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아프고 살면 좋겠지만...
안 아프고 살면 진짜 좋겠지만 애들 키우며 병원 한 번 안 가고 살긴 참 어렵다. 일단 기본적으로 만 4~5세 까지는 예방접종도 계속 맞아야 하고 초보 엄마는 아이가 조금만 이상하면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이 걱정이 되기 때문에, 더 병원 문턱 닳도록 자주 드나들게 되는 것 같다.
첫 아이가 돌 즘 되었을 때 처음으로 감기에 걸려 소아과에 전화를 걸었다. 보통 미국 병원에서는 예약없이 의사를 만나기 어렵다.
나: 9개월 아기가 열나고 밤새 코가 막혀서 잠도 잘 못자네요. 의사선생님 좀 만날 수 있을까요?
간호사: 감기요? 열 난지 얼마나 됐어요? 열흘 뒤에나 예약 가능합니다.
나: 네? 열흘이요? 그때까지 그냥 기다려요?
간호사: 어린이타이레놀 사다가 먹이세요. 약병 뒤의 용량 지키시구요. 감기로 의사선생님 만나도 별로 해 줄게 없어요.
보건소에서는 보통 감기 정도로는 예약을 안 잘 잡아준다. 나중에 조지아에 가서 살 때는 이민1.5세대인 한국인 의사 선생님께 갔었는데, 그래도 개인병원에는 전화하면 예약은 해 준다. 다만 가서 의사선생님을만나도 대게 처방은 비슷하다. 가서 타이레놀 사 먹이라고.
언젠가 둘째가 40도 넘는 고열이 3일이나 난 적이 있다. 해열제를 먹여도 열이 잘 내리지 않았다.한참 독감이 유행할 때라 부랴부랴 병원에 가서 독감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인플루엔자 B양성. 진짜 독감이었다. 타미플루를 먹여야 하나보다 생각했는데,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지금 우리 지역 인근 뉴저지는 물론이고 뉴욕,펜실베이니아까지 타미플루가 품절이니 그냥 집에 가서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과 이부프로펜(부루펜, 애드빌 같은 것)을 번갈아 먹이라는 것이었다. 뉴스에서 연일 독감으로 전국적으로 몇 만명이 죽었네 할 때였다. 40도가 넘는 열이 오락가락하고 애는 푹 쳐지는데도 엄마가 줄 건 듣지도 않는 해열제 뿐이었다. 안 그래도 삐쩍 마른 둘째는 독감을 앓고 2킬로나 빠졌다. 둘째의 독감이 셋째에게 옮고 첫째에게 옮고 남편까지 호되게 앓고 나서야 우리 집에서 독감은 사라졌다. 나까지 쓰러지면 큰일이라며 나는 정말 정신력으로 독감을 이겨냈는지, 정말 나만 안 걸리고 지나갔다. 네 식구가 독감에 앓아 누워 있으면서도 타미플루 구경도 못하다니... 아.. 미국살이 정말 쉽지 않았다.
한 번은 아들이 소파 팔걸이에 앉아 있다 옆으로 똑 떨어지더니 어깨를 움직이질 못했다. 애가 많이 아파하기도 하고 팔을 전혀 움직이질 못하길래 아무래도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아서 응급실로 바로 갔다. 근처에 큰 응급실은 캠든(Camden, PA)이라는 곳에 있었다. 병원 근처는 유명한 슬럼가였는데 마약중독자들이 응급실로 쳐 들어와 갖은 행패를 부리며 모르핀(마약성 진통제) 놔 달라고소리소리 지르고, 총에 맞은 환자가 왕왕 실려 들어오는 그런 곳이다. 그런 응급실에 가면 일단 숨 잘 쉬고 정신 멀쩡한 환자는 환자 대접을 못 받는다. 대기실 구석에서 4시간 정도를 기다린 후에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고, 간호사에게 엑스레이 지시만 내리고 사라진 의사는 두어 시간 만에 다시 나타나 '쇄골 골절이네요.' 라는 한 마디와 '이 부위는 캐스트(깁스)도 못하니 목에 거는 삼각건 하세요' 하고는 최대한 움직이지 말라며 사라졌다. 이 진료로 우리가 청구 받은 의료비는 2,700달러 (300만 원) 정도였다.
이런 병원 시스템을 겪고 한국에 왔더니 한국은 의료 천국같이 느껴진다. 작년 겨울 아이가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으로 1인실에 2주 정도 입원했는데, 미국 응급실 잠깐 갔던 비용의 절반 정도 되는 비용이 청구되었고, 그 마저도 가입해 둔 실손 의료보험에서 많은 부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병원도 언제든지 예약없이 갈 수 있고, 약 값도 엄청 싸다. 병원에 갈 일이 아예 없는 게 최고겠지만, 그래도 아프면 크게 돈 걱정 없이 아무 때나 병원에 갈 수 있다는 점이 심리적으로 정말 얼마나 안정감을 주는지 모른다. 헬조선이네 뭐네 하지만 이것저것 따지고 보면 한국도 꽤 살만한 나라다. :)
Tip. 미국의 약국과 자주 사용하는 일반의약품
병원비가 이렇게 비싸고 예약도 힘들고 하다 보니 미국은 , 우리나라로 치면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OTC,over the counter medicine)가 엄청 다양하고 살 수 있는 약 종류도 많다. 해열진통제만도 샴푸만큼 다양한 종류가 진열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일반의약품을 주로 약국에 가야만 살 수 있는데 미국은 일반 마트에도 의약품 코너가 크게 있다. 그리고 약국에서도 처방약을 구입할 수 있지만 코스트코나 타겟 월마트 같은 곳에도 약사가 있어서 처방약을 구입할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소규모 약국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월그린이나 CVS, Rite aid 같은 대형 약국들이 있다. 이곳에서도 처방이나 의약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올리브 영이나 왓슨처럼 화장품, 스낵, 음료수, 생필품 등을 같이 팔고 규모도 크다. 엄청 큰 편의점 느낌이다. 처방약의 가격도 천차만별이라서 장기간 복용하는 약 같은 경우에는 GoodRX 같은 앱을 이용해 어느 약국에서 동일한 약을 싸게 처방해 주는지 확인하고 사는 것이 좋다. 미국은 병원비만 비싼 게 아니라 처방약도 비싸다.
Tip. 미국에서 자주 이용하던 일반의약품 소개
워낙 종류가 많다보니 처음에는 뭘 사용해야 할지 고르기도 어려웠다. 여기 쓴 약품들은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소화제 하면 활명수, 상처엔 후시딘, 마데카솔 하는 것 처럼 주로 많이 사용하는 약품들이다.
상처-네오스포린연고
피부가려움-코티손(스테로이드연고)
벌레물린데- 코티손이나 뱃저밤
아세트아미노펜 - 타이레놀
이부프로펜 - 모트린, 애드빌
종합감기약 - 데이퀼/나이퀼, 테라플루( 약은 아니지만 삼부커스)
코막힘 - 뮤시넥스사이너스맥스
목,기침, 가래 - 뮤시넥스
소화제 - 알카셀쳐
알러지(코, 피부 등) - 베나드릴, 알레그라, 클라리틴, 지르텍
설사- 이모듐
속쓰림 - 탐스
방광염 - 아조, 크랜베리
근육통- 벤가이, 아이시핫, 살론파스, 바이오프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