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소주. 버리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by 서하루

결국 두 번째 미션이 떨어졌을 때, 나는 그냥 모른척하길 택했다. ‘숙소마다 베딩 법칙이 각자 있을 거니 너희가 나한테 가르쳐줘야 하지 않겠어?’라는 태도를 취하기로 했다. 꽤나 당당한 듯 보이는 문장이지만 사실 현실에서는 소심하기 그지없는 말투로 “아… 제가 워낙 오래전에 해봐서요… 알려주실래요?”라고 말한 게 고작이었다. 부디 초짜 티가 안 나길 바라면서.


다행히 영자님은 누군가를 가르치길 좋아하는 성격이었고 본인이 하는 방식대로 베딩을 알려주었다. 매트리스 커버에 붙어있는 상표가 늘 오른쪽 귀퉁이에 위치하면 된다는 것, 이불솜을 아래에 두고 밑에서부터 파헤치듯 올라가다 끝에 닿으면 ‘휙’하고 커버를 솜에 뒤집어 씌운다는 것, 손님이 이불 더미에 속아 침대 하단 프레임이 솟아오른 걸 모르고 털썩 주저 않지 않게 하단부도 접어 올려준다는 것까지… 아주 상세하게 그녀는 알려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이 디테일한 교육이 나중엔 점점 더 나를 압박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당시에는 알 수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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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 청소를 위해 처음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질러진 쓰레기를 정리한 후 청소를 시작하는데, 이때 음식물(주로 제로 콜라나 토닉워터, 또는 소주 같은 음료)을 먼저 처리 한다. 가끔은 냉장고에 요거트나 초코우유가 남겨져있기도 하지만 절대 내용물이 남아있지 않으면서, 늘 쓰레기로 나오는 품목은 ‘단지 바나나 우유’다. 이렇게까지 바나나 우유가 맛있나? 한국인이나, 외국인이나 할 것 없이 술은 남기고 갈지언정 바나나 우유는 모두 해치우고 가는 사실이, 바나나 우유를 안 사 먹은 지 20년이 넘은 나로서는 너무 신기했다. 오늘은 나도 바나나 우유를 사 먹어 봐야지! 이렇게 내가 퇴근 후 메뉴를 고민하며 좋아하고 있을 때, 그리고 객실에서 누군가 차마 다 마시지 못하고 남겨둔 소주를 싱크대에 버리고 있을 때, 영자님이 찢어질 듯 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하루님! 소주 버리지 마세요!!!!”


순간 얼음이 된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술 좋아하세요?” 이 말을 뒤로 결국 내 무경력은 탄로 나고 만다.


객실에 남아있는 미개봉 음식물은 창고 선반에 잠시 모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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