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백 년은,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의 하루와 같다
연말이 다가올 때쯤, 매년 한해를 되돌아보는 회고를 작성한다. 원래 12월이 되고 나서야 슥슥 적어보던 것을 올 해는 11월 초부터 펜을 들었다. 이미 거의 다 지나 보낸 올해를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인지, 다가올 내년이 기다려지는 마음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시기가 연말인지라 소소한 의미가 부여될 뿐이지 나는 매월 초가 되면 지난 한 달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좋아한다. 사회에 발을 들이고부터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브레이크는 사치인 스피드카에 몸을 싣고 시간에 휩쓸리는 중이다. 나라는 사람을 세상이라는 게임에 내보내고, 나를 움직이는 사람이 나뿐인데도 시간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느낌이 참 싫었다. 특히 한 달이 지나고, 한 해가 지나갈 때쯤 '뭐 했다고 한 달, 한 해가 지났는지 모르겠다' 하는 푸념 섞인 한마디를 늘 경계하고 싶었다. (우리.. 늘 열심히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한 달이 끝나갈 때가 되면 이번 달에는 어떤 이벤트가 있었는지를 나열해 적어본다. 사소한 것까지도 적어낸다. (예를 들면 ‘처음으로 샐러드 먹은 날' 등등. 실제로 나는 심한 채소 편식쟁이 었는데, 올해 극복했다!) 그렇게 적힌 내용을 보면 이번 달도 열심히 혹은 재밌게 잘 보냈구나 하는 마음이 시각화되고 그제야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지금 나의 생각은 말이나 글로 풀어내기 전 까지는 이 세상에서 아무도 알아줄 사람이 없다. 나 까지도 말이다. 그러니 스스로에겐 알게 해주어야 한다.
'흔하게 느껴졌던 말들이 요즘따라 피부로 와닿는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인생에서 성공(의 기준은 모두 다르지만)을 이룬 사람들의 특징들을 모아두고 보았을 때, 예전엔 그저 남의 이야기였지만 요즘은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리고 위처럼 길게 풀어 설명했던 내용이 '진리'라는 단어로 통용될 수 있단 건 최근에 알아차렸다.
진리: 참된 이치, 논리의 법칙에 모순되지 않는 바른 판단.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
세상에는 분명 '진리'가 존재한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사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몇 가지 진리 문장을 나열해본다.
- 시간이 흐를수록 운동은 필수다
- 대화를 잘하는 방법은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다
- 생각을 바꿔야 인생이 바뀐다
- 당신의 열정이 당신을 결정한다
- 자존감을 높이려면 이불 개기와 같이 사소한 자기 약속부터 지켜라
- 모든 인간관계는 적당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 경험이 곧 그 사람의 자체다
- 인생의 모든 순간은 선택이다
- 현재의 나는 과거 무수한 선택의 결과물이다
- 올바른 선택이 운을 부른다
-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 삶은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지만, 위 문장들에 반박이 가능한 사람은 '굳이'라는 말을 '굳이' 달고 사는 사람일 테다.
이 외에도 인생 선배들이 남긴 수많은 말들이 한 글자 한 글자 크게 와닿고 있다. 사실 이 사실을 한번 깨닫고 나면 행복하고 올바르게 사는 방법이 대단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를 이룬다'
'마음의 여유가 친절을 만든다'
'발전은 직선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나를 존중할수록 타인도 존중할 수 있다'
'헛된 경험은 없다. 머지않아 그동안의 노력이 가치를 드러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기록의 힘을 맹신한다.
뜬금없겠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글씨가 예쁜 편에 속했다. 글씨가 예뻐서 글씨를 적는 걸 좋아했는지, 글쓰기를 좋아하다 보니 글씨가 예뻐졌는지는 모르겠다만, 무엇을 적든 칭찬을 받았고 그래서 남들보다 효율이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무언가를 계속 적어냈다. 그 시간이 왠지 모르게 좋았다. 선이 이어져 글씨를 이루는 기분, 선 하나에 1초, 그렇게 모인 내 시간과 내 글자들. 그렇게 셀 수 없을 만큼의 미래의 나에게 주는 선물들이 모였다. 그 시간이 쌓여 지금의 나를 이룬다. 지금 적는 글 또한 미래의 나를 이룰 테니 나는 더 이상 적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앞서 적어냈듯, 나의 생각은 글로 풀어내지 않으면 나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생각은 '흐름'이기 때문에 다음 파도가 밀려오면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밀려나버린다. 우리는 주어진 시간만큼만 생각을 한다. 그리고 생각은 시간에 담긴다. 때문에 시간을 잡아두는 방법은 생각을 잡아두는 것이다. 생각을 잡아두기 위해선 내 눈앞에 존재해야 하고, 이를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글자를 적는 것이다.
초등학생 때 방학숙제로 제출하던 일기를 15년이 넘게 쓰고 있다. 사람마다 다양한 정체성이 존재하지만, '일기를 꾸준히 쓰는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나의 정체성이다.
한 해를 거듭할수록 일기를 쓰는 나에게 코멘트가 늘어난다. '요즘 애들 중에 일기 쓰는 사람이 있구나', '그럴 시간이 있어?' 하는 신기한 시선부터, 일기선배(?)에게는 감사하게도 일기를 쓰는 습관이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 거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지금보다 어릴 땐 거창한 깨달음보다는 하루의 분풀이, 혼자만의 험담이 주로 적혔으니 잘 알지 못했지만, 그 하루가 겹겹이 쌓여 나를 온전한 내편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단 건, 알게 된 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나라는 소중한 사람은 시간 안에 산다. 그러니 내 시간을 조금만 더 아껴주면 좋겠다.
하루가 고작 다섯 번 지나면 평일이 끝나고, 순식간에 주말이 사라지고, 그렇게 한주가 끝난다.
한주를 고작 네 번 보내면 한 달이 끝나고, 그 과정을 열두 번 반복하면 일 년이 끝난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백 년은,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의 하루와 같다"라는 말처럼, 하루의 중요성을 알고 소중히 보내는 사람과 그저 시간과 함께 흐르는 사람은 절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고 할 수가 없다.
하루는 매 시간이 쌓여 완성되고, 그렇기에 그 시간들이 나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장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어떤 대화를 나누든 그 과정에서 배우고 깨닫고 성장할 수 있음을 믿는다. 누군가에게 흔해 빠진 사실이 누군가에겐 시간을 금으로 만드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흐르는 시간을 부디 잘 잡아두고, 잡아둔 시간 안에 살았던 나를 다시 만나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의 사이가 어떤지 살포시 들여다보는 것.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를 믿고, 의지할 수 있게끔만 내 시간을 소중히 여겨주자.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내 시간이 참 소중하단 걸 인지하고 하루를 보낸다면 그 하루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특별한 하루로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