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뒤 다시 봄이 오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쓰기까지

by 여행하는 기획자

나는 인스타그램 속 사진들처럼 늘 밝고 화려한 삶을 보여주길 원해 나의 기록은 언제나 동화 같았다. 맛있는 곳을 갔거나, 멋진 카페를 간 이야기는 내 글의 주요 소재 중 하나였다. 늘 동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만 글로 박제하다가 나의 힘들었던 시간들을 기록해 보니 꽤나 쉽지 않았다. 엄마가 아팠던 기억은 완전히 내 머릿속 기억을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 그때 내 감정을 글로 남겨놓는 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기억을 떠올리는 게 힘들기에 나의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나를 배려하고자 병원 생활의 이야기는 암묵적으로 꺼내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치료를 받았던 병원부터, 그 병원이 위치한 도시, 병원 첫 치료를 받았던 벚꽃까지 싸잡아 기억 속에서 완전히 없애고자 부단히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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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니 다행히 기억이 점차 희미해져 갔고 다행히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조용히 시간 속에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아주 우연히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가족이 아플 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가끔은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네. 세상에서 나만 힘든 것 같아."


이상하게 그 시기에는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는 시기였다. 속으로는 "많이 힘들구나.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괜히 "나도"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내 아픈 기억들이 소환되는 게 두려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약간 마음이 불편했다. 그때 뭐라도 도움 되는 이야기를 해줄걸, 공감을 해줄걸. 등등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게 나 역시도 내가 가장 힘들 때 유사한 상황을 겪은 경험자의 이야기들이 가장 공감이 되었고 필요로 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어떤 의사 선생님께서 자신이 의사임에도 부인의 병을 뒤늦게 발견하면서 치료하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집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책에는 자책감, 절망감, 가끔의 기쁨 등이 담겨 있었는데 마치 나의 감정과 비슷해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 깊은 절망에 빠졌을 땐 함께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던 사람들이 나온 이야기가 힘이 된다. 설사 계속 구렁텅이에 있다고 해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나만 혼자가 아니구나, 언젠가 다 이겨낼 수 있구나 등등의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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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누군가의 이야기에 힘을 받았으니, 나와 유사한 상황을 겪은 다른 이에게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도, 나도, 가족 모두도 시간이 지나니 점차 건강해지고 안정되어 가니 조금은 안도의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 이야기로 누군가 '이 사람도 이런 상황을 겪어 이렇게 버텨왔구나.', '지금은 많이 나아졌구나.' 등의 생각을 전달받으며 위안 내지 약간의 무게를 덜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 약간의 힘을 얻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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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벚꽃은 피기 시작하였다. 수술과 각종 치료 과정이 끝나면서 1년간의 대장정이 마무리되고 있다. 이제 3주마다 병원에 입원하는 대신 6개월,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검진만 받으면 된다. 한편으로는 병원이라도 다녀서 치료를 할 수 있었는데 이제 모든 관리를 엄마 스스로 혹은 가족이 도와주면서 해야 한다니 더 긴장이 되기도 하다. 그렇지만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다신 엄마가 아픈 모습을 보는 게 싫어 건강 관리에 모두들 관심이 높다.


주 3일은 치킨 2일은 족발이 국룰이었던 우리 집에서 어느덧 호두와 찐 마늘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저녁엔 소주를 마셔야 잠이 잘 온다는 가족들은 소주 대신 브로콜리, 양상추 등을 갈아 만든 음료를 마시고 있다. 이 변화가 아직은 낯설고, 가끔은 치킨이 그립지만 엄마를 생각하면 동굴에 갇힌 웅녀처럼 마늘과 쑥만 먹고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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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견디는 건 괴롭다.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시기 덕분에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떻게 하면 더 사랑할 수 있을지를 한참 생각할 수 있었다. 엄마가 편찮으셨을 때 내가 겪은 괴로움의 실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엄마가 아프면 나를 보지 못할까 봐, 엄마가 나랑 이야기를 못할까 봐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 두려움의 근본 원인은 그만큼 엄마를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괴로움의 크기와 두려움의 크기는 내 사랑의 크기와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쉽진 않지만 어떻게 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안타깝게도 이 시기를 겪은 뒤 아주 극심한 효녀가 되었다는 등의 극적인 반전은 없다. 그저 오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루하루 건강을 위해, 좀 더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기 위해 걷고, 웃는 일들을 자주 만들고자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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