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빛 호수 대신 초록 호수

란사로테의 엘 골포(El golfo)

by 여행하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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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가 동떨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 그러니까 다 사람들은 이리로 걸어가고 있는데 나 혼자 저리로 걸어가는 느낌. 이것저것 다양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끔 나 혼자 동떨어져 보이는 느낌이 들어.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사람들 집단 속에 있는 나는 이방인이고, 여행을 전문적으로 다니는 사람 속에 있는 나도 이방인이야. 이것저것 관심이 많다는 건 그만큼 특출 난 한 분야가 없다는 이야기와도 같은 소리지. 그래서 전문 집단에 가면 내가 상대적으로 미진해 보일 때가 많지만 이제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해. 어쩌면 여러 분야를 관심 있게 바라본다면 언젠가 나만의 독특한 분야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더 깊숙하게 나 자신을 탐구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분야를 오랫동안 꾸준하게 관심 있게 바라본다면 언젠가 나만의 분야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스스로에게 위안을 건네.


이렇게 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늘 소개할 장소가 나와 닮았기 때문이야. 아직 덜 다듬어져 있고 놀랄 만큼 다른 지형들과 다르면서 화려하고 예쁘지는 않아. 거칠고 다듬어야 할 내용 투성이야. 그럼 어때. 호기심이 생기는걸. 때론 완벽한 아름다움보단 덜 다듬어졌지만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모습이 더 마음을 끄는 법이니까. 그 모습이 나와 비슷해 위안을 삼을 수 있으니까 왠지 이 장소에 마음이 가고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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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골포(el golfo)는 초록색 호수야. 화산 분출로 만들어진 호수라는데 안에 들어가 볼 수는 없어. 멀리서 바라보는 호수의 색깔은 불투명에 가까운 초록색이야. 마치 물감을 물에 타 넣은 것처럼 초록색깔이 선명하게 보이는 장소야.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이렇게 초록색 물이 나타날 수 있지?라는 궁금증이 먼저 떠오르는 장소이기도 해. 한 번도 초록색 호수를 만나보지 못해 내가 아는 파란 호수와 다른 초록 호수가 낯설고 어색하게만 느껴져. 마치 돌연변이를 보듯 호수를 바라보게 되지.


이름부터 뭔가 그로테스크하지 않아? 골포 라니... 무슨 몬스터 이름 같아. 이름도, 물의 색깔도 가까이하고 싶은 느낌은 아니었어.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고 골똘히 생각을 하면 할수록 어쩌면 내가 아는 기준이란 게 다소 편협한 시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호수와 바다는 파란색이어야 한다는 생각, 아름다운 호수는 에메랄드 빛깔이라는 점이 꼭 법칙처럼 정해진 것은 아니잖아. 그저 이렇게 독특한 호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대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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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행인 점은 요즘은 독특한 모습도 많이 존중받고 주목을 받는 세상이야. 그래서일까? 엘 골포를 찾는 사람들도 해마다 많아지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엘골포에들려 독특한 물빛을 감상하고 또 그렇게 독특한 모습을 바라보지.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에메랄드빛 영롱한 호수의 모습은 아니야. 어제 아바타 2를 보았는데 그야말로 물빛이 청명하고 환상적이더라. 아바타 2의 물을 생각해서는 절대 안 돼. 환상 속의 물빛이 아닌 탁한 초록빛이라 예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거든. 하지만 이렇게 독특한 것이 하나 둘 모일 때 좀 더 아름다움의 기준이, 삶을 바라보는 관대함이 넓어지지 않을까. 나와 닮은 엘 골포를 위하여, 그리고 나를 위하여 나는 엘 골포라는 호수를 조금은 더 관심을 갖고 감상하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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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엘 골포(El golfo)는 영화 애호가들에게 특히 사랑을 받는 장소야. 특히 고대 문명시대 장면을 연출할 때 엘 골포에서 촬영을 많이 하였다고 해. 구석기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국 영화인 One Million Years BC (1966)의 배경이 이곳이고, SF 영화인 SF 영화 Enemy Mine (1985), La Iguana (1988)도 엘 골포에서 촬영을 하였다고 하니 영화와 비교하며 이 지역을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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