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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수현 May 10. 2021

인간의 욕망과 식생활

카우스피라시,씨스피라시 그리고 부패의 맛까지.

*아래 내용은 카우스피라시와 씨스피라시, 그리고 부패의 맛의 일정 에피소드의 스포일러를 포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굉장히 이슈가 되고 있는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하나인 씨스피라시(seaspiracy). 육식을 위한 축산업의 폐해와 전지구적인 영향을 다루는 카우스피라시(cowspiracy)의 후속작 격으로 취급되는 다큐멘터리이다. 씨스피라시는 전편보다 조금 더 시야를 넓혀 인간이 어류를 소비하기 위해 어느 정도로 파괴적인 행위를 일삼고 있는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각도로 다룬다. 하나 미리 말해두자면 내용은 꽤나 자극적이며 선동적인 부분도 존재. 하지만 진지하게 고민해볼 만한 화두를 한 가득 던져준다. 




  시간 순서대로 보자면 아마 카우스피라시를 먼저 다루는 게 맞을 것이다. 오늘날에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듯이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로 대표되는 축산업을 지속하고, 육류를 소비하는 행위 자체가 환경에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친다. 또한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물을 포함한 리소스들이 소모되며, 키우는 과정에서 나오는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온난화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물론 문제의 중심에 서있는 국가는 미국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1인당 소고기 소비량이 높은 나라. 그리고 아주 빠르게 소고기 소비를 늘려가고 있는 중국의 통계까지 보면 정말 암울하기만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육류 소비를 줄이거나 비건으로 돌아서기도 한다고 한다. 사실 필자는 씨스피라시 이후에 시청해서인지 그 정도로 강력한 임팩트를 받지는 못했다. 한 가지 축산업의 폐해중 하나로 꼽히는 게 가축 배설물 처리로 인한 근해의 오염인데, 이 부분은 씨스피라시에서 조금 더 상세하게 다뤄진다.




  씨스피라시는 하나로 연결된 대양이라는 주제답게,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어류 소비에 대한 현실을 고발한다. 여기선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유럽을 거쳐 전대륙에서 자행되고 있는 바다에 대한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차라리 유조선이 침몰하는 게 바다 생태계에 더 도움이 된다는 충격적인 주장까지 나온다. 이유는 침몰 이후 몇 년간 근해에서 식용 어업을 하지 않기 때문. 지난 2~3년 정도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국가들이 열을 올리던 플라스틱 빨대 대체 노력이 얼마나 큰 코미디였는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코에 빨대가 들어간 바다거북 영상이 바이럴 된 덕분에 스타벅스를 필두로 한 음료업체들이 앞다투어 종이 빨대를 선보였고, EU 역내에서는 플라스틱 빨대가 퇴출되었다. 정작 플라스틱 빨대가 해양쓰레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3%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연구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해양쓰레기는 어업 이후에 방치되고 버려지는 폐그물을 비롯한 어업용 장비들이다. 


  조금 과장되거나 데이터를 유리한 방향으로 수집, 해석한 측면이 분명 있겠지만 내 앞에 놓인 현실은 이미 돌이키기에 늦었을지도 모르고(아마 높은 확률로 이미 늦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어류 소비를 멈추어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를 한다. 나조차도 거의 설득당했고 감독의 의견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진지하게 어류 소비까지 제한하는 비건의 길로 가야 하나 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으니.




  먹거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몇 가지 보다 보니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이 계속해서 추천해주었던 시리즈물은 '부패의 맛'이었다.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하나의 식재료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측면들을 다루는 것이 주된 내용인 시리즈 다큐멘터리. 그 에피소드들 중에 유독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아보카도에 관련된 에피소드였다.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리 대중적이지 않았던 아보카도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가며 요즘은 대부분의 샐러드, 샌드위치, 버거 등을 파는 곳에 가면 거의 반드시 만나볼 수 있는 식재료이다. 식단 조절용 식품으로도 각광받고 있으며 많은 비건들이 버터나 치즈 대용으로 애용하기도 하는 매우 훌륭한 과일이다. 그런데 이런 아보카도에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아보카도가 육류나 어류의 소비만큼 지구적인 스케일의 환경파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사실 1:1로 비교하자면 농업 전체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하나의 식재료가 일으키는 파급력이라고 보기에는 꽤나 큰 스케일의 문제를 몰고 다니고 있다. 문제의 시작은 미국에서 아보카도 각광받기 시작한 20세기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아보카도의 상품성에서 기인한다. 현재 주 산지가 남미인 이 과일은 멕시코와 칠레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멕시코 같은 경우에는 마약만큼이나 매력적인 돈줄로 각광받고 있다. 당연한 수순으로 아보카도를 둘러싼 이권 다툼에는 카르텔이 개입되고 살인, 납치를 포함한 온갖 범죄행위가 아보카도를 둘러싸고 펼쳐진다.


  칠레 같은 경우에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의 영향이 더 큰데, 바로 수자원의 문제이다. 소고기만큼은 아니지만, 아보카도는 엄청난 양의 물이 소모되는 작물 중 하나이다. 물이 그렇게 풍족하지 않은 국가인 칠레에서는 아보카도 경작을 위해 필요한 물 때문에 정작 사람이 먹고 마실 물이 부족한 현상이 발생되며, 주 산지 근처의 강 두 개가 통째로 말라버리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비단 칠레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에서도 수자원 확보에 난항을 겪어 농장의 절반을 통째로 포기한 농장주가 인터뷰 중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여기까지 와보니 서서히 새로운 관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를 파악하려면 단순히 소고기나, 참치나, 아보카도를 먹는 것보다는 조금 더 넓은 맥락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환경을 고려해 비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 그리고 생각을 존중하지만 어찌 보면 그게 해결 방식은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그리고 모든 비건이 환경 때문에 시작한 것도 아니니.) 문제의 본질은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의 식생활,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경쟁적인 기업화와 이윤추구에 가깝다. 채식과 육식으로 이 문제를 다루다 보면 옳고 그름, 그리고 취향의 문제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쉽사리 결정하고 행동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인간의 욕망에 관한 문제라면 어떨까.


   사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어떤 유형의 제품을 소비하든 간에 이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생각하는, 말로는 쉽지만 행동은 어려운 그것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파타고니아의 말이 정말 맞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무리 친환경적인 생산과 소비를 하려 해도 그 자체가 이미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게 아니라면 소비 자체를 행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 하지만 인간은 어쨌든 음식을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동물이다.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경제시스템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이고, 굉장히 많은 논란이 있는 주제일 테지만 나의 짧은 식견으로는 궁극적인 해답을 제시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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