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생활 8개월 차, 슬슬 조급함이 생겨 작은 회사에 입사지원을 신청했다. 외형은 5명, 매일 야근을 한단 이야기를 들었지만 면접자리에선 얼굴에 티를 안 내려고 노력했다.
과제를 진행하자고 해서 주제를 받고, 5일의 기한을 요청했다. 대표님은, 왜 5일이나 필요한지 반문을 했다. 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굳이 입밖으론 내지 않았다.
이른 면접 후 밖에 나오니 허기가 졌다. 부모님께 면접을 봤다고 전화드린 뒤, 거리를 걸었다. 길거리에 놓인 메뉴판을 유심히 보며, 점심메뉴를 골랐다.
'이건 가격이 너무 비싸고'
'이건, 너무 매울 것 같고'
'여긴... 외형이 좀 깔끔하지 못하네...'
한참을 고르고 골라, 짬뽕집에 들어섰다. 창가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메뉴를 기다리며 면접을 복기했다.
내심, 연봉을 더 올리지 않은 것에 아쉬워하며, 창문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을 세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저 회사에 가고 싶을까?'
직전 회사에서 면접을 망친 후라, 날이 서있었다. 너무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긴장한 탓에 대화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하루를 꼬박 아쉬워하다가, 마음을 접었다.
이번 면접은 꽤나 괜찮았다. 회사가 괜찮았다기보단, 면접관이 괜찮았다. 면접관은 대표님이셨다. 대화는 제법 잘 통했고, 같이 일하면 꽤나 잘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야근, 그리고 언제 망할지 모르는 회사 규모.
30대를 넘어가니, 회사에 대해서도 까다로워졌음을 느낀다. 20대처럼 야근을 미친 듯이 할 체력도 없고, 일에 대한 열정과 텐션이 떨어졌다. '왜 어른들이, 하고 싶은걸 20대에 하라고 했는지' 지금은 이해한다. 확실히 몸이 다르다. 이전처럼 밤을 세기도 힘들고, 불이 잘 붙지도 못한다. 그래서인지, 워라밸을 찾던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6시만 땡 하면 사라지던 팀장님이 이해가 될 나이가 된 거다.
예전처럼 야근을 힘들게 할 자신은 없지만, 열정이 있는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 이게 참 모순이다. 내 잃어버린 열정을 동료에게서 찾으면서, 정작 나는 워라밸을 갖고 싶다. 열정과 워라밸은 비례할 수 없는 관계일까?
백짬뽕과 매운 짬뽕사이를 한참 고민하다가, 매운 짬뽕을 시켰다.
'점심메뉴도 이렇게나 열심히 고민하는데, 입사할 회사도 당연히 고민해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해 보니 그렇다. 나의 짧은 한 시간, 잠깐 먹는 점심을 위해서도 이렇게나 열심히 고민한다.
'그런데 왜 나는 그동안 회사에 대해 꼼꼼히 따져보지 않았을까?'
불현듯 스쳤던 지난 이직이 떠올랐다. 무작정 사람만 보고 이직을 했다가 힘이 들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의료산업군에서 일하겠다고 들어갔다가, 처음 보는 앱, 알지도 못하는 규정에 치여 너무 힘이 들었다.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는데..'
나는 늘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만들면서 뿌듯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이야기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아무래도 회사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이직한 게 패착이었다.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면서, 그 회사가 어떤 서비스를 만드는지 조차 모르고 갔으니 말이다. 결국 그 서비스를 만드는 게 디자이너의 몫이 될 텐데..
공백기 8개월, 조급한 마음에 이 회사 저회사 알아보지도 않고 이력서를 뿌렸다. 돌아보니 이게 좋은 선택이 아니었음을 또 깨닫는다. 점심 1시간을 위해 맛있는 메뉴를 열심히 고르듯, 내 하루의 8시간 이상을 함께할 회사는 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함을 깨닫는다.
오늘 짬뽕이 참 맛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이 짬뽕집을 또 방문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