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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주 Feb 01. 2021

내 몸은 너무 빨리 더러워진다.

'씻는다'. 생존을 넘어 인간 존엄을 위한 필수적인 일 


오늘도 숨 쉬고 살아가느라 지치고 힘들겠지만,
샤워는 꼭 하자. 



"그들은 우리를 우리 자신의 똥오줌 속에 빠져 죽게 하고, 진흙창과 배설물 속에서 죽어 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파괴해서 우리를 짐승 수준으로 타락시키기를 원했던 것이다. … 나는 내 밑바닥으로부터 나오는 '살아야 한다'는 명령을 들었다. 설사 내가 만일 아우슈비츠에서 죽는다고 해도 나는 '인간'으로서 죽을 것이며 끝까지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킬 것이다.…" 
                                                                                           테렌스 데 프레, <생존자 中> 



정말 더럽게 안 씻던 시절이 있었다. 

바야흐로 20대 초반. 건강한 신체를 빌미로 배달음식만 시켜먹던 나는 잘 씻지 않았다. 

당시 유일한 즐거움은 술 마시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게임하는 술집이 왜 그렇게도 재밌었는지. 난 쑥스럼이 많은 사람인데 술만 들어가면 왜 처음 본 사람들과도 이런저런 얘기를 잘 나누는지. 씻는 것도 술 마시러 나가려면 화장을 해야 되기에 씻었다. 짧은 치마와 높은 구두를 신고 쉐도우 빡! 속눈썹 뽝! 화장을 하며 예뻐진 나를 보는 게 왜 그렇게 즐거웠는지. 


그렇게 흥이 돋아 신나게 놀고 술과 화장으로 뒤범벅된 몸을 이끌어 밤늦게 들어오면 조용한 원룸 속에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웠다. 혼자 살기에 잔소리할 사람도 없으니 나만 오케이 하면 됐다. 그렇게 최소한의 예의로 화장만 꾸역꾸역 지운 뒤 그 먼지를 이불 삼아 잠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친구들이 바빠 함께 술을 마실수 없었던 시기였다. 

집에서의 혼술도 노잼이고, 시켜먹은 엽떡은 더부룩하며, 일주일 정도 밖을 나가지 않아 푸석푸석한 얼굴과 떡지다 못해 윤기가 반질반질 흐르는 머리카락으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생각했다. 

"아 그냥 죽을까?"라고. 


목적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때의 나는 숨만 겨우 붙어있던 잉여인간 그 자체였다. 

당시 내 무기력증에 대한 원인은 많다. 여기서는 중요하진 않으니 넘어가겠다. 


나는 조금만 기다리면 온수가 콸콸 나오는 최상급 시설에 살면서도 샤워를 잘 안 했다. 

원 큐로 케어 가능한 바디바와 습식 수건(쭉 짜면 금방 말라 수영장에서 쓰는 수건들) 한 장으로 생활할 정도로 샤워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손, 발도 제대로 안 씻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씻고 싶지 않았다. 귀찮음을 넘어 씻고 싶지가 않았다. 하나 기억나는 건 그 시절 내가 유난히 자신감 없고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였단 것이다. 






직업을 찾으며 살아가는(=백수) 27살. 71만 분의 사나이이자 71만 명 중 하나인 나. 

백수 생활 n년차에 다다른 내가 규칙도 절도 없는, 혼돈의 카오스와 같은 내 하루에서 꼭 하나 지키는 것이 있다. 바로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한다는 것. '1일 1 샤워 하기'는 내 데일리 플랜에 항상 적혀있다. 그리고 나는 '겨우' 샤워를 수행하고 난 뒤 아주 큰 '참 잘했어요, OK' 표시를 한다. 

샤워에 재미를 두기위해 대나무 어쩌고로 짰다는 아주 부드러운 타월과, 내가 좋아하는 애플후레쉬 샴푸를 구비해뒀다. 또한 때X메스로 유명한 각질제거 장갑과 과일향의 바디 스크럽을 사용한다. 그리고 가끔 돈이 생기면 올리브영 바디케어 코너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어떻게 더 깨끗해질까?'고민하며.(농담) 





집단 강제수용소에 들어간 사람은 처음에는 절망감으로 인하여 자신의 외모에 대해 무관심해지지만,
점차로 씻지 않고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서두에 소개한 <생존자>를 처음 접한 건 대학교 수업시간이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인데, 수용자들이 있던 곳은 청결을 유지하기란 도저히 어려운 곳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재소자들은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씻었다.  워낙 오래전이라 자세히 기억나진 않으나 교수님이 이런 얘기를 덧붙였던 것 같다. 씻는다는 것은 인간 존엄을 위한 일종의 제의 행위였다고. 씻음을 통해 수행하고, 몸을 정갈하게 함으로 그들이 살아있다는 의지를 조용하고 강력하게 피력한다고 말이다. 

(홀로코스트를 비유로 삼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삶의 문턱에서 씻음을 통해 존엄을 유지한 그들의 불꽃에 주목해주길 바란다.) 


그렇게 현재의 나는 모아둔 돈만 야금야금 써 대는 95년생 백수이지만, 샤워 하나는 기깔나게 매일매일 하고 있다. 늦잠을 자고, 공부를 하지 않은 하루도 샤워는 빼먹지 않는다. 어딘가를 등교하거나 출근하는 타인의 규칙성과는 조금 다르지만, 내 나름의 무규칙 브레이크 덕분일까. 큰 무기력증에 빠지지 않는다. 요즘 들어 미디어에서 자존감은 작은 노력을 하나하나 성취하여 쌓아 나가는 것이라고 많이 말하더라. 겨우 1일 1 샤워 컴플리트에 뿌듯해하는 나지만 자존감 논의와 같은 맥락에서 비춰 볼 때 상당히 효과적이라 할 수 있겠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중, 나와 비슷한 상황이며(=백수 겸 취준생), 무언가의 이유로 하루를 의미 없이 놓아버릴 정도로 무기력하게 지낸다면 하루 한 번 샤워해보기를 조심스레 권해본다. 무기력에 하루 종일 게임만 하더라도 샤워를 하고 게임하자. 넷플릭스만 주구장창 보더라도 샤워하고 보자. 20분이라는 다소 짧은 시간 속에서 '절대 바닥으로 추락하진 않겠다'는 인간으로서의 끈질김이 피어오를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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