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힘들 때 버티는 방법

어떻게 나는 운동을 시작하였나

by 여행하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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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진단에 있어서 가장 바보 같으면서 의미 없는 질문은 '왜'라는 질문과 '하필'이라는 단어이다. 나는 만나는 의사 선생님마다, 간호사 선생님마다, 친구들에게, 남편에게 왜 암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그 당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단어는 '왜'와 '하필'이었다.


"왜 하필......"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까요."


그렇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이미 벌어진 일이고 되돌릴 순 없다. 혹시 오진이 아닐까?라는 희망이 있기도 하지만 검사를 해도 늘 똑같은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저 앞으로 묵묵히 나아갈 뿐이다.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내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계속 받아들이려 노력하지만 여전히 내 머리와 마음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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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는 행동들은 무엇이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목록을 만들다 보면 마음이 덜 괴로워진다. 큰 노트를 꺼내 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도움이 될만한 일, 엄마가 필요한 물품들에 대해 정리를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무사히 병원에 데려다 드리는 일이다. 입원을 하실 때마다 불편하시지 않게 최대한 배려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도 하다. 엄마가 아프시다는데 연구 성과, 회사의 성취는 너무나 작게 느껴진다. 아무리 내가 많이 이루고 좋은 것을 먹고, 큰돈을 벌면 뭐 하나. 사랑하는 가족이 아픈데. 엄마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아무것도 없다. 예쁜 옷, 아름다운 집. 아무것도 필요 없다.


슬픈 생각을 잊으라고 하지만 어찌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픔에 빠지면 잊으라 해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깊은 물에 빠져있는 상태인데 마치 옷이 물에 닿지 않게 하라는 말과 비슷하다. 이미 내 마음, 몸이 깊은 슬픔에 잠식되어 있다면 오히려 그 슬픔을 마주하는 게 편하다. 그 슬픔을 마주할 땐 막연히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몸을 움직이며 마주하는 것이 좋다. 손가락을 움직이거나, 발을 움직이거나 다리를 쓰는 일이다. 예를 들어 그릇을 수세미로 박박 문지른다거나, 손을 이용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감정들을 쓰거나 천천히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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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도움이 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작성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대신 수술을 받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은 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을 풍요롭게 책임지고, 위안을 안겨주기 위해서는 일단 나 자신이 정신이든 육체로든 튼튼해야 했다. 나를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정신 차려야 한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은 여기서도 통했다. 내가 체력이 받춰져야 새벽에 끝나는 항암을 옆에서 보호하고 체크해 줄 수 있고, 새벽에 이불을 덮어줄 수 있다. 내 정신이 멀쩡해야 헛소리를 하지 않고 이 기간을 이겨낼 수 있다. 힘들 때 버틸 수 있는 방법은 먼저 철저하게 나부터 챙기는 일이다. 나라는 곳간이 버텨야 누군가를 챙길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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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건강을 위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체력을 다지기로 했다.


당시 나의 체력 상태를 이야기하자면 한마디로 처참했다.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잠을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했다. 네이버 카페나 블로그를 미친 듯이 검색하면서 정보를 모았다. 시험을 망칠까 봐 걱정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두려움에 사로 잡혔다. 감정적으로 무너져 있었고 잠을 못 자니 체력적으로도 엉망이었다. 피곤한데 잠을 쉽게 잘 수 없었다.


체력을 다지기 위해서는 일단 잠을 제대로 자는 게 우선이었다. 잠을 자려면 햇볕을 충분히 쐬야 한다고 들었다. 어떤 운동을 해야 할까. 움직이는 걸 아주아주 싫어하는 사람이라 처음부터 활동적인 운동은 하기가 어려웠다. 조금씩 차분히 시작하면서 햇볕을 쐴 수 있는 운동을 찾아보니 걷기와 수영이었다. 매일마다 만보씩 걷는 것을 먼저 시작했다. 5년째 같은 집에서 살았지만 우리 집 앞에 한강공원을 직접 걸어보긴 처음이다. 그 정도로 운동과는 거리가 먼 나였다. 그저 집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정도로만 보았던 공원이었는데, 아주 가까이서 내 두 발로 걷고 뛰니 못 보던 장면을 계속 보게 되었다. 폭신한 흙, 나무, 바람소리, 무엇보다 아주 건강하게 걸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였다. 열심히 걷고 뛰면 언젠가 우리 엄마도 저 할머니들처럼 팔팔하게 뛸 수 있겠다. 싶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정신줄을 잡기 위해 몸을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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