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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기획자 Jun 11. 2023

서울 오프컬리

나의 취향을 찾아가는 연습

살림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맛있는 요리를 먹는 건 좋아한다. 재미있는 식재료를 구매해 놓는 것도 좋아해 시장에 나가면 직접 당근, 버섯, 브로콜리를 눈으로 보고 만지며 탐구하기를 즐긴다. '요리'를 잘하는 것도 일종의 창조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요리를 잘하시는 시어머니는 시금치 무침을 하실 때 시금치 특유의 텁텁한 맛을 없애기 위해 아주 약간의 마요네즈와 겨자 소스를 넣으신다. 아주 약간의 소스만 넣어도 평범한 시금치나물의 맛이 훨씬 다채로워진다. 맛을 창조하는 과정은 절대 머릿속 계산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직접 식재료를 내 눈으로 보고, 맛과 향을 음미하며 조합할 때 새로운 맛이 탄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온라인 마켓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식재료를 만지고 향을 느끼며 제대로 탐구할 수 없다는 점이 늘 아쉽다.



최근 마켓컬리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오프컬리를 만들었다. 그것도 교육 공간으로서 말이다. 오프(Off)라는 의미는 오프라인의 오프도 있지만 잘 끄고, 잘 키자는 의미의 off도 있다. 우리가 뭔가를 시작할 때, 착수할 때 Kick off, Task off를 사용하듯 오프컬리 역시 우리의 에너지 온도를 잘 끄고, 잘 쉬면서 한편으로는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데서 '오픈컬리'의 이름이 탄생하였다.



잘 끄고 잘 시작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아마도 오프컬리는 취향을 발견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식과 영감을 제공하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 것 같다. 바로 교육 기관의 성격으로 식품을 테마에 맞춰 함께 충분히 연구하고 탐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한 것이다. 고객들에게 '풍요로움'을 전달하고 싶을 때는 '올리브'를 주제로 삼거나 일상 속에서 자주 접하지만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하기에 난이도가 있는 '치즈'를 주제로 삼어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이렇게 매 시즌별로 자주 접하지만 제대로 알기 어려운 음식 재료들을 주제로 취향을 탐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식재료를 탐구하는 프로그램은 종류에 따라 사전 예약을 받는다. 나는 올리브 오일이 궁금해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았는데 식재료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참여자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먼저 프리미엄 올리브 4가지를 원액 그대로 맛보고 2가지를 골라 다른 식재료와 조합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이때 프로그램을 이끌어 주시는 셰프님께서는 "각자가 올리브 오일에 대한 취향을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계속 전해주셨다. 나의 취향을 찾는다는 게 다소 모호하였지만 취향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 여러 방법들을 끊임없이 제안해 주셨다. 예를 들어 후각, 미각만 동원하여 제 각각 지닌 올리브 오일의 질감과 향을 구분해보기도 하고, 다양한 올리브 오일을 맛보고 느끼면서 이런 맛을 잘 느끼는구나, 이런 향을 더 편안하게 생각하는구나와 같은 감각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참석자들은 지역별 다양한 오일을 한 컵씩 음미하면서 어떤 맛을 느꼈는지, 어떤 향을 느끼며 음미하였는지를 교류한다. 동시에 이 오일이 가진 배경에 대해 셰프님께서 설명을 해주신다. 한 컵 씩 음미를 하면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거나, 가장 맛있게 느껴지는 오일의 취향을 찾아간다. 마지막으로는 그동안 시식했던 오일과 함께 곁들인 요리를 맛보게 된다. 셰프님이 각각의 핑거푸드들 어떤 오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간단히 설명해 주셔서 일상생활 속에서 요리를 쉽게 접목해 볼 수 있다. 


 오일을 곁들인 요리까지 함께 맛보면서 나만의 취향을 찾는 시간은 마무리된다. 교육 공간의 추억을 마음속에 담은 채 걸어 내려오면 온라인에서만 볼 수 있었던 마켓컬리의 여러 식재료를 직접 눈앞에서 보고 만질 수 있는 스토어가 펼쳐진다. 스토어 역시 교육 공간의 취지와 같이 개인의 취향과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다. 단순히 식재료를 판매하는 잡화점 형태가 아니라 식재료의 역사와 배경을 느낄 수 있는 소품들로 꾸며져 있는 것이다. 가령 올리브 오일은 '지중해'의 풍요로움이라는 콘셉트에 맞춰 지중해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매트, 식기, 책 등과 함께 배치하고 있었다. 언뜻 생각해 보면 왜 판매하지도 않은 책이나 타자기, 매트들을 전시하고 있지?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지중해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소품으로 인해 식재료 하나를 판매하는 장소가 아니라 브랜드, 문화, 역사, 감성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공간, 나의 취향을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바라보게 된다.   


'나의 취향, 나의 영감'이라는 건 어느 날 갑자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풋들이 축적될 때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섬세한 감각으로 여러 가지 경험을 조합하고 느껴볼 때 비로소 '내가 이런 것을 좋아하고 관심 있어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만들어진다. 나만의 취향과 영감을 만들기 위해서 오늘도 흥미로운 장소를 탐험하며 왜 이러한 맛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왜 이런 향이 나오게 되었는지를 오감으로 경험해 보려 노력한다. 가끔은 낯설고 이질적이지만 나의 취향을 찾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자꾸만 세상 밖으로 나가 몰랐던 감각들을 일깨우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겠다. 내가 아는 것들이 전부가 아니고, 나도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계속 나만의 취향과 영감을 찾는 연습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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