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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해 Jul 19. 2017

아비정전


열일곱 살 때 이 영화를 처음 봤다. 시간이 지난 지금 기억나는 건 얼마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기억나는 것들은 아주 강렬하게 기억이 난다. 내내 눅눅한 영화의 분위기, 장국영의 화난 뒷모습, 장국영의 슬픈 얼굴, 서로에게 버려진 연인들, 비 오는 날씨, 그리고 맘보춤 같은 것들.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는 분명하게 알 것 같다. 나 또한 어린 나이였지만 영화를 통해 보게 됐고 느끼게 됐으니까.


영화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그들 모두 위험하리만치 젊다. 또한 모두가 한껏 예민한 정서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외로움의 감정을 가지고 있고 서로가 서로를 원하지만 왠지 모르게 항상 허공에 부유하는 듯한 관계만 만들어낸다. 그들을 보면서, 그들은 외롭구나 라고 느낀다. 이어서 자연스럽게 우리 또한 외롭구나 라고 느낀다. 관객을 자연스레 스크린 안으로 끌어와 인물과 동화시키는 마법이 이 영화엔 존재한다.

<아비정전>은 무엇보다도 감정의 영화다. 메시지보단 감정으로 가득 찬 영화다. 이러한 영화가 한 명의 관객인 나에게 준 어떠한 영향은 바로 낭만이었다. 가령 장국영의 슬픈 표정, 장국영의 춤, 장국영의 화난 뒷모습으로 불려지는 영화 내의 모든 분위기는 하나의 증거가 됐다. 보는 이로 하여금 반향을 일으키는 감정들_ 그 시절 열일곱 고등학생의 신선한 감상 같은 것들이 개인의 짧은 추억, 혹은 (영화처럼) 영원으로 박제되었다는 증거가 된다. 너무나도 낭만적인 영감상이며, 내가 <아비정전>으로부터 받은 감정의 일부다.


열일곱에 이 영화의 고독감과 상실감을 완전히 공감하기란 어려웠을 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았었다. 지금은 알아가는 것을 넘어 내 몸으로 조금씩 공감하는 중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었다는 열일곱의 나 자신을 보고 상당히 낭만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후에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흘러서, 이 영화를 보며 언젠가 몸으로 온전히 공감하는 날이 온다면 과연 그때도 낭만적일까 궁금하다. 만약 아니라면, 그때는 나도 아비의 슬픈 눈을 가져 수 있을지. 세상에서 가장 슬픈 그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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