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6개월 전 혼자 떠난 유럽 여행
남친: "어떻게 그렇게 시간이 많이 나는데 나한테 안 놀러 오고 유럽여행을 갈 수가 있냐고..."
나 : "응??? 아... 지금 아니면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서... 가서 전화 많이 할께."
남친: "진짜 나한테 안올꺼야?? 진짜????
아 그럼 오가는 길에라도 들려~ 응? 나랑 같이 라스베가스에서 만나자?"
나 : "아~ 비행기표 벌써 다 샀어. 어차피 5개월 후면 결혼식 올리러 한국 들어와서 만나잖아."
남친: "아~ 그래도!!!!!! 그래도!!!!! "
2010년 여름, 남편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나는 한국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우린 2년째 ‘장거리연애’ 중이었는데 그 해 겨울 남편의 겨울 방학을 이용해 결혼식을 올리고 미국에서 신혼살림을 차릴 예정이었다. 결혼식 전 미리 퇴사를 한 나는 나이 서른이 되도록 못 가 본 유럽여행을 가기로 결심하고 남편에게 통보를 했다. 워낙 쿨한 우리 사이였기에 남편이 섭섭해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오래 못 만난 여자친구를 보고 싶다는 남자친구 마음도 이해는 갔지만 속으로 어차피 평생 보고 살 거 몇 달 먼저 가서 만나는게 “뭣이중헌디” 싶었다. 결혼을 6개월 앞둔 새색시라기에 나는 너무나 이성적이고 메마르고 감성이 부족했다. 단단히 삐진 남편은 내가 유럽에서 전화 걸때마다 툴툴거렸다.
“그래 남친버리고 거기서 재밌어??재밌냐고..”
퉁명스럽게 전화받는 남편을 달래는 수고가 필요했지만 이 여행은 정말 내 인생 최고였다. 다시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봐도 그 시절 나는 정말 너무나 현명했다! 진짜 그 시절의 나에게 돌아가 잘했다고 꼭 안아 주고 머리도 쓰담쓰담 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때 나는 어떻게 이게 다시 없을 기회라는 걸 알고 유럽여행을 갈 생각을 했을까?
그 때 나는 Contiki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18-30세의 친구들 30여명과 버스 한 대를 빌려 한 달간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여행의 더욱 독특한 점은 매일매일 캠핑을 하는 것이었다. 매일 저녁이면 캠핑사이트에 도착해 텐트를 폈다. 펌프로 에어베드에 바람을 넣고 침낭을 펼쳐 잠자리를 마련한 후엔 저녁을 해 먹었다. 저녁이면 매일 테마를 정해 파티를 하고 술도 마시고 늦게까지 이야기들을 나누다 텐트로 들어가곤 했다.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침을 해먹고 텐트를 걷어 버스에 싣고는 다음 지역으로 이동했다. 정말 젊으니까 할 수 있는 여행이었다. 다시 없을 기회였고, 마지막 찬스였다.
결혼식을 올리고 미국으로 간 뒤엔 정말 모든 것이 달라졌다. 혼자서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은 정말 꿈도 꿀 수 없어졌다. 결혼 후 바로 임신을 했고 바로 연년생 둘째를 낳았고 이 년 뒤엔 다시 셋째를 낳았다. 미국에 사는 기간의 절반 이상은 임부복-수유복-임부복-수유복으로 지낸 것 같다.
그때 만약 남자친구의 섭섭한 마음에 부응하고자 내가 유럽행을 포기하고 미국행을 택했으면 어땠을까? 우리 결혼 생활에 사랑이 한 스푼쯤 더해졌을까? 엄청나게 사랑 넘치는 아내가 되었을까??? 그때 잠시 잠깐 미안한 마음이 있었고 남편도 나에게 섭섭한 마음이 있었지만, 우리는 아무 문제 없었고 지금도 사랑하며 잘 살고 있다.
암튼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남친 버리고 유럽가길 참 잘했다. 백번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