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해 Apr 11. 2016

애프터 다크-무라카미 하루키

after dark/before dark-어두워진 후에/어두워지기 전에

자정이 가까운 한밤에서부터

새날이 밝아오는 아침까지 일곱 시간.

도시를 부유하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어둠의 감촉과 고독의 질감을 담은 이야기.


"밤은 비로소 끝난 참이다.

다음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아직 시간이 있다."


위의 파란색 문구를 읽고 충동적으로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글의 힘은 대단하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글로서의 나는 온전히 표현될 수 없다며 투정을 부리곤 했는데, 저 고작 네 줄짜리의 글은, 그것이 가진 무한한 힘을 여지없이 내게 깨닫게 해주었다. 철저한 미문주의가 아니면서도 글이 참 세련되고 차가운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 이런 글로서 표현될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 아마 참 매력적일 거다.


아사이 마리

어떤 이야기일지 예측이 가지 않았다. 간단히 줄거리를 요약해 표지에 남겨두지도 않았다. 책을 읽어보니 이해가 갔다. 내용을 요약할 수 없다. 가령 어떤 형식이나면,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꼭 끝을 맺어야 한다는 관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은 여러명이지만, 그 여러명의 인물들이 모두 주인공이면서 아니기도 하다. 한동안은 인물의 아무런 대사 없이 담담하고 뛰어난 문체로 상황을 묘사하거나 이야기를 정리해나가지만, 또 한동안은 오로지 인물들의 대화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언어의 활기와 정적을 자유자재로 밤이라는 공간에 은유해낸다. 서사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도 있다. 밤이 깊어짐에 따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것은 오로지 절대적인 흐름에 따라)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 외에는 이야기가  자유롭다. 장르를 넘나들기도 하고, 모호하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쫒기지 않는 여유롭고도 적막한 시간인 밤. 레스토랑 데니스에서 어두워진 후의 공기를 마시며, 오로지 의식의 흐름에만 집중해 글을 써내려간다. 그랬을 것이다.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오히려 꽁꽁 숨겨놨을 수도 있지만, 내가 볼 땐 그렇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덮고 나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독특하다."


장 뤽 고다르의 영화 알파빌, 스가 시카오의 노래 폭탄 주스, 퍼시 페이스 악단의 고 어웨이 리틀 걸. 이렇게 곳곳에 작가의 문화적 소양도 드러난다. 음악은 잘 모르겠다만, 장 뤽 고다르의 영화 알파빌을 본 사람은 커녕,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영화와 음악에 빠져살았던 작가, 그리고 그 작가가 써내려간 이야기, 참 반가웠다. 미인을 묘사하는 탁월한 능력도 과연 이곳에서 나왔을까.

(상관없는 것 같지만)


처음으로 접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이다. 혹시 내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지향점은 아니다만, 아마 이것과 가장 비슷한 무엇이 나올 것 같다.


..이것은 마치 장 뤽 고다르의 영화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