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고
나는 로드뷰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시작은 여행을 준비하던 언젠가였는데...
(겁이 많지만 혼자 여행을 좋아해 로드뷰까지 살펴보며 여행계획에 엄청 공을 들인다...)
이제는 여행 준비가 아니더라도 그리워지는 장소가 있으면 로드뷰라도 보며 짧은 여행을 다녀온다.
몇 년 전 문득 나주의 할머니댁을 로드뷰로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자주 찾는 외할머니댁과는 달리 이제는 가지 않는 기억 속의 장소라 갑자기 찾아온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바로 로드뷰를 켜고 실행에 옮겼다.
아빠가 자란 그곳은 사랑채가 함께 있고 마당과 잘 가꾼 화단이 있는 기와집이었다. 나는 매 명절마다 아주 오래 차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곳을 지키던 큰아빠까지 이사를 나오며 10년 넘게 내 기억 저편에만 존재하던 곳이었다.
정확한 주소는 알지 못해 희미하게 기억나는 동네슈퍼를 기점으로 한참을 지도를 들여다보며 위치를 짐작한 끝에 할머니댁임이 확실한 곳을 찾아냈다. 완전히 바뀌어버린 집의 모습 덕분에 꽤 오랜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명절마다 그곳에 도착하면 곳곳에서 모인 식구들은 각자의 일을 했다. 큰 아빠들은 화단의 나무 하나씩을 맡아 가지를 치며 모양을 다듬었고 엄마와 큰엄마는 할머니를 도와 주방에서 분주했다. 오 남매의 막내인 아빠는 늘 빈둥거리며 완성된 음식이나 먹고 있었지만 멀리서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막내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분주했던 무라이 사무소의 여름 별장처럼 내 기억 속 할머니댁도 그렇게 조용히 분주하며 시끌벅적했다.
로드뷰로 확인한 그 집에는 내 추억 속 대청마루도 보물창고 같았던 사랑채도 보이지 않았다. 큰아빠들이 정성으로 가꾸던 전나무와 향나무도, 아빠가 좋아하던 감나무도 찾을 수 없었다. 어쩐지 속상한 마음으로 동네를 좀 더 둘러보다 창을 닫았다.
그날 저녁 아빠에게 이 얘기를 꺼냈다. “완전히 몰라보겠어.”라는 내 말에 아빠는 “그래?”라고 짧게 말할 뿐이었다.
“속상하지 않아?”라는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어쩐지 내가 더 슬퍼질 것 같아서, 슬픈 얘기를 꺼내서 마주하기보다 마음에 덮어두는 아빠임을 알아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입원 이후 하나둘 떠나가는 사무소 식구들을 보며, 오랜 시간 후 다시 별장을 찾은 사카니시를 보며 문득 이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보다 더 많은 추억을 가진 곳들이 많음에도 그날의 나는 왜 나주의 할머니댁이 궁금했을까? 이 책을 읽으며 다른 좋아하는 장소보다 그곳이 먼저 떠오르고, 속상한 마음이 이는 것은 마지막이 될 줄을 모르고 갔던, 사실 기억조치 잘 나지 않는 영원히 미완성일 마지막 방문 때문일까.
마지막이 될 것임을 짐작조차 못 하고 찾았던 나주의 할머니댁은 이제 나와 우리 가족의 기억에만 존재하는 공간이 되었지만, 제대로 이별하지 못함이 내게 주는 그 아쉬움과 괜한 죄책감은 더 깊게 기억을 새기는 듯하다.
이제는 로드뷰로도 온전히 찾아갈 수 없는 사라진 그 집은 추억 속에만 각인되어 있겠지만 ‘각인된 것은 상실되지 않았다.’라는 사카니시의 말에 위안을 얻는다.
공간에는 머무는 사람들의 시간과 기억이 새겨진다. 무라이 선생님이 건축에 있어 ‘사람’을 강조한 것이 감히 깊이 이해된다. 무라이 사무소 사람들의 여름이 그곳에 오래 남았듯이 나의 어린 명절은 그곳에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