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뻐지려고 운동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내가 운동하는 이유

by 여행하는 기획자

걷고 또 걷는다. 출장을 갈 때면 3만보를 걸을 때도 있다. 저녁에는 다시 수영을 시작하였다. 작년부터 등산도 시작하게 되었다. 작년부터 이렇게 걷고, 수영하고, 뛰고, 산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누군가 때로는 몸을 만드는 중이냐고, 바디프로필을 준비하냐고 묻기도 한다. 내 경우엔 답답한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였다.


작년 딱 이맘때즈음 있었던 일이다. 제주도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인스타그램 속 행복한 사진들처럼 한번 사는 인생 즐기며 살고 싶었다. 마땅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선망하는 직업을 갖고자 대학생활 내내 찌들어 있었다. 일생에 한번 써볼까 말까 하는 단어를 외우면서 독서실에서 파묻혀 있었고 대학원 생활은 치열했다. 회사에서도 나를 갈아 넣었다.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늘 전문성을 고민하고 성과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다정한 남편, 안정적인 직업과 집, 차, 이 모든 것들은 죽도록 고생한 결과니까 지금은 좀 누릴만하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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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는 제주도 여행만큼은 아름다운 바다 전망의 숙소에서 묵기로 하였다. 남편과 어디를 갈지 여행지를 정해놓았다.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며 매일같이 제주도 카페를 찾아보았다. 그렇게 설레는 며칠을 보내고 있는 찰나, 남편이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이를테면 플레이스테이션 5를 사달라고 하는 이야기나, 이번 주말에 시댁을 가자는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니 남편은 소파가 아닌 식탁 테이블로 나를 인도했다. 에이포 용지와 펜을 꺼냈다. 4년 결혼 생활 중 이렇게 진지하게 이야기를 한 경우는 없었다.


"결론부터 말할게. 장모님이 암에 걸리셨데."


생각이 마비가 되었다. 나를 포함한 내 가족이 영원히 건강할 줄 알았다. 그도 그럴만한 게 우리 가족은 병원 신세를 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염증도 아니고 암이라니. 슬픈 영화를 봐도, 슬픈 이야기를 들어도 눈물 한 방울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암이라는 무게가 너무 무거웠는지 나는 설명을 듣기도 전에 눈물이 쏟아졌다. 머릿속에는 '왜'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왜 아픈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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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갔다. 내 눈으로 직접 이야기를 듣고 얼굴을 보고 싶었다. 엄마는 이 겨울에 태국 길거리에서 파는 듯한 화려한 민나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암이라는 부위를 쳐다보았는데 똑같았다. 엄마는 너무나 태평해 보였고, 나는 심란했다. 그 당시는 엄마가 어떻게 치료를 해 나갈지, 내가 어떤 감정을 느낄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모르니까 더 두렵고 막막했다. 그로부터 치료가 들어가면서 나는 운동을 시작하였다.


절대적으로 힘들 때 옆에서 아무리 힘내라, 파이팅을 외친다고 힘이 생기진 않는다. 그저 공허하게 들린다. 내 슬픔과 두려움을 내려놓는 유일한 방법은 이미 나와 유사한 아픔을 겪은 이들의 경험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아픔을 잊힌다지만 시간이 지나도 생각이 나는 아픔도 있다. 내 경우엔 엄마의 아픈 모습을 보는 시간이 아직도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아 있다. 혼자서 아픔을 겪을 때 내가 태아 상태였다면 엄마와 함께 그 두려움을 같이 느꼈을 텐데 나는 바깥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할 것도 없었다. 옆에서 보고 있는 게 전부였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한 마음과 엄마가 아파하는 모습이 떠오를 때면 걷고 또 걷는다. 뛰고 물속을 헤엄치면 점점 아무 생각도 없어진다.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건강해지기 위해서라지만 내 경우 외적인 아름다움을 위해서 시작한 건 아니다. 정신줄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였다. 운동을 하는 과정은 전혀 즐겁지 않았고 괴로웠다. 난 운동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걷고 또 걷고, 수영을 하고 등산을 하면서 소소한 추억을 만들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슬픔이 짙을수록 걷고, 눈물이 나올수록 뛰고, 마음이 무너질 때 산을 오르면서 조금씩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아주 힘이 들 때, 나 자신을 위로하는 방식으로 아주 천천히 그렇게 운동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