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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해 May 06. 2016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Norwegian wood

 나는 열아홉 살이었고 그때는 4월이었다. 어느정도는 확신하건대 이 책을 읽을 당시 나는 심각한 무기력증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어떤 것을 해도 즐겁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내 손아귀를 빠져나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운 바닷모래를 꽉 잡은 손. 나는 그저 가만히 누워 그것들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 처량한 고독 속의 4월달이었다.


꽃이 핀다. 모든 게 시작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새로움을 만나고, 적응해나가지만 나만 과거에 머무르는 것 같았다. 무기력한 십대의 마지막이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바쁜 한달을 보냈을 것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행동했으며 내가 결국 얻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좋게 말하면 항상 경직돼 있었던 어깨에 힘을 빼고 살았지만 다르게 말하면 나는 산산조각이 났다. 지나친 자유를 얻었지만, 오히려 그 자유에 속박되어 있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열심히 갈구했지만 얻을 수는 없었다. 책은 마음의 양식을 쌓는 거라 했지만 나는 이 책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외롭고, 쓸쓸하고, 공허함만 늘어갔다. 얻은 건 없었다. 끝없는 상실의 공감 뿐이었다. 내가 이것을 위해 4월을 살았고, 이 책을 읽었나 보다, 하고 생각만 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헷갈려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맨 처음이다. 서른일곱 살의 주인공이 보잉 747기를 타고 두꺼운 비구름을 뚫고 내려와 맙소사, 또 독일인가, 하고 생각하는 부분 말이다. 나의 흥미를 돋우던 그런 도입부였다. 주인공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왜 비틀즈의 Norwegian wood를 들으면 혼란스러워 하고, 또 왜 하필 독일인지. 의심스러운 도입부는 그러한 궁금증들을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아무리 책을 뒤져봐도, 서른일곱살의 주인공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왜 주인공이 맙소사, 또 독일인가, 라고 생각한 이유나 복선은 나타나지 않았다. 뱉어낸 문장을 끝끝내 작가는 책임지지 않았다. 굉장히 마음에 든다.

 

'1장 아련한 추억 속의 나오코'는 너무나도 낯익은 글이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분명히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묘하게 끌린다. 화자인 서른일곱살의 주인공이 내게는 너무 낯선 존재여서 그런 걸까.


순도 백퍼센트의 연애소설은 열아홉의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너무나도 솔직하고 안쓰러운 문장들이 많았다. 외면하고 싶어질 정도로 맑게 눈에 보였고, 둔탁한 아픔에 공감을 했다. 이때문에 아마도 나는, 다시는 이 책을 펼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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