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작은 섬 란사로테의 야이자 마을
나는 공간의 힘을 믿어. 굳이 오늘도 예쁜 카페에서 글을 쓰는 이유는 공간의 힘 때문이야. 공간이 자유로우면 나도 자유로운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고 공간이 깨끗하고 절제되어 있으면 나 역시 절제되고 담담해지는 기분이 들어. 게다가 공간에서 공존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 나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잡아 글을 쓸 수 있지. 나 혼자서 뚜벅뚜벅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은 집에서도 할 수 있고 식당에서도 할 수 있어. 하지만 굳이 이 공간을 찾아 글을 쓰는 이유는 공간의 영향을 받아 집중하며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해. 천천히 그 공간을 음미하는 시간이 소중해. 공간의 분위기, 외관 디자인, 실내조명의 색상을 유심히 관찰할 때면 공간의 감정을 함께 느끼게 돼.
란사로테의 '야이자'라는 동네 역시 공간이 참 독특했어. 마치 눈 내린 듯 새 하얀 동네였지. 경사진 옥상 테라스와 평평한 지붕 모양이 중절모처럼 보이기도 하더라. 유럽 남부 지역의 집들은 이렇게 하얀 집들이 많아. 대표적으로 그리스 산토리니의 하얀 집도 그렇고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가도 하얀 집들을 자주 볼 수 있지. 스페인의 남쪽에 있는 란사로테 섬도 마찬가지로 하얀 집이고 말이야. 남부 지역에 유독 하얀 집들이 많은 이유는 강렬한 태양을 반사시키기 위해서야. 조금이라도 집을 시원하게 유지하기 위해 하얀 벽으로 도배를 해놓고 있지.
모든 집들의 외관은 하얗지만 군데군데 아주 선명한 초록색 문들이 있어. 풀, 들판과 같은 파릇파릇하고 선명한 초록색 문을 지니고 있었지. 하얀 집에 칠해진 선명한 초록색 문과 창문으로 사람들은 이곳을 '초록 마을'이라고도 부른데. 왜 하필 초록색이었을까? 란사로테에 나무가 많아서일까? 오히려 섬이라 바다가 더 자주 보였는데, 왜 초록색일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 나라면 자주 눈에 보이는 바다 색깔을 칠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이곳이 이렇게 초록 마을로 불린 이유는 내 예상처럼 '바다'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어. 아주 오래전 바다에서 생계를 이어오는 어부들은 고기잡이 배가 좀 더 눈에 띄도록 색깔을 칠했었데. 눈에 조금이라도 더 띄기 위해 파란색 대신 대비되는 초록색을 칠했었다고 해. 물자보급이 어려운 란사로테에서 페인트를 구하기는 힘들었을 거야. 그래서 먼저 초록색 페인트로 고기잡이 배를 먼저 칠하고 남은 페인트를 모아 집의 문, 창문에 칠해 놓는 것이지. 하얀 집 위에 초록색 문을 칠하면서 야이자 마을의 모든 공간들이 초록색으로 되었다고 해. 여기에 시간이 지나 건물 스페인 도자기와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붙여 넣어 장식을 만들어갔다고 해.
마치 애니메이션 세트장과 같았던 야이자 마을의 외관 풍경을 바라보며 이런 공간에서의 삶은 어떨지 상상하게 되더라. 어부들이 초록색 페인트를 칠하고 공간을 만들어갈 때 얼마나 설레었을까. 하얀색처럼 단순하지만 가끔 보이는 초록색깔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삶을 이어나가지 않을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이 섬을 찾는 이유가 단순하면서도 원초적인 생기를 느끼기 위해 찾는 게 아닐지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