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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해 Jul 01. 2018

둘 그리고 셋

두 번째 영화를 만들었다. 살면서 한 번쯤은 주변 사람들이 너에게 어떠한 말을 해도, 어떠한 일이 닥쳐도 너는 무조건 찍을 영화가 있다고 하는데 이번 영화가 나에게 그랬다. 지금이 아니면 다음에 다음이 아니면 그다음에, 살아가면서 꼭, 운명적으로 찍을 영화였던 것이다. 그 영화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과거의 공간, 나를 이루는 가장 큰 감정이 탄생한 공간, 지금도 내가 지겹도록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 그리워하는 곳에서 촬영을 했다. 반년의 과정이 끝나고 처음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찌 됐건 무언가가 만들어졌다.


'그래 이제 다 왔어. 너무 지쳤어. 근데... 이거야?'


영화를 완성하고 나서 든 느낌은, 그냥 허무했다. 완성의 뿌듯함? 성취감? 너무 엄청난 걸 만들어버려 숨길 수 없이 넘치는 도취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허무했다. 내 일상에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던 게 갑자기 빠져나가서 그냥 공허한 기분이었다.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갑자기 불어나 버린 나의 빈 공간이 나를 편하게 하지 않았다. 상영회가 끝나고 완성된 영화를 한 번 더 봤다. 음. 아마 이후로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다. 말은 즉 한 번 보고 말 것을 만들어버렸다. 슬프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사실인 거 같다. 나만 이러는 건가? 다른 사람들도 다 이럴까? 만약 그렇다면 나도 그렇고 그 사람들도 그렇고, 도대체 왜 한 번 보고 말 것을 그렇게 목숨을 걸고 만드는 걸까. 그게 뭐라고.


"사람들이 있으면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었고 막상 나오니 외로웠다.

원래부터 없던 거라고 생각해. 그건 원래부터 없었던 거야."



내 영화를 일단은 끝냈으니 다른 사람의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틀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고 영화만 봤다. 머리 아프게 영화를 보고 집에 들어왔다. 짧은 여행을 한 기분이다. 영화를 끝낸 후의 나의 일상을 뒤돌아봤다.

가끔씩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다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스탠드를 인식할 때마다, 익숙하지만 우울하고 또 그만큼의 여운이 있는 이곳에 다시 올 때마다,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아무도 없는 곳의 적막을 다시금 느낄 때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여기에 무언가를 하나 남겼다고 느낀다.


밖에 나가서 가장 먼저 본 영화는 '하나 그리고 둘'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에 추가했다. "왜 삶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을까요."라는 대사가 나에게 묘한 위로가 됐었다. 또 이 영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매그놀리아'와 닮았다고 느꼈다. 매그놀리아가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하나 그리고 둘은 필연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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