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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다해 Nov 05. 2020

사과는 마데카솔 같은 것

엄마가 미안했어...

코로라로 민감한 시국에 둘째가 감기에 걸렸다. 코가 꽉 막혀 코맹맹이 소리가 나고 목도 따끔거린다고 한다. 다행히 열은 나지 않는다. 증상이 있으면 학교에 등교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마 워킹맘들이 가장 난감해하는 상황이 아이가 아플 때가 아닐까 싶다. 아이 잘못도 아닌데 괜히 아이한테 짜증이 난다. 정말 그러만 안되는데 말이다.


오늘은 남편도 나도 정말 결근을 할 수 없는 날이었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월말과 월초에는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아.. 얘를 어째야 하나... ' 지난 8여 년간 멀리 떨어진 미국에 사느라 식구들 도움받지 않고 아이를 키웠더니 친정, 시댁 부모님들께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시는데도 부탁을 드리는 게 마음이 편치가 않다. 어떻게든 우리 가정 안에서 해결을 하는 것이 맘이 편하다. 겨우 남편과 일정을 조율하고 조율한 끝에 일단 집에서 사무실이 가까운 내가 둘째를 사무실에 데리고 나가고 남편이 내 사무실로 12시에 와서 애를 데리고 가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지금 사무실에 인원이 별로 없고 내 자리가 한쪽 구석이라 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마음이 불편한 건 사실이다. 사무실 건물에 출근시간에 애 손 붙들고 들어가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불편한 엄마 마음은 알지도 못하고 눈치 없는 둘째는 엄마 사무실에 따라간다며 코맹맹이 소리로 오빠와 동생에게 자랑을 해댔다. 에휴...


다들 나갈 준비를 마치고 문 앞에 섰을 때였다.


첫째: 엄마, 나 갑자기 화장실 가고 싶네.

나: 지금?? 꼭 가야 해? 나가야 하는데?

첫째:  금방 하고 올게.

(기다림)

나: 얼른 하구 와....(물 내리는 소리) 손 씻어.(수돗물 잠그는 소리) 불 끄고.(딸깍)


아휴 하나부터 열까지 잔소리를 해야 하니...


나: 나가자 얼른. 늦겠다.

첫째: (자기 옷의 목 쪽을 자꾸 잡아당기며) 엄마... 나 근데 숨이 좀 찬 거 같아...


이미 둘째의 감기, 남편과의 일정 조율 등으로 나는 있는 데로 짜증과 예민 수치가 높아져 있었다. 첫째의 밑도 끝도 없이 숨이 차다는 말이 걱정스럽게 들리지 않았고 '정말 너까지 왜 이러니!'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 뭐어! 방금까지 아무렇지 않다가 숨이 왜 차!! 너 현명이가 학교 안 가고 엄마 사무실 간다니까, 괜히 아프다고 그러는 거지?!?

첫째: 아니야. 진짜 숨이 답답한 거 같아! (눈물 두 방울 뚝뚝)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눈물을 흘리는 첫째를 보는 순간 결국 아침나절 내내 참아왔던 모든 화가 첫째에게 폭발하고 말았다. 평상시에도 예민하고 불안 기질이 있는 아이라 뭔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편하면 배가 아프다던지 목이 칼칼해진다던지 하는 느낌을 받는 아이다. 본인의 불안이나 불편함이 그런 식으로 표현이 되는 것이다. 내가 그걸 잘 모르는 것도 아닌데, 오늘 아침엔 내 감정상태가 아이의 불안과 예민을 넓게 포용해 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이의 불편한 감정을 차분하게 받아줘야 하는데, 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결국엔 하지 않으면 좋은 말들을 쏟아버리고 말았다. 잠시 진정하고 난 후에 후회해 보지만 이미 내 입을 떠나 화살처럼 날아가 아이에게 박힌 말들은 되돌릴 수가 없다.

티핑포인트를 향해 쌓여가는 내 마음속의 부정적인 감정


결국 첫째는 아침에 내가 골라 준 옷이 마음에 안 들고 불편했던 건지 상의 전체를 갈아입고 나서야 이제 괜찮아졌다고 했고,  그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이때까지도 둘째를 데리고 출근하는 상황에 내 마음이 편치 않고 자꾸만 지체되는 시간에 늦을까 봐 걱정이 돼서 아이를 밝게 웃으면서 교문에 들여보내 주지 못했다. 매일 아침 하루하루 예쁘게 변해가는 단풍 구경,  매일 조금씩 더 노래지는 모과 구경도 해가며 경쾌하던 나의 출근길이 바쁘고 불편한 마음들로 칙칙하게만 보였다. 하루 종일 아침에 본 아이의 눈물 두 방울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한 번 더 참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는 항상 지나고 나면 하지만, 그 순간에 정말 한 번 마음을 가라앉히고 참는 것이 힘들다. 변명을 하자면 이미 참고 참고 참을 만큼 참았기 때문에 결국 마지막엔 티핑포인트가 지나버려 폭발하는 것이다.


나의 출근길 풍경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참고 또 참는 것은 용서가 아니라고. 참고 참는 것은 벼르는 것일 뿐이지 마음에서 진정하게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서 나의 문제가 시작된 것 같다. 그냥 화를 안 내고 잘 참기만 해 내 안에 쌓아놓기만 하니 그게 결국 넘쳐버리는 것이다.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괜찮지 않았던 것, '알겠어'라고 말했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 오늘 아침 내 마음속의 벼르기는 거기서 시작된 것 같다. 오늘 쌓였던 내 안의 화는 사실 첫째에게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여러 가지가 겹쳐 쌓인 나의 감정 쓰레기 폭발의 마지막 순간에 못난 엄마의 감정 파편에 제대로 맞아버린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퇴근 후에야 아이와 마주할 수 있었다. 아이는 아침 일은 벌써 다 까먹었는지 해맑은 웃음으로 엄마를 맞아 준다. 아이가 괜찮다고 해서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스럽게 아이와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었고, 아이에게 아침에 엄마가 이런저런 일로 너무 정신이 없어서 너에게 화를 낼 일이 아닌데 화를 냈다고 이야기해줬다. 길게 얘기하면 못 알아듣는 초2 남자아이인걸 고려해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너를 슬프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최대한 나의 진심을 담으려고 했다. 아이는 시크하게 '나 별로 아무렇지도 않아'라고 했다. 그런 모습이 그동안 내가 저 아이를 저렇게 감정이 무디게 키웠나 싶어 더 죄책감이 들었다. 말없이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도 '엄마 좋아'라며 꼭 내 허리를 부둥켜안는다.


이미 내 입에서 날아간 화살이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겠지만, 진정한 사과는 마데카솔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이미 난 상처를 없앨 수는 없지만 그 상처를 빨리 낫게, 덧나지 않게 잘 덮어 주는 것이라고... 원래 상처가 없던 것처럼 되면 좋겠다는 건 내 욕심이겠지만 그래도 잘 덧발라 보는 수밖에... 새 살아 솟아라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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