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을 때가 있다.
내 모든 것이 보잘것없어 보이고 내가 쌓은 것들은 모두 부질없어 보이고 나라는 인간은 한없이 하찮게만 느껴지는 날들.
지나간 날들은 후회스럽고 내가 뱉은 말과 행동은 하나같이 수치스러우며 그래서 모두가 나를 싫어하는 것만 같고 날 비웃는 것만 같고 눈앞이 캄캄해져서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그런 때.
모두에게 외면당하는 것 같아 차라리 칵 죽어버려서라도 시선을 끌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단거리 달리기를 한 것처럼 가슴이 홧홧하고 답답하고 씁씁하고 꽉 막힌 것처럼 숨이 찰 때.
그럴 땐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해봐야 오뚝이처럼 다시 부정적인 생각들이 벌떡 고개를 쳐들고 일어난다. 백날 좋은 생각을 하면 뭐 해, 너는 그렇게 살았고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인간이고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텐데, 라며 나를 몰아세운다.
그럴 때 나는 작정을 한다. 나를 있는 대로 비난하고 폄하한다. 재판장에 선 검사처럼 내 죄를 어떻게든 찾아내려고 눈에 불을 켠다.
'그래, 어디 갈 때까지 가 보자. 네가 어디까지 가나 보자.'
흔히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그만큼 희망적인 말이 없다. 부정적인 생각이 제아무리 부정적이어봐야 제 꼬리 무는 것밖에 더 있나. 부정적인 것들에는 창의력이 없다. 꼬리를 물고 물다 보면 결국 그런 생각들도 질리기 마련이다. 특히나 매사에 쉽게 질리는 나는 더 그렇다.
누가이기나 보자는 듯 내 단점들을 떠올리고 내가 왜 못났는지, 어디가 어떻게 부족한지, 어떤 말과 행동을 해선 안 됐었는지,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탈탈 털면서 나를 몰아세우다 보면 문득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 사람은 할 말이 없어지면 변명을 늘어놓게 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는 알아서 검사 자리를 벗어나 나 자신을 적극 변호하기 시작한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그렇게까지 몰아세울 건 또 뭐야?"
"아니, 생각을 해 봐. 겨우 그런 일로 사람을 이렇게까지 몰아가냐, 이거야."
그때는 아무리 부정적인 생각이 끼어들려고 해도 틈이 없다. 끼어들어봐야 지청구만 들어먹을 뿐이다.
"아니, 그 얘긴 지금까지 한참 했잖아. 그러니까, 그게 이렇게까지 할 일이냐고."
더 이상 낙하할 지점이 없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힘을 잃는다. 떨어지는 동안 떨어지는 연료로 모두 소진해 버렸기에 부정적인 생각들은 더 이상 힘이 없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밑바닥에 나는 하나씩 새로운 것들을 쌓아 올라가 기만하면 그만이다.
"그래도 애가 야망은 있잖아. 뭘 해보려고 하잖아."
의지로 한 칸.
"그래도 여기까지 내려올 결심을 한 게 어디냐?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
용기로 두 칸.
"얘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면, 얘 주변 사람들은 다 호구냐?"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세 칸.
어쩌면 살아가는 건 매 순간 번지점프대에 오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어렵게 쌓아 올린 것들이 가장 높은 지점에 다다랐을 때 으레 번지점프대에 오르게 된다.
가만히 있어도 발밑이 꺼지는 것 같고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고 모든 것들이 나를 뒤흔드는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고작 그런 일로 죽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파묻힌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만 같은 공포가 엄습한다.
영영 그 위에서 두려움에 떨며 아래로도 위로도 올라가지 못한 채 사느냐, 눈 딱 감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다시 밑바닥으로 뛰어내리느냐는 선택에 달려있다.
나는 언제고 뛰어내릴 것이다. 내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인정하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처음부터 다시 쌓아 올리는 과정을 언제고 반복할 것이다. 그것이 번지점프대 위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불안하게 서 있는 것보다 낫다.
지금 나는 내 밑바닥을 딛고 서 있다. 눈앞은 여전히 캄캄하고 여전히 손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적어도 이 바닥은 단단하다. 뭐든 쌓아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하다못해 내가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내 키만큼은 올라선 셈이니 적어도 여기 서 있는 한 이 세상에서 내가 음의 값을 가질 일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