 선거'를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내 목표였던 반장을 뛰어넘어 전교 어린이 회장이 되는 꿈도 꿀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기회를 얻고 싶었다.


 이번에 반 배치가 잘되어서 92년부터 가장 친하게 지냈던 동주도 한 반에 배치되었다. 좋은 친구와 한 반이 된다는 것은 든든한 기반이 된다. 그래서 친구는 보물 다루듯이 소중히 해야 한다.


동주야 나 반장 나가면 될까?

동주는 웃으면서 이야기 했다.



반장? 몰라 나가봐 되겠지. 내가 뽑아줄게.


동주는 늘 긍정적인 친구였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큐 점프를 매주 구입해서 함께 나눠 보던 좋은 친구. 그래서 난 매주 그 친구와 단짝처럼 붙어 집에서 놀곤 했다. 친구의 긍정적인 신호에 좀 더 자신이 붙었다.


다음에는 전학 간 시인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인아 나 반장 선거 나가면 붙을까?


글쎄. 되지 않을까?


아무래도 크게 확신이 없는 듯했다.. 왠지 나도 불안해졌다. 일단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에게 마지막이라는 의미는 너무 와 닿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일단 며칠 남지 않았으니 도전을 위해 뭐든 해보기로 했다.


일단 친구들에게 신임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임원 경력이 한 번 있을 뿐이었지만. 그때의 경험을 잘 살려 보기로 했다. 다행히 반에 있는 친구들 중에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모두 협동하기를 좋아했다. 아마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모두들 사랑을 듬뿍 받은 영향이 컸을 것 같다.




선거 시작.


 반장 선거는 학교에서 빅뉴스 중의 빅뉴스다. 그래서 한 반에서 누군가 당선이 되면 탄호성이 터지고. 소식을 전하기를 좋아하는 친구는 그 빅뉴스를 들고 여러 반을 돌며 소문을 내고 다닌다.


악!! 영구가 됐다고?


진짜? 엄지가 부반장이야?


등등. 반 곳 곳에서 환호와 탄식이 터져나온다. 그리고 떨어진 아이들 중에서 실망감에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도 종종 발견되곤 한다. 그러면 친구들은 가서 위로를 해주고 다음 시간에는 웃으면서 뛰어논다. 아이들이 잘 잊어버리는 것은 어쩌면 큰 축복인지도 모르겠다.


저학년 시절 너무 힘들게 지냈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자신감을 충전했다고 하더라도 불안했다. 성격이 특이해서 아이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연설을 시작했다.


제가 반장이 된다면.  

심심해하는 친구가 없도록 챙겨주고.  

모두가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어릴 적 힘든 시절을 생각하면서 누군가 소외되지 않고. 한 반에 있는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부분을 강조했다. 그리고 난 재미없는 것을 싫어했다. 그리고 이번 선거의 결과를 조용히 기다렸다.


개표 시작. 이름이 호명 되었다.

준태

원구

준태

원구


로 시작하는 개표는 박빙이었다. 처음 선거를 나갔을 때. 철수와 짱구의 불꽃 튀는 개표 상황과 매우 흡사했다. 계속해서 개표를 하는데. 왠지 희망이 생겼다. 눈시울이 붉혀졌다. 친구가 없어서 외롭게 지내던 시절과는 상반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개표 결과가 나왔다.


김준태 19표

강원구 21표.


강원구는 우리 6학년 8반 반장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부반장이 되었다. 개표를 하는 몇 분 동안이라도 나는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목표를 했던 것이 이렇게 이뤄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다시 가지게 되었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손가락으로 셀 수 있던 표가 이제 풍성해졌다. 난 그때의 기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노력하면 시간은 늦더라도 언젠가는 이룰 수 있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96년은 내가 반장이 되었던 것보다 더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다. 원구가 우리 학교 전교 어린이 회장 선거에서 회장으로 당선이 된 것이다. 나는 함께 선거 운동을 하면서 원구로부터 많은 것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때 배운 리더십과 운영 방침은 차후 내가 중학교에서 전교회장 선거를 나갔을 때. 벤치마킹이 되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그 방법에 나만의 특징을 더하니 치열한 선거전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또 여자 반장, 부반장이었던 손수영과 송민경이라는 친구들 역시 나를 허물없이 대해주어서 좋았다. 어떤 아이들은 과거에 내가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기억해서 괴롭히기도 했지만. 그 둘은 내가 그동안 당했던 것 이상으로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었다. 또한 내가 미국으로 떠날 때. 편지도 써주고 좋은 추억을 함께 만들어주었던 고마운 친구들이다.




그럼 결국 안된 거네?

전에 반장 했었다며?


아내와 나는 가볍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좋다. 결국 반장을 못했다면. 씁쓸하기만 한 과거가 됐겠지만. 어쨌든 2년 후부터 나는 선거에 나가면 반장을 놓치지 않게 되었다.


그건 중학교 때 이야기지.  

그런데 선거에서 떨어진 게  

원래 더 스토리가 재밌는 법이야 하하하..


 이야기를 마치면서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그런데 무슨 일이든 한 번에 잘 안되네?

내 생각에 그래서 많이 노력하게 되나 봐.

아마 선거에 나가서 한 번에 붙었으면.

그냥 하면 다 되는 줄 알았을 거 아니야?


물론, 그렇다. 나는 한 번에 되는 일이 많지 않다. 군대의 한 선임은 나에게 '거북이' 같다는 말을 해주었다. 결과만 보면 빨라 보이지만. 과정을 보면. 시행착오를 견디면서 얻어내는 타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무언가 일이 잘 안 풀리게 되면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계속 될 때까지 하게 되었다. 이런 부분에서 반장선거 경험은 나에게 보물과도 같다. '인기 없는 사람이 반장 되는법'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1년 후 나는 중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 일은 알 수 없다고 했던가.

나는 그곳에서 미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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