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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평김한량 Mar 03. 2016

초등학생이 계획 한 창업 아이템 찾기.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빨리 파악해라. 

아내와 대화는 계속되었다. 아내는 내가 결혼하기 전에 배를 타고 장사를 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초등학교를 다닐 때. 게임회사를 만들었고 또 다른 창업아이템을 물색했던 사실은 몰랐다. 


그런데 아버님이랑 어머니께서도 대단하시다.
반대하지 않으셨어? 


 나는 삼형제 중에 막내였다. 어쩌면 뉴질랜드 방목 방식의 교육을 받은 것도 막내로 태어났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창업을 했던 것에 반대를 하시진 않으셨다. 오히려 도움을 많이 주셨다. 


 특히 아버지께서는 정주영 회장에 대한 이야기나 이병철 회장에 대한 이야기 등. 이전 산업화 시대의 영웅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주셨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토건 산업을 하거나 중공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게임 말고 다른 것도 해본 적 있어. 


 아내의 눈빛은 반짝이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를 아내가 이렇게 들어주는 것은 나의 최대의 행복이다.


사실 나는 게임 개발 창업만 시도한 것이 아니었다. 


게임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잡지를 만들었고,

당시 유행하던 드래곤볼 카드를 도매로 들여와 소매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함께 보기

2화 - 초등학교 때 게임 창업을 했던 이야기

프롤로그 - 나를 찾아 삼만리는 무엇인가요? 






1995년 시나리오 작업 당시로 다시 한번 되돌아 가본다. 


게임을 개발을 하기 위해서 시나리오 작업을 해보니 무언가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당시 주변에서 모든 만화책은 만화책 대여점에서 빌려 읽는 것이 유행이었다. 내가 쓰는 글들을 사람들이 대여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급에서 재주가 좋은 아이들을 모아 잡지를 창간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우리 집으로 아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 글을 잘 쓰는 아이, 웃긴 이야기를 많이 아는 아이 등. 아이들의 재주는 재각각이었다. 심지어 아무 재주 없는 아이도 함께 하고 싶다며. 모였다. 그 아이에겐 친구들에게 소문을 내는 역할을 만들었다. 


결국 지금 생각해보면. 오리지널 콘텐츠를 생산해서 희소성을 갖고. 당시 온라인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콘텐츠로 승부를 본다는 점에서 나름 괜찮은 발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모여서 매주 발간할 잡지 이름을 만들기 위해 회의를 했다. 


'깨비 나라' 


도깨비처럼 판타지 한 이야기들이 모여있는 모음집이라는 뜻을 내포했다. 요즘에는 영어 이름이 남무 하지만. 당시엔 영어적인 표현보다는 직관적인 한글 이름이 더 많이 쓰이던 때였다. 심지어 생필품은 '**표'라는 이름이 있을 정도였다. 


 아이들이 쓴 글과 그림을 모으고 책으로 제본을 뜨기 위해서 복사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훌륭한 책 한 권을 만들었다. 소설과 만화 그리고 여러 가지 유머가 종합되어 있는 잡지가 완성되었다. 초등학생들을 위한 잡지이기 때문에 내용면에서는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첫째. 너무 좁은 소비시장.


만화 대여점의 경우 아이들은 책을 빌려서 집으로 향해 달려간다. 그렇게 되면 대여기간인 1박 2일 후에는 반납을 하게 된다. 그럼 그다음 순서의 소비자에게 이동하는 원리이다. 


그러나 학급에서 인원을 대상으로 대여를 시작하자. 한 권에 200원씩 하는 대여료를 내고 모두가 모여서 보았다. 그렇게 되는 바람에 순식간에 적자가 불어나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떼어놓을 수도 없다. 그렇게 적자를 보는 상태에서 2호가 발간이 되었다. 


둘째. 수익 재분배의 문제점. 


 초등학교 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학원 스케줄로 인해서 바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열심히 2호 발간을 위해서 노력하였지만. 노력에 비해서 퀄리티는 창간호에 비해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는 적자를 보는 상태에서 재분배는 어렵게 되었다. 


 취미 활동이 아이들의 학업에 영향을 미치면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2호를 기준으로 잡지를 만드는 일을 무기한 연기하는 것으로 하였다. 


셋째. 경쟁자의 출현. 


 우리 잡지는 아이들의 참여로 이뤄지게 된다. 그러나 가장 만화를 잘 그리는 아이가 탈퇴를 선언하고 독자적인 잡지를 만들겠다고 선언을 했다. 결국 우리는 학급이라는 좁은 시장에서 2개의 잡지가 만들어지게 되고. 그 아이는 창간호. 우리는 2호를 마지막으로 폐간이 되었다. 


이렇게 잡지를 통해서 나는 다시 두번째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시 기회는 오게 된다. 




이번엔 96년으로 가보자. 


90년대에 가장 인기가 있었던 만화 드래곤볼이 사업 아이템으로 기회를 주었다. 


당시 일본에서 수입되던 카드가 있었다. 아이들은 일본 카드라고 불렀으며. 그 카드를 구입하기 위해서 우리 동네까지 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드래곤볼 카드는 일본에서 100엔에 5장이었으나. 한국에 수입되면서 1장에 500원이었다. 


드래곤볼 카드의 묘미는 바로 프리즘이라는 것이다. 이 프리즘은 반짝이는 카드로 희소성이 매우 높다. 그 카드는 한 장에 5000원 - 1만 원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기 때문에 상당히 고가의 아이템이다. 



20년동안 가지고 있는 드래곤볼 카드. 내 사업들의 흔적.


나는 가게 주인아저씨와 협상을 시작했다. 


아저씨 그 묶음을 전부 구입하면 얼마에 주실래요? 


아저씨는 당황하는 내색이었지만. 진지하게 물어보는 나의 질문을 그냥 흘러들을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빠른 계산을 하더니 대답했다. 


2만 원 주면 아저씨가 이거 팔게. 


나는 평소에 그 카드 묶음이 얼마나 되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100장의 카드를 2만 원에 판매하고. 또 그 안에 프리즘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절대 나는 손해를 볼 수 없는 구조였다. 나는 바로 아저씨에게 대답했다. 


제가 조금 있다 2만 원 가져올게요. 앞으로 저에게 파세요. 


그리고 집으로 달려갔다. 96년 당시 내 용돈은 5000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손을 벌릴 곳은 어머니밖에 없었다. 사업에 대한 계획을 설명했다. 


엄마. 나한테 용돈 4개월치만 빌려주세요. 그러면 돈 벌어서 갚을게요. 

제가 좋아하는 일본산 드래곤볼 카드 아시죠?
그 카드가 원래 한 장에 500원인데.
아저씨가 100장에 2만 원에 판다고 해요.
저는 그걸 다시 300원에 팔건대.
아이들은 그럼 아저씨한테 가지 않고
저한테 오지 않겠어요? 


어머니는 흔쾌히 승낙하시고 나에게 2만 원을 주셨다. 


어쩌면 이런 경험은 부모님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바로 뛰어가 아저씨에게 카드를 구입하였다. 그리고 우리 반에서 가장 인망이 좋은 친구를 통해 장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전 잡지를 만들 때. 우리 반에서만 사업을 하게 되면 어떤 위기가 오게 되는지 알았다. 그래서 각 반에 가면서 친한 친구들에게 카드를 보여주며 장사를 시작한 것을 알렸다. 그리고 그 친구들에게는 친구를 데려오게 되면 10장당 1장씩 서비스를 제공해 주기로 했다. 


순식간에 카드 장사는 활황이 되었다. 전교에서 카드를 구입하기 위해서 우리 반으로 오는 친구들이 넘쳐났다. 2만 원에 카드를 팔기로 했던 아저씨는 계속 나에게 2만 원에 드래곤볼 카드를 공급했고. 나는 그 가운데 프리즘 카드 몇 장 가운데 한 장씩 빼서 따로 3000원에 팔았다. 


2만 원에 구입한 카드는 3만 원에 팔렸고. 프리즘 카드까지 해서 첫 주에 3만 원의 순 수익을 올렸다. 그런데 다시 문제는 발생했다. 전교를 상대로 했다고 하더라도 어린이 아이템엔 유행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내가 장당 300원에 팔던 드래곤볼 카드를 150원에 파는 친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인기를 얻고 싶은 친구들은 자신과 노는 사람에게는 한 장씩 무료로 주는 파격적인 일들도 벌어지게 되었다. 


나는 결국 내 손으로 판 카드들이 경쟁자가 되어 돌아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카드의 가격은 폭락했다. 그렇게 되는데 한학기도 걸리지 않았다. 결국 나와 동업을 했던 친구는 함께 사업을 접기로 했다. 둘이 가져간 수익은 약 13만 원 정도였고. 공정하게 절반씩 나눠 6만 원 정도 나눠갖게 되었다. 


 친구와 동업을 하면서 계약의 중요성도 배우게 되었다. 그 동업을 한 친구는 인기가 좋았고. 나는 자본과 추진력이 좋았다. 그런데 자본의 비중이 내가 훨씬 높은 상황에서 순 수익의 5대 5로 나누는 일은 내가 얻는 이득이 적게 보였다. 반대로 그 친구 입장에서도 장사가 잘될 땐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숫자를 다루는 일은 신중하고 정확해야만 나중에 동업을 할 때.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나의 3번째 실패는 끝났다. 잡지를 만드는 일은 무리한 계획과 학급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한 점이 실패의 요인이었고. 카드 장사를 한 것은 유행이라는 것을 미리 읽지 못해 가격 폭락을 겪어 실패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초등학교 5학년, 6학년은 나에게 많은 비즈니스 경험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20년만에 구입한 카드. 이번에 오사카에 갔을 때 구입해왔다. 프리즘이다 만세~!


 그리고 나는 아내에게 이어서 말했다.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는 딱히 하지 않았는데. 

정말 관심이 있는 게 있었어.

바로 반장선거였지. 


처음 선거에 나갔을 때. 2표가 나왔는데. 어떻게 되면 반장이 될 수 있을까 

초등학교 내내 그 생각만 하고 다녔거든. 

무려 졸업할 때까지.. 


4번째 실패는 무엇이었을까요?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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