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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수현 Mar 04. 2021

우습고 서글픈 스타트업 잡부의 이야기 - 1

하나, 길을 애초에 모르면 잃을 일도 없다

  시작은 단순했다. 그리고 막연했다. 무엇이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알 수 없었던 불안한 눈동자의 고등학생은 그대로 등 떠밀리듯 대학생이 되었다. 신입생이었던 해가 꼭 10년도 넘은 지금. 그때만 해도 효리누나처럼 [아무나 되어라]라고 조언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장차 미래에 어떤 일을 해야할지 아무런 방향성도 없이 대학교 생활을 흘려보냈다. 특히 군대 가기 이전의 학교생활에 대한 기억은 단편적이다. 아마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내서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해야할까. 혹자는 이미 중고등학생 시절에 끝냈어야 하는 고민이라고 역설하는 질문들을 품에 안은채, 사회와의 격리를 위해 잠시 떠나게 되었다.




  대국민 트라우마 시뮬레이터인 군대를 겪어도 내가 무엇을 해야하나라는 질문에 답을 찾을 순 없었고, 삶도 그렇게 단순해지지 않았다.  그나마 2년 남짓한 시간을 구르면서 결론 하나 정도는 도출했다.  난 시스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능력이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란 것.  합리성을 매일 저녁 분리수거와 함께 내다 버린 듯한 군 조직에 무엇하나 순순히 동의하지 않는 나는 반골이었고,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갈등들을 끊임없이 겪어야만 했다.  계층구조가 확고한 조직에서 내가 앞으로 일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윗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무조건 동의하고 따라야 한다는 구조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한국에서 거의 대부분의 일자리는 계층구조를 매우 강력하게 가지고 있었고 문화 또한 그에 특화되어 있었다.  군대는 그 시스템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투쟁으로 점철된 군생활을 뒤로하고 학교에 돌아왔을 때, 난 갑자기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하는 사회적인 포지션에 놓여있다는 걸 깨달았다.  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시키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생각하다, 어느새 너 뭐할래?라고 묻는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20대 대학생 A.  한 가지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기존의 시스템에 순응하는 방향으로는 난 행복할 수 없다는 것.  사실 다들 그렇게 참고 사는 거라는 말에 설득당해 진지하게 7급 공무원 준비를 고려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고 나 자신과 대화를 해봐도 대답은 '글쎄'였다.


   아무나 되는 건 둘째치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요즘은 자기 효용감이라는 어려운 말로 표현하는, 내가 좀 쓸모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욕망이 머리를 채웠다.  근데 그 효용감을 얻는 동시에 계층구조는 약하거나 없어야 하고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난제들을 앞에 두고 있었다. 어처구니없다. 방향 없이 그저 흐를 줄만 아는 장마 후의 물방울들처럼, 사회 부적응자로서 헤메이다 만난 탈출구는 의외의 곳에서 나타났다.  구멍 난 학점을 메우려 학점 인턴을 하러 갔던 곳에서.


   학점 인턴은 돌이켜보면 노동법을 어겨가며 돈 내고 학교를 다니는 학생을 노동자로 부려먹는 방안을 창출한, 대학교 행정의 창의적인 결과물이었다.  한 가지 행운(혹은 지독한 불행)은 그렇게 만나게 된 기업이 학교에서 지원을 받는 극초기 스타트업팀이었다는 점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내 삶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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