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하면 더 건강해질 수 있을까
약물 독성의 후유증은 깊었다. 엄마를 떠올리면 컴퍼스로 그린 것처럼 동그란 얼굴로 함지박 같은 웃음을 터트리던 모습이었는데 동그란 얼굴이 점점 야위어만 갔다. 좀처럼 일어나시기 힘들어하셨다. 인터넷에서는 계속 물을 마셔야 도움이 된다고 해서 물을 계속 권하였지만 엄마는 물마저도 질리신 상태였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더 건강해져야겠다는 엄마의 의지와 노력은 계속되었다. 어떻게 해야 좀 더 재미있게 엄마의 운동을 도울 수 있을까? 엄마가 좀 더 재미있게 운동을 하실 수 있는 여러 아이디어들을 생각해 보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을 할 때 나도 같이 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운동을 재밌게 할 수 있는 에세이집을 선물로 드릴 수도 있고, 걷기 운동에 좋은 물품을 선물로 줄 수도 있다. 운동 유튜브 채널을 함께 볼 수도 있고, 주변에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을 소개해주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리다 보니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방법, 시도하기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의 경계가 보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직접 물리적으로 내가 엄마 곁에 오랫동안 붙어 있는 게 어려웠다. 나는 엄마의 자식이기도 하지만, 회사에서는 프로젝트를 이끄는 책임자이기도 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이 잠시나마 우울한 감정을 떨칠 수 있는 도피처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서울에 직장과 남편을 두고, 지방에 있는 부모님 댁에 생활을 하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컸다.
대신 상대적으로 비용을 들이는 건 쉬웠다. 돈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웠다. 운동에 대한 책을 선물로 드리거나, 몸에 좋은 것들을 배송시키는 것들은 내가 그나마 잘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물리적인 시간과 노력도 투자하면서, 선물도 잘하는 가족이라면 가장 좋겠지만 나는 둘 다 잘하지는 못했다. 가끔 내가 물리적인 시간을 투자하지 못해 죄책감도 들고, 때론 바람만 스쳐도 눈물이 났다. 아마 많은 가족들이 최선을 다해도 최선 같지 않은 생각에 죄책감이 드는 경우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한참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근본적인 문제, 그러니까 가족의 병이 쾌차하기 전까지는 이런 감정이 드는 건 당연하고 보호자가 잘하는 것들에 계속 집중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선물을 드렸지만 내가 엄마가 아니기에 엄마의 힘듦을 온전히 느낄 수는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50% 고통을 내가 부담하고 싶었지만, 아니 99% 내가 부담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가족이, 엄마가 짊어져야 하는 고통이었다. 내가 할 일은 그 고통을 보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경감하기 위한 방법을 계속 떠올릴 뿐이었다. 옆에서 보호자로서의 몫을 부족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온 가족 걷기 마라톤을 제안하였다. 워낙 엄마는 평소에도 많이 걸으셨지만 멀리서나마 나도 함께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 재미있게 운동을 하시지 않으실까 해서 떠올린 생각이었다.
걷기 릴레이는 '헬스 앱'에서 개최할 수 있었다. 아빠, 나, 엄마가 참여하였고 걸으면 걸은 만큼 숫자가 올라갔다. 나는 엄마와 40km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앱만 켜면 얼마나 걸었는지 확인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매일매일 내가 얼마큼 걷고 운동하였는지 앱을 통해 가족들과 공유하였다. 단연 가장 젊은 내가 1등을 할 것이라 생각해 엄마의 기분을 위해 살살 운동을 해야 할까?라는 걱정이 들었으나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었다. 엄마는 날마다 압도적인 걸음량으로 1위를 차지하였다. 회사에 앉아 일만 하는 내가 늘 꼴찌를 차지하였다.
걷기 마라톤은 약 한 달간 이어졌고 엄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압도적인 운동량을 자랑하였다. 가장 건강하고 젊은 나는 운동 꼴찌 순위로 기록되었지만 그래도 마냥 기뻤다. 이렇게 서로 멀리 서라도 같이 운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를 가장 슬프게 만드는 사람 역시 가족이었지만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 역시도 가족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투병 과정을 함께 하는 건 때론 험난하고 때론 마음이 힘들다. 하지만 그 여정을 함께 걸어간다면 서로에게 힘이 된다. 엄마의 운동과 나의 운동은 그렇게 조금씩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안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