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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기획자 May 23. 2023

전북 김제 미즈노씨네 트리 하우스

남편과 종종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눈다. 개울가에서 소내무 냄새를 맡으며 다슬기를 잡았던 순간, 동생과 숨바꼭질을 하는 추억을 떠올릴 때면 고단한 일상 속에 아련한 기쁨이 되어준다. 특히나 회사 일로 힘들 때나 각종 논문들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일상 속에서 추억을 한 번쯤 떠올리는 게 삶의 윤활유가 된다. 자연스럽게 행복했던 기억을 소환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중 갑자기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면 억지로라도 나를 동심 속으로 데려가 주는 장소로 향한다.


미즈노씨네 트레 하우스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환기시켜 주는 대표적인 장소이다. 비포장 도로를 뚫고 가보면 동화 속에 나올법한 통나무 집들을 볼 수 있다. 그 통나무집을 그냥 도로 한복판에 있어도 흥미로울 텐데 나무 위에 오두막처럼 올려져 있다는 점이 더욱 재미있다. 마치 '천공의 라퓨타'라는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속 집을 바라보는 것 같다. 

어른, 아이 구분 없이 미즈노씨네 트리 하우스에 오면 모두가 동심의 물결에 흠뻑 빠진다. 통나무집을 구경하고, 전경에 매료되어 직접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경험해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어른이라는 체면 때문에 이 나이에 '트리아우스' 위에 올라가도 괜찮을까? 어린아이들이 우습게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나만의 착각이었다. 미즈노씨네 트리 하우스에는 모두가 본인의 재미에 빠져 자기 자신에 온전히 집중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에는 타인의 시선보단 내 목소리가 더욱 중요했다. 타인이 어떻게 상관하든 내가 재미있으면 즐겼고, 재미가 없으면 다른 놀이를 찾았다. 체면과 타인의 이목에는 안중에도 없었다. 

위로 올라가면서 몹시 즐거워하는 몇몇의 사람들을 보니 나도 용기를 얻었다.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통나무 사다리를 올라보기로 했다. 사다리마저도 투박한 통나무를 엮어 만들었는데 성큼성큼 오르는 재미가 있었다. 모험 소설 속 주인공처럼 힘차게 한 계단, 두 계단을 올라보니 어느새 나무 위 트리 하우스 방에 진입할 수 있었다. 내 옆에는 6살짜리 꼬마도 있었고 40대 아주머니도 계셨는데 모두들 하나같이 함박웃음을 터뜨린 채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마치 어린이처럼 이 시간에 흠뻑 젖어 본인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하다 보면 내 마음을 투명하게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 싫어도 좋은 척, 좋아도 싫은 척, 때론 상대방의 감정을 살피며 겸손해지기도 하고 적절히 표현도 해줘야 한다. 이런저런 상황들을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지금 어떤 감정인지 떠올리기가 어려워진다. 점점 나의 모습을 잃어가면서 타인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본인의 감정을 숨기고 속여야 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본인만 힘들어지고 본인만의 색깔, 흥미, 능력을 발휘하기가 점점 어렵게 된다. 


피카소는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라고 하였다. 관건은 어린이가 성장해서도 그 예술성을 어떻게 지켜나가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가장 원초적이면서 본인에게 솔직한 감정을 지녀야만 그 사람만의 고유한 예술성과 생각이 드러난다는 이야기가 내재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나 자신을 잃어가고, 지나친 사회화가 되어 간다고 여길 때 아주 가끔씩은 동심의 세계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괜찮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즈노씨네 트리 하우스는 요즘 나에게 주는 선물과 같은 장소이다. 체면을 내려놓고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 다시금 떠올리며 자신만의 모험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또다시 지나친 사회화로 나를 잃어간다는 생각이 들 때 이번에도 서슴없이 동심의 세계로 인도해 주는 장소들로 발걸음을 옮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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