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혼성 WG (Wohngemeinschaft) 체험기
여느대도시와 마찬가지로 베를린에서 집구하기는 전쟁과도 같다. 첫학기에는 독일에 오래 머물 생각으로 온게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미리 기숙사를 알아봤다.
각 학교마다 기숙사를 관리하는 한국의 시스템과는 달리, 독일은 각 연방주 마다 전체 기숙사를 관리하는 Studentenwerk가 있다. 소도시의 경우에는 하나의 학교 조합이 많게는 20여개에 달하는 건물 전체를 관리하는 경우가 있고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같은 대도시의 경우 각 거주단지 마다 Studentenwerk가 따로 있다.
처음 살았던 소도시 kassel에서는 세 가지 옵션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3순위였던 건물을 배정받았다. 한국식 원룸처럼 주방이 따로 분리되지 않는 타입부터, 1.5룸이라 불리는 주방이 따로 분리된 타입, 화장실만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타입 등 여러가지 옵션이 있고 당연히 공유를 하면 할 수록 가격은 저렴해진다. ㅎㅎ
- 카셀에서의 1인용 기숙사. 일층이라 한번씩 키를 놔두고 올때는 창문을 통해 들어갔다 ㅎㅎ
이미 혼자 사는게 익숙해진 30대의 나는 도저히 다른 사람과 화장실이며 주방이며 공유할 수 없다는 생각에에 모든걸 혼자 사용하는 거주 형태를 골랐다. 그런데 두번째 학기 부터는 베를린에서 생활해야 했던 나는 1.5배나 되는 기숙사 비용에 못이겨 개인 룸과 별개로 주방만 공유하는 형태를 선택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 베를린에서의 두번째 기숙사.
예컨대 원룸 형태에서는 요리를 할때마다 환기를 시키느라 춥더라도 창문을 모두 열어놔야 했다. 뿐만 아니라 1인 가구더라도 필요한 식기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국자에서 부터 뒤짚개, 칼 등 최소한의 기구들만 장만하더라도 이래저래 사야할 것들이 넘쳐났다. 그런데 공용주방에서는 축적된 거주자들로 인해 온갖 주방용품이 모두 구비되어 있었고 방이 분리되어 있어 요리냄새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반년의 기숙사 계약이 끝날 무렵 나는 베를린 생활을 더 연장하기로 마음 먹음과 동시에 제일 중요한 새 거주지를 미친듯이 알아 보기 시작했다. wg gesucht나 immoscout와 같은 곳에는 매물이 많았지만 그만큼 광고나 스캠도 많아서 헛탕치기 일수 였고 어쩌다 viewing을 보러 가면 해가 전혀 들지 않거나 방이 너무 좁거나 하는 등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사실 여러 가지 다 따지면 집구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워서 지하철인 ubahn 역에서 가깝고 600유로 이하인 경우면 무조건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정말 기빨리는 일이다.
-친구를 통해 초대된 텔래그램 단톡방. 단기방을 구하는 외국인들로 북적거린다.
한국같은 경우 중개인을 통해 모든 매물이 거래되는 시스템인데, 독일은 개인이 발품을 팔아서 계약이 이뤄지므로 일일이 요일, 시간대를 맞추어 집을 보러 가야한다. 위치가 좋은 매물의 경우 뷰잉을 하러 가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예비 세입자들을 볼 수 있다. WG를 구하려면 집주인한테 편지를 써야한다, 내 이력서를 만들어서 돌려야한다 등등 썰을 미리 들었고 실제로 대학교 게시판에 가면 나 집구해요. 동물 좋아하고 담배 안펴요. 하는 자기소개개 flyer를 쉽게 볼 수 있다. 집구하는데도 자기 PR이 필수인 시대 ㅎㅎ
- 이렇게 룸메이트를 직접 구하기도 한다
내가 연락 닿아 뷰잉 까지 하게 된 곳은 자기 여자친구 편의를 위해 여성 세입자만 구한다던데 어딘지 꺼림칙했고, 두번째 본 뷰잉은 바로 옆방에 한국인 집주인 할머니가 같이 생활하는 곳이라 도저히 불편할 것 같아서 포기했다. 결국 쉽게 연락이 닿은 곳들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곳들이었고 아 과연 2주안에 집을 구할 수 있을까라는 정말 끝에 절친 david에게서 연락이 왔다.
너 베를린에 남기로 했다며? 내가 구한 플랫에 방하나가 남았어. 이거 니가 잡아야해 무조건.
와! 메세지를 확인한 순간 바로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고 다음날 뷰잉을 하러 갔다.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wedding지역의 플랫이었는데 역에서 도보 3분 거리에 모든 대형마트와, 베이커리, 음식점, 영화관이 10분 내에 위치하는 초역세권 이었다. 방이 물론 정말 작았지만 410유로에 모든 관리비 포함이라는 저렴한 월세 때문에 나느 바로 이곳으로 계약했고 2주뒤 이사했다.
같은 층에만 나 포함 4명의 룸메이트가 사는 대형 wg였는데, 나에게 이 집을 소개해준 콜롬비아 친구 David, half 독일, half 프랑스인 Pier, 체코 출신 Perry 그리고 독일인 Tom.
1. 내 방 창가에서 찍은 무지개
2. 함께한 첫 그룹 디너 그리고 스코티!
3. 아기자기한 pier의 방
어쩌다보니 4명의 남자 룸메이트들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바로 아래층에는 집을 관리해주는 두명의 독일인 커플이 사는데 이들 또한 남자라서 총 6명의 남성과 한 건물에 같이 사는 셈이다. 한꺼번에 4명의 룸메이트가 생길 줄은 생각도 못했으며 그들이 다 남자라니. 한국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거주 형태이기 때문에 처음 집주인을 만났을 때 조금 망설였지만 나는 선택지가 없었다.
- 콜럼비안 디너로 다같이 아레파스를 먹던 날.
그리고 1달 넘게 생활하고 있는 지금, 함께 생활하는데 성별은 정말 중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외출할 때 환기 때문에 방문을 전부 오픈해놓고 다니기도 하고, 각자의 방에서 가볍게 맥주 한잔씩을 하다보면서 느끼는데 내방이 제일 더럽다. 어찌나 다들 깔끔하게 하고들 사는지.
가끔 샤워시간이 겹치는 아침이나 밤에는 눈치게임을 해야하기도 하고, 3명이상만 들어가도 주방이 금새 북적거리긴 하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큼 좋은 룸메이트들을 얻었기에 WG생활을 시작한데 후회는 없다. 특히 혼자 였으면 꽤나 적적했을 베를린의 겨울을 이겨낼 동지들이 있어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