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걸음으로 구릉을 올랐을 때, 나의 마음
벚꽃이 완전히 땅바닥에 떨어질 때 즈음 엄마는 약물 독성으로부터 조금은 회복되셨는지 산책을 하자고 하셨다. 운동복을 갈아입으시고 호기롭게 물 2병을 챙기셨다.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는 방법은 함께 운동을 하는 것뿐이었다. 나와 남편도 운동화를 동여 메며 엄마를 졸졸 따라나섰다. 머릿속으로는 엄마의 컨디션이나 현재 감정들이 궁금하였다. 하지만 과도한 관심이 되려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나의 다정하지 못한 성격 탓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아파트를 따라나서면서 툭 말을 꺼냈다.
"정말 살다 살다 별일도 다 있어. 엄마 몸은 철인인 줄 알았는데. 황당하긴 하다. 그렇지?"
"그러게. 그래도 이런 일 아니면 언제 너희 부부와 산책을 해보겠어."
누가 누굴 위로하는지 모르겠다. 통상적으로는 안 아픈 내가 이제 막 주사를 맞고 오신 엄마를 위로해야 하는 게 맞는데 엄마의 말 한마디가 적절하게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침울한 기분의 연속이었지만 엄마의 한 마디에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한편으로는 '이런 일 아니면 언제'라는 말에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다. 너무 나만 생각하며 살아온 게 아닌가. 왜 진작 자주 함께 운동하는 시간을 만들지 않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을 하고, 공부를 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엄마, 아빠, 가장 소중한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고 스스로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인데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살았던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생각을 하는 사이 벌써 벚꽃길이 나타났다. 활짝 핀 벚꽃은 쳐다보기도 싫었지만 다 떨어진 벚꽃 잎을 함께 밟으며 천천히 걸어가니 그 시간은 참 포근했다. 엄마가 많이 힘드신 와중에도 이렇게 산책을 선택해 줘서 감사했다. 더 튼튼해지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고마웠다. 엄마의 아픔은 내게 절망, 좌절, 슬픔, 괴로움의 총체적 집합이었지만 이렇게 엄마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감사한 마음과 위안의 감정이 찾아오기도 했다. 절망 가운데서도 아주 가끔 기쁨이 찾아와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다.
엄마의 산책하는 모습을 계속 사진에 담았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엄마의 뒷모습, 앞모습을 예쁘게 담아 주었다. 엄마는 마스크를 벗고 바람을 느끼시며 나뭇잎을 보면서 천천히 걸으셨다. 걷기에 딱 이상적인 날씨였다. 가족이 아픈 상황을 처음 겪어보는 나로서는 요 며칠간 모든 상황들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날씨도, 봄바람도, 만개한 꽃들까지 저 세상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엄마와 함께 산책을 하니 평범한 산책길도 소풍을 온 것처럼 멋있었다. 문제는 엄마가 아니라 내 체력이었다.
엄마가 체력 단련을 위해 선택한 코스는 구릉 코스이다. 평소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앉아서 일만 하는 나로서는 구릉을 10분 이상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엄마는 오히려 나보다 더 활동적이고 사뿐하게 걸음을 옮겨 다녔다. 나, 남편, 엄마 중 가장 빠르게 구릉에 올라간 사람도 엄마였다. 지난주 치료를 받은 게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기셨다. 오히려 내가 못 따라가지 엄마는 나를 걱정하기 시작하셨다.
"너 이렇게 체력이 약해서 어떡하니. 운동 좀 해야겠다."
엄마가 걱정돼서 따라온 산책이었지만 정작 엄마는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익숙하면서도 다행스러웠다. 늘 엄마는 나를 걱정하였고, 나를 챙겨주었다. 이제 그 반대의 입장이 되어보니 나는 너무 미숙하였고 감정적으로 무너졌다. 다시 산책을 하면서 엄마가 나를 챙겨주니, 이 상황이 말도 안 되지만 안도했다. 그래도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는 게 싫어 뒤뚱뒤뚱 구릉 위를 올라갔다.
운동을 평소 즐기지 않은 이유는 어떤 운동이든 내가 하면 늘 뒤처지기 때문이다. 업무, 다이어트, 하다못해 공부라도 반에서 중간 이상은 하는데 운동만큼은 늘 낙오자가 되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엄마와 함께 하는 운동이라면 뒤쳐지더라도 좋다. 차라리 내가 뒤쳐지는 게 낫다. 이렇게 함께 공존하는 시간 자체가 감사하고 소중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엄마가 더 건강해지는데 내가 일조하는 것 같아 마음에 든다. 그동안의 운동은 그저 피곤, 좌절, 후회가 엄습했다면 이번 운동은 뿌듯함과 설렘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들었다.
산책을 하면서 살짝 웃으니 엄마도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갖고 있는 핸드폰으로 나를 사진 찍어 주셨다. 엄마는 어렸을 적부터 내 사진을 많이 찍어주시곤 했다. 나는 부디 엄마가 70살이 돼도, 100살이 돼도 늘 내 곁에서 내 사진을 찍어주셨으면 좋겠다. 사진을 찍어주는 타이밍에 벚꽃 잎이 선물처럼 내 머리 위에 앉았다. 여전히 활짝 만개한 벚꽃은 엄마가 아프셨던 모습과 겹쳐 생각하기도 싫지만 벚꽃 한 잎이나 이미 떨어진 벚꽃이라면 좋은 기억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엄마와의 사뿐한 산책으로 우울했던 감정이 조금은 사라지게 되었다.
가장 힘든 상황은 상상 속의 상황이다. 나는 엄마가 아프다는 상황이 두려웠다. 이 상황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할 정도로 기분이 추락한다. 내가 쉰이 돼도, 환갑이 돼도 엄마 아빠는 나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힘을 때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상상을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몸을 사용하는 것이다. 현실을 눈으로 직접 보고, 손을 잡고, 필요하다면 같이 운동을 하는 것이 내겐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지 말고 정확히 상황을 바라보고 함께하는 게 오히려 위안이 된다. 아픈 기억도 슬픈 기억도 상상하는 것보다 실체를 바라보는 게 조금은 아픈 마음이 덜하다. 구릉을 오르는 일은 힘들었지만 내가 상상하며 괴로워했던 시간보단 훨씬 긍정적으로 힘이 나서인지 다음번에도 또, 자주 걷고 싶어졌다. 다음번에는 체력을 챙겨 나도 씩씩하게 걸어봐야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운동 라이프는 천천히, 아주 우연찮게 찾아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