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치료의 시작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었다. 같은 병명이라고 해도 치료 방법은 천지차이다. 엄마의 경우 치료를 먼저 하고 수술을 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나도 함께 병원에 가서 엄마 옆에 있기로 했다. 치료를 진행하는 과정은 지리멸렬했다. 먼저 병원에 입원을 하면 입원복장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엄마가 병원의 입원복을 입으니까 마음이 안 좋았다. 내가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고 살도 통통한 엄마가 환자복을 입으니 정말 환자라소 새겨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 표정을 하면서 시답지 않은 농담을 건네보았다.
"이 병원은 환자복이 참 촌스럽다. 나 같으면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만들 거야. 오렌지색 어때?"
환자복으로 갈아입자마자 호출을 받았다. 잠시 쉴 틈도 없이 치료를 받기 위해 피도 뽑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의사 선생님부터 간호 선생님, 영양사 선생님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들마다 붙잡으며 계속 병명에 대해서, 우리 가족이 주의해야 하는 점에 대해서 물어봤다. 정작 가장 궁금한 질문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 시원한 답을 해주지 못했다. 나는 "왜 병에 걸린 것인지"가 정말 궁금하고 납득이 안 됐다. 아직까지 내가 이 병원에 와서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는 상황이 어색했다.
입원 병동은 신축 건물이라 깨끗하였다. 중간중간 미술품도 걸려 있고 전체적으로 환한 조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병원이 아니라 새로 생긴 카페라고 이야기해도 믿을 만큼 화사했다. 하지만 좀처럼 여기저기 풍기는 소독약 냄새가 낯설고 두렵게만 느껴졌다. 깨끗하고 멋진 건물을 보면 조금이라도 오랫동안 앉아 머물고 싶을 텐데 나는 일분일초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어이없고 황당한 상황 속에서도 엄마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좋았다. 병실은 4인실로 배정받았다. 보호자와 환자 간 거리가 가까운 편이었다. 개별 커튼이 쳐져있어 프라이버시는 적절히 지켜졌다. 다른 환자들의 모습을 살짝 비춰 볼 수 있었다. 병원의 모든 풍경이 낯설었다. 엄마는 내가 불편할까 봐 걱정했고 난 가까이서 엄마는 보는 게 좋았다.
첫 번째 치료 과정은 낯선 병동만큼 새로운 사람들과 끝없는 상담이 이어졌다. 몸 상태를 체크하는 상담부터 영양 상담까지 진행되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상담은 영양 상담이었다. 나는 내가 직접 요리할 것도 아니면서 어떤 식재료가 몸에 좋은지 사진도 찍고 꼼꼼히 필기하였다. 브로콜리, 양배추와 같은 십자화가 채소가 좋다고 하셨다. 우리 가족은 밤만 되면 치킨, 족발에 소주 한잔이 기본이었는데 갑자기 브로콜리를 먹어야 한다니까 당황스럽긴 했다. 하지만 맛있는 야식이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대화하고 몸 상태를 체크한 끝에 오후 6시 정도 병동에 들어가 치료제 투여가 시작되었다. 주사약은 총 4가지 종류였다. 하루동안 이어서 주사를 맞는 것이었다. 4가지 주사액이라고 하지만 중간중간 식염수까지 포함하면 5-6시간 동안 주사액을 맞는 셈이다. 또다시 내 엄마가 이렇게 오랫동안 주사를 맞는다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나는 꽤 감정적이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모든 것을 다 초월한 듯 '치료 열심히 받으면 되지 뭐.'라는 얼굴로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힘이 되어 주려고 보호자가 된 것이었는데 정작 보호를 받고 있는 건 나였다.
첫 치료라서 그런지 주사액을 넣는 과정도 꽤나 복잡했다. 계속 팔에 여러 주사를 맞으면 나중에는 팔이 버티질 못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팔이 아닌 다르게 투여하는 방식을 활용한다고 들었다. 편안하게 치료를 하기 위해 몸 안 혈관과 이어주는 이식을 하는데 독한 마취제로 괴로워하셨다. 치료 중간중간 드시라고 딸기, 포도, 물 등을 사 왔는데 실전에서 그런 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함께 고통을 나눠줄 수 없었고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하는 상황이 괴로웠다. 그동안 내가 봐온 엄마의 모습은 세상 환하게 웃거나 잔소리하는 모습, 이것저것 묻는 모습이 주로 떠올랐는데 힘들어 보이시는 모습은 어쩐지 어색하다 못해 도망가고 싶었다. 굳건히 엄마의 힘이 되고 싶다는 마음과 이런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이 상황 상황이었다.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첫 치료가 끝났다.
아침 10시에 수납을 하고 집으로 가니 남편이 기분 전환하라고 탁 트인 장소에 데려다줬다. 그날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이었다. 벚꽃 무더기 앞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며 서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던 나는 사람들이 보건 말곤 엉엉 울고 말았다. 벚꽃은 아름답게 폈고 봄바람은 살랑살랑 마음 설레게 불어오는데 내 감정은 최악을 찍고 있었다. 얼핏 봐도 30여 그루의 벚꽃 나무들이 어찌나 활짝 피었는지 아가들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같았다. 그에 비해 내 마음은 웃으래야 웃을 수가 없어 비참했다. 화려하게 핀 벚꽃나무 아래에서 꽃잎만큼 슬픔을 느꼈던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