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위한 삶을 찾아 떠나는 용기가 필요한 30대
퇴사를 했다. 그 생각만으로도 미칠 듯이 불안했다. 누군가 마치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나 안정적인 직장-신용평가사, 금융계열-을 그만두다니, 네가 거기보다 나은 곳을 갈 수 있을 것 같아?'
불안감은 마치 산불 같아서, 나를 태우고 또 태워 잿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새까맣게 타 버린 내게 희망찬 미래라곤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퇴사를 앞둔 주말, 나는 소화불량과 복통에 시달렸다. 밤에는 불면증이 오고, 낮에는 절망이 찾아왔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단 한 가지, B부장에게 감사할 일이 있다면, '그가 나를 잡지 않은 것'이었다. 내심 속으로 그가 날 잡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 스스로도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도 그곳이 너무 좋다는 걸 알아서, 차마 떠나려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 올해 말고도 재작년에 퇴사를 말한 적이 있다. 그때는 지금 부장(B)과는 다른 부장님(A)과 일을 할 때였다. A부장은 나를 잡았고, 나는 한 달의 설득 끝에 회사에 남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회사에서 일다운 일을 받아서 할 수 있었다.
그때 성과를 내고 인정을 받아,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발령은 상대부서가 해당 인재를 원할 때, 그리고 그 부서에서 방출대상일 때 두 가지 상황이 맞물려야 이동할 수 있다. 내가 성과를 내서 원하는 부서가 생긴 것도 맞고, 직전 부서에서 A부장은 내가 필요치 않은 인력이라고 생각한 것도 맞다. -왜 잡은거지?- )
그때 A부장은 내게 '사람은 흘러가는 대로 살 줄도 알아야 한다' 며, 내가 너무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만 살려고 하는 태도에 대해 지적했었다.
결국 나는 퇴사를 말하고 딱 2년이 흐른 뒤, 회사를 떠나게 됐다.
회사를 떠난다는 건 불안을 마주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불안에 관한 글은 6번째 글에서 다뤄보려고 한다. 6번 글을 발행하지 않고 7번 글부터 쓰는 건, 불안에 관한 글을 적으며 또다시 불안의 상태로 향하는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나면 글을 마무리해 발행할 생각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앞서 언급했던 귓속말처럼, 내 내면은 회사로부터의 독립이 이 불확실성을 키운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차피 다닐 회사면, 지금 회사를 퇴사하지 말고 참고 버티는 게 낫지 않아?'
사실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회사가 '얼마나 나를 갉아먹었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사 후 지금까지, 수없이 회사와 부딪히며 '마치 나는 계란이고, 회사는 바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의견을 낼 때도, 업무를 할 때도, 하다못해 숨을 쉬는 방식까지 회사와 나는 맞지 않았다.
아무리 명품옷이라도 맞지 않는 옷은 쓸모가 없다. 내게 지금 회사가 그랬다. 퇴사를 하는 건 명품옷을 버리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뽐내며 다니는 것보다, 적당히 잘 맞는 옷을 이쁘게 입고 싶었다. 이게 내가 퇴사를 하는 정확한 이유다. B부장의 언어폭력이 퇴사의 트리거를 당긴 건 맞지만, 나는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옷장정리를 하고 싶었다.
이직을 앞두고 있다. 이전에 면접을 봤던 스타트업에서 2차 면접 제안이 왔다. 나는 망설였고, 그 회사의 영입담당자는 내 망설임의 시간까지 기다려주었다.
걱정이 앞선다. 힘들게 퇴사를 해놓고 다른 직장조차 내게 맞지 않을까 봐 겁이 먼저 난다. 하지만, 패션에도 '내게 잘 어울리는 옷'을 찾기 위한 노력과 소비 -잘 맞는 옷을 찾기 위해 구매되는 수많은 옷들- 이 필요하듯 직장에도 '내게 잘 맞는 직장'을 찾기 위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한 거 아닐까?
31살의 시점, 20대 때도 내보지 못한 용기를 가지고, 더 나은 삶을 위해 투자해 보기로 했다. 이 주식이 떡상할지, 떡락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내게 '용기'를 냈다는 것만으로도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다.
이 용기의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만, 한번 낸 용기가 내 삶을 바꾸고 내 미래를 바꾼다. 삶의 결과를 바꾸는 건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좀 더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살아가자. 퇴사를 하니, 내가 지난 몇 년간 얼마나 스스로를 위해 살지 못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ps. 다시 간 직장도 나와 맞지 않는다면 두 번째 용기를 내는 건 더 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 불안해하지 말고,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지도 말자. 내 인생엔 회사 말고도 중요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으며, 결론적으로 난 행복해지기 위해 살 것이다. 그러니, 행복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