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향과 책임과 고집의 트라이앵글
줏대와 고집 사이에서 중용을 찾아 헤매는 95년생
"ㅇㅇ이는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전형적인 애죠."
초등학교 6학년 졸업을 앞둘 적.
내가 좋아했던, 그리고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모 체육 선생님이(유난히 육상에 높은 능력치를 보여줬던 어린 시절 필자..★) 엄마에게 했던 말이라고 한다. 엄마는 욕인 듯 욕 아닌 그 정갈한 말에 상처를 받았다고 어른이 된 나에게 전해줬었는데, 조금 놀라긴 했다. 지금은 MBTI가 증명해주는 내 팔랑귀와 우물쭈물이 타고난 특성이었나 하고 말이다.
내가 취향이 없는 건 아니다.
짬뽕 짜장면과 같은 음식 취향은 꽤나 확고한 편이고, 아이돌 음악보다는 밴드 음악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떤 포인트에서 사람들에게 쉽게 쓸려 다니는 편인 건 맞다. 이 사람이 차분한 표정으로 A에 대해 말하면, 음, 이것도 맞는 것 같은데? 다시 또 누군가 열변을 토하며 B에 대해 논하면, 어? 뭐야? 이것도 맞는 말이잖아?라는 식이다. 그리고 나면 결국 내 결론은 'A도 ~부분에서는 맞고, B도 ~부분에서는 맞는 것 같아.'로 희미하게 도달하고 만다. 어쩌면 사회과학을 복수 전공한 본인이 서술형 답안지를 쓸 때는 좋은 부분일지 모르겠으나, 95년생, 27살로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딘 지금은 중립에 회의적이다. 요즘에는 세간에 욕을 먹고, 한쪽에게 비난을 받을지 언정 내가 진정 무엇에 긍정하는지를 찾아가는 게 낫다고 보며 노력한다.
선택과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은 책임이다.
필자는 모 공기업에서 약 10개월 정도 계약직을 했던 적 있다.
좁은 부서였지만 일이 많았고, 온갖 잡무를 도맡아 하던 나는 무려 수 십년 간 회사생활을 하신 정직원 분들을 보며 생각했다. '아니 왜 저렇게 답이 뻔히 정해진 걸 왜 고민하시고 고민하시지?'겨우 3개월 차, 계약직으로 한정된 업무를 하면서 저런 말을 생각할 수 있었던 건 나에게 아무도 '책임' 지라고 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들은 달랐다. 어느 부서 어떤 위치로 국민 세금으로 사업을 돌리는데 책임이 막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물론 간혹 과한 책임 회피가 있다는 것은 높은 직책의 정직원도 인정한 사실이지만 이미 이런 문제에 대해 나보다 훨씬 깊이 고찰했을 똑똑한 이들이 모인 기업 문화를 단편만 맛보고 욕하진 않겠다. 내가 내 인생에서 선택되어지는 책임과, 몇십억이 달린 선택의 책임은 비교하긴 힘들 테니까.
하고픈 말은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이라는 것이다.
A를 선택했든, B를 선택했든 그 의견이 거센 비난을 받고 철회를 당한다 하더라도 틀렸음을 인정할지 언정 옆 사람에게 '내가 뭐랬어!'라고 하진 말자는 거다. 어쩌면 나는 후폭풍이 두려워 지금껏 묵묵히 중립의 길을 걸어왔던 것일 수도 있겠다.
중립의 길을 벗어나 주저 없이 선택 하자는 것이, 귀 막고 코 막고(?) 고집스러운 사람이 되라는 건 또 아니다.
내 의견의 추락이 무서워 더 이상의 논의를 거절하고 확장의 기회를 놓치진 말자. 사실 이건 나에게 세뇌하듯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태생적으로 고집스럽게 태어나 나 욕먹는 거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데, 다행히 사회화를 통해 많이 고쳐진 케이스다. 솔직히 달관한 분들처럼 '고마워, 너의 멋진 의견 잘 받을게.'라고 어른스럽게 대처하기엔 아직 멀지만, '(반박당해서 솔직히 좀 거시기 하지만 저렇게 말해주면 나한테 좋잖아? 어? 내 의견이 더욱더 쌔끈하게 빛날 수 있는 거라고! 시야가 추가된 거잖아. 세상은 넓다고, 나만 사는 거 아니야, 알지알지?) 아~ 그렇구나. 내가 그건 생각 못 했네.' 정도로 타협하며 살아간다.(^^...)
개인적으로 본인 스스로를 아프게 할 수 있는 지식, 남을 물리적, 정신적으로 해칠 수도 있는 생각, 차별,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상 등은 선택에서 배제하는 편이다. 세상에는 선택할 수 있는 것만큼 답이 정해진 일들도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고 특히나 태생이 워낙에 자존심 강하게 태어난지라 연습 또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오늘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넘쳐흐르는 정보 속에서 내 줏대를 찾아 더욱 완전한 '내'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