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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향문 Jun 16. 2024

작가, 별 거 아니네

운은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작가, 별 거 아니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첫 작품을 완결 지었을 때, 그 어설픈 작품으로 계약에 성공했을 때, 나는 작가라는 직업이 참 쉽다고 생각했다.


듣자 하니 첫 작품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첫 작품을 완결 짓더라도 그 작품이 출간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작가 지망생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는 '반려비'를 맞았다는 후기들이 하루에도 번이나 쏟아졌다. 

(*반려비: 투고한 여러 출판사에서 줄줄이 반려 회신을 받았을 때 반려가 비처럼 쏟아진다는 의미로 쓰는 말)


그 후기를 보며 오만하게도 나는 조금 우쭐했다.

남들은 몇 년씩 준비한다는 '첫작'을 나는 고작 한 달 만에 마무리지었고, 재미 삼아 투고한 딱 한 군데의 출판사에서 3일 만에 계약제안을 받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대부분 망한다는 첫 작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그다음으로 쓴 글 역시 연일 플랫폼의 순위권에 올랐다.


나는 바야흐로 나에게 딱 맞는 직업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글을 쓰는 건 내게 별다른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 '재미'의 영역이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작업도 아니었고 그런 것에 비하면 수익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잘 나가는 대박 작가들처럼 억대의 인세를 번 건 아니었지만 시급으로 환산하면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 생각이 무너진 건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여태 쉽게만 썼던 글이 도통 써지질 않았다. 글이 막바지에 이르도록 내가 만든 캐릭터의 특성이 가늠되지 않았다. 별 거 아닌 문장이 좀처럼 나오질 않았다. 무엇보다, 독자들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기사에서는 연일 아무개 작가의 수익이 몇억이라는 둥, 어떤 작품이 영화화되어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는 둥, 희망적인 이야기들이 흘러나왔지만, 벌써 몇 개의 작품을 출간했는데도 내 글의 반응은 첫 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마디로 나아진 게 없었단 소리다.


그때쯤 해서 나는 깨달았다.


내 글에는 독자들의 마음을 끌 만한 무언가가 없다는 걸. 그 무언가를 써낼 실력도 없다는 걸. 아니, 실력을 떠나 나에게는 다른 무엇으로도 상쇄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바로 노력의 부재였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애쓰지 않았다.

글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며 허세 섞인 하소연을 몇 번인가 늘어놓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색에 불과했다. 그런 하소연을 할 때면 나도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으니까.


"비록 아이를 낳고 경력이 단절되었지만, 전 그래도 제 재능을 썩히지 않고 열심히 활용하고 있답니다, 그것도 아주 힘들게!"


나는 단지 그걸 내보이고 싶었던 거다. 그야말로 껍데기뿐인 허세였고 발전 없는 자기 합리화였다.


그런 깨달음 끝에 나는 180도 변했다.








...라고 하면 상당히 괜찮은 서사가 완성되겠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그런 고품격 성찰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얼떨결에 주어진 운이 오롯이 내 실력 덕분이라는 오만을 떨지도 않았을 테니.


나는 여전히 그 상태에 머물러 있다. 잘 팔리는 글은 못 쓰지만 차기작 계약에 큰 어려움은 없으며, 독자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하지만 이렇다 할 혹평 또한 없는.(당연하다. 읽는 사람이 없으니까.)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난을 준다고 했다. 그 고난을 통해 한층 더 나아가고 나아지기를 바라며.


나는, 적어도 이 직업에 대해서만큼은, 그런 고난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그만 둘 이유도, 무언가를 바꾸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언젠간 잘 되겠지' 하는 기약 없는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그래도 재능이 없는 건 아니니까'라는 결과 없는 자만심을 안식처로 삼았다. 그래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제법 고민하게 된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선 이 상태로도 괜찮지 않냐는 달콤한 자기 합리화가 들려온다. 내 다음이 어떻게 될지도 잘 모르겠다. 굳이 그런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도 소박은 치겠지, 그런 생각에 안심한다. 그게 내 현주소다.


진짜 절망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이 글은 내 허세와 자기 합리, 대책 없는 낙천주의의 농축버전이다.

이도저도 아닌 무명작가의 영양가 없는 독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이 글을 써 내려간 건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저 사람은 저렇게 쉽게 하는데 난 왜 이러지,

저 사람은 노력 없이도 무난하게 사는 것 같은데 난 왜 그게 안되지,

남들 다 하는 걸 왜 난 못하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안심하시길.


노력 없이도 뭐든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인 그 사람은 사실 발전이 없는, 발전할 수 없는 그 상태에 머물러 끊임없는 자기 합리에 발 묶여 있을지 모르니. 그래서 더는 나아가지 못한 채 껍데기뿐인 허세와 알맹이 없는 만족감에 도태되어가고 있을지 모르니.


시작은 말 그대로 시작일 뿐이다. 과정도 마찬가지다. 결과는 본인만 안다. 아니, 결과는 더 살아봐야 안다. 끝까지 가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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