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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온 Jun 27. 2015

탄수화물을 위한 변명

탄수화물 그 자체는 죄가 없다

저탄수화물식의 함정

    

다이어트에 관한 상식을 생각나는 대로 말해 보라고 하면, 열에 여섯이나 일곱 정도는 대개 ‘탄수화물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특히 정제된 탄수화물은 몇몇 사람들에게는 거의 공포의 대상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인데, 실제로 높은 GI(Glycemic Index, 탄수화물이 분해되어 혈당치를 상승시키는 속도의 지표)지수를 가진 고도로 정제된 탄수화물 식품은 혈당치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혈당치의 급격한 변화가 몸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했을 때, 딱히 긍정적인 식품이라고는 볼 수 없다.

    

다만 요즘처럼, 탄수화물이 건강의 적 취급을 받으며 체중 증가의 주범처럼 몰려가는 것에 관해서는 개인적으로 이견이 있다. 농경 생활을 시작한 이래, 수천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인류의 생존을 책임져 온 가장 중요한 영양소 중 하나인 탄수화물은 왜 지금 와서 갑자기 악의 축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일까?

    

인류가 섭취하는 탄수화물의 양대 산맥인 쌀과 밀 중, 밀을 예로 들어보자.


    문명의 발달이 낳은 존재, 전분(starch)


기계 문명의 급속한 발달은 식문화에도 다방면의 변화를 가져왔다. 가령, 현대인의 식생활에서 결코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밀가루만 봐도 기계 문명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은 식재료 중 하나다. 보통 ‘밀가루’ 라는 말을 들으면, 대형마트나 시장 등지에서 구매할 수 있는 종이 봉투에 든 밀가루 정도를 생각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가장 무난하게 많이 쓰는 밀가루는 ‘중력분’이라 불리는 종류인데, 글루텐 함량에 따라 분류된다.

    

정해진 기준은 없지만 대개 글루텐이 11% 이상이면 강력분, 9~10% 선이면 중력분, 그 이하를 박력분이라고 한다. 요리에 그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 해도 보통은 밀가루가 이렇게 세 종류로 크게 나뉘어 진다고 인지하고 있을 뿐, 당장 국내의 식품 대기업인 C모 사에서 생산하는 밀가루의 종류만도 90가지가 넘는다는 부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것은 현대에 들어 고도로 복잡 다변화된 생산 공정이 낳은 결과다. 밀 한 톨을 제분해도 수십에서 수백 가지의 각기 다른 성질의 밀가루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기술의 발전 덕이다. 이것은, 현대의 밀가루는 과거의 밀가루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미세하게 가공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이런 기술의 발전은 높은 GI 지수를 가진 식재료가 식문화 전반에 깊숙이 침투되도록 했다.

용도에 적합하게 고도로 가공된 밀가루는, 조리상의 편의를 위하여 일정량 이상의 전분이 포함된다. 함량은 용도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녹말이라고도 부르는 이 전분이야말로 현대에 들어 탄수화물을 악의 축으로 불리게 한 주범이다.

    

녹말은 탄수화물로 구성되어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작물에서 얻을 수 있다. 녹말은 적은 양을 섭취하고도 인간이 활동하는 데 쓰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영양소다. 이 녹말이 입 안에 들어가면 아밀라아제라는 침 속의 효소에 의해 1차적으로 분해되고, 위에서 최종적으로 분해되면 인간의 몸이 에너지로 이용하는 최종 형태인 포도당이 된다. 녹말만큼 코스트 퍼포먼스(Cost performance, 가성비)가 좋은 에너지원도 드물며, 이 때문에 녹말이 풍부한 농작물들은 구황작물로서 여러 차례의 식량난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딱히 구황작물이 필요한 상황에 처해있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훨씬 높지.

    

결국 결론은 간단하다. 탄수화물 그 자체는 독이 아니다. 다만 탄수화물의 한 종류인 녹말(starch)이 다량 포함된 식재료가 최근 문제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을 뿐이다. 탄수화물에 대한 오해 때문에 극단적인 저탄수화물 식이요법이나 무탄수화물 식이요법을 실시할 경우, 몸에 좋기는커녕 탄수화물 결핍에 의한 케톤증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일상 속에서 녹말(전분)이 풍부하게 함유된 음식의 섭취를 줄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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