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해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킹맘다해 Feb 08. 2021

이번 명절엔 어떻게들 하세요?

코로나 19로 가족마저 못 만나는 이번 설

애가 셋인 우리는 벌써 5인...

코로나 19로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시작된지도 벌써 꽤 지났다. 지난 연말부터 그랬으니 이번 설 명절까지 하면 거의 세 달이나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연말연시 모임이야 주로 지인, 친구, 친목 모임인 경우가 많지만 다가오는 설은 온 가족이 만날 수 있는 우리 민족의 큰 행사가 아닌가? 다들 바쁘게 살다 보니 시간을 따로 내지 않으면 만나기도 어려운 요즘인데 이 코로나 19 탓에 명절에 직계가족마저 모일 수 없다니, 참 안타까운 심정이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글쓴이도 어느 집 며느리일 텐데 명절에 시댁에 안 가서 속이 시원하지 뭐가 안타까우냐고... 음, 나는 좀 특이한 경우이긴 하다. 미국에서 여러 해를 지내고 와 보니 명절에 갈 곳이 있고 만날 가족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가씨가 웬 명절증후군이야?

결혼 전에는 명절이 되면 '은주 은제 내려오냐아?' 하고 전화하시던 큰엄마 덕에 나는 명절증후군을 좀 앓는 사람이었다. 결혼한 언니들은 시댁으로 가서 없고, 오빠는 아직 장가를 안 갔고, 작은며느리인 우리 엄마는 직장 특성상 명절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명절에 못 가는 작은며느리(우리 엄마) 대신이라는 느낌으로 가서 한 사람의 몫을 해야 했다.


결혼하며 미국으로 가게 되자 처음에는 명절에 더 이상 쪼그려 앉아 그 많은 전 부치기를 안 해도 돼서, 명절 당일 새벽부터 일어나 닭 삶는 거 신경 안 써도 돼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산다는 게 기쁘기도 했다. 단출하게 남편과 둘이 있으니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고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우리만 명절에 만날 사람도 갈 곳도 없다는 사실이 점점 서글프게 느껴졌다. 모두들 모여 하하 호호하는데 우리 집만 조용한 것이 어색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명절이면 혼자 송편을 만들고, 갈비찜을 끓이고,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우리끼리라도 즐겁게 보냅시다

뉴저지로 이사한 후 우린 몇몇 한국 가정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모두 우리처럼 명절에 갈 곳 없는 외로운 친구들이었다. 서로 명절을 아쉬워하는 것을 알게 된 후, 우리는 매 번 명절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모두 모여 음식도 나누고 이야기도 하며 파티를 하는 것이다.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었지만, 타향에서 만난 마음 맞는 친구들과의 모임은 언제나 즐거웠다. 아이들도 형, 누나, 동생 모두 모여 신나게 노니 매 번 그 날을 기다렸다. 음식은 각자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해서 모여 나눠 먹었는데, 십여 년 넘게 명절마다 큰엄마에게 배운 명절 음식 솜씨로 나는 주로 전, 잡채, 갈비찜, 나물 등의 한국 음식들을 준비했다.  


큰엄마의 지도(?) 아래 있을 때는 그렇게 귀찮고 힘들던 것들이 미국에서 나 스스로 식구들, 친구들과 함께 나누려 준비하는 명절 음식은 어째 하나도 힘들지가 않았다. 아침부터 시작해 하루 종일 부엌에 서서 씻고 썰고 볶고 지지고를 해야 하는데 (맛이 없을까 봐 걱정이었지) 힘이 들어 하기 싫다는 마음은 정말 1도 들지 않았다. 뭐든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게 이런 걸까?


아니 우리 어머니는 음식을 너무 많이 하셔
아휴 잘 먹지도 않는데 왜 그리 많이 하시는지
맨날 허리 아프시다고 하시면서


주변에서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부엌의 최강자이신 시어머니들은 '시어머니의 시어머니' 없으셔서 그럴까? 어떻게 그렇게 의욕적으로 음식을 많이 하실  있는 걸까?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마도 미국에서의 나처럼 '스스로' 하시는 것이라 그런 것 아닐까? 허리가 아파도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은  마음으로 아픈 허리도 쪼그려 앉아 저린 다리도  참고  많은 음식들을  해내실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며느리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하니 결혼 전의 나처럼 귀찮고 못마땅하기만 할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명절을 앞둔 대한민국 며느리들에게 그래서 글쓴이는 시댁 가서 음식 하는 게 좋단 말이냐? 는 공분을 살까 사실 두렵다. 우리 시댁은 제사를 안 지내서 명절에 음식을 하지는 않지만, 남편 생일과 아버님 생신,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에 시댁 식구를 우리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한다. (어머니 생신과 내 생일은 맛있는 식당에 가서 사 먹는다) 추석과 설날(구정)에는 친정 엄마가 혼자서 힘들까 봐 내가 할 수 있는 명절 음식을 해서 친정으로 가 식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다. 다 스스로 계획한 일이다. 식구들과 함께 나누고픈 마음 지난 미국 생활 동안 나누지 못한 설움에 혼자 이렇게 설레발이다. 식구들을 초대해 집을 치우고 음식도 한 상 차리고 나면 나도 녹초가 된다. 힘이 들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함께 할 수 있는 가족들이 있다는 게 기쁘고, 맛있게 드셔주셔서 기쁘고, 우리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대학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서넛이 있는데 우리는 스스로를 '자뽁클럽'이라고 불렀다  스스로 자에 들들 볶는다는  이다. 다들 혼자 스스로 일을 벌이는 스타일들이다. 지 버릇 개 못준다고 여전히 나는 그렇게 일을 벌여가며 살고 있다. 이번 명절에 식구들과 모이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며 나는 또 명절 음식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아이고 허리야 하면서 말이다. 아무도 못 가 섭섭하실 양가에 한 통 가져다 드릴 예정이다. 함께 모여 나누지는 못해도 마음이라도 나눌 수 있는 그런 설 명절이 되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글이 다음 메인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