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생각하는 느림의 미학

느린 옷장정리속, 나를 찾는 아름다움

by 손바닥

오랜만에 일기를 적는다. 2017년을 지나 2018년도 하반기에 들어섰지만, 어쩐지 나는 이전과 별반 다를게 없다.


시간이 급행열차를 탔나? 라는 생각과 함께 여름을 알리는 무더위가 찾아왔다. 서둘러 긴팔을 하나 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7월 초 겨우 긴팔 정리를 끝내고 옷장정리를 연이어 가고 있는 지금, 이미 다른 사람들은 반팔셔츠를 입고있었다.


아마 내가 반팔을 다 꺼냈을때쯤, 사람들은 긴팔을 입고있지 않을까? 조금, 아니 많이 느린 나를 보고있자면 가끔 답답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느림의 미학' 이라는 책이 있다. (아, 물론 나는 그 책을 읽진않았다.) 딱 단어만 놓고 보자면 느림 속에서 아름다움, 미학을 찾는다는 말이다.


어릴땐 다른 아이들 보다 좀 많이 느린애 였다. 항상 별명은 느림보였다. 종이 치면 쏜살같이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학교 밖을 뛰어나가는 친구들과 달리, 실내화 주머니에 실내화를 한짝 넣는대도, 나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실내화를 이리 뒤집었다가, 또 저리 뒤집었다가, 필통을 집었다가 내려놨다가, 만지작만지작, 실내화를 다 넣으면 친구들이 짐싸는걸 구경했다.


어떤친구는 필통부터 가방에 넣었고, 또 어떤친구는 실내화부터 챙겼다. 누구는 칠판을 닦고 누구는 축구공부터 찾았다.


저마다 각자 제일 중요한것부터 차례대로 챙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는 '제일 먼저 뭘 챙겨야 할까' 늘 고민이었다.


필통도 중요하고, 엄마가 사준 실내화도 소중했다. 매일매일 뭘 먼저 챙겨야할까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나를, 친구들은 늘 "느림보" 라고 불렀다.


늘 천천히 고민과 생각을 거듭하며 짐을 정리했다. 어느날은 필통부터 또 다른날은 실내화부터 챙겼다. 학교 밖으로 나가기 위해, 짐을 싸는 행위는 내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 이었다.


연필을 반듯반듯 뿌듯하게 깎은 날은, 연필을 담은 필통이 내게 너무 소중했고, 엄마가 실내화를 빨아준 날엔 조심히 깨끗하게 신으려고 하루종일 노력했던 내가 기특해, 실내화가 너무 소중했다.

하나하나 천천히 짐을 싸며 나는 '내 모습'을 돌아봤다. 비록, 다른 친구들에 비해 짐을싸서 학교 밖을 벗어나기까지 무던히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짐싸기가 수월해질 무렵, 나는 스스로에게 가장 소중한게 무엇인지를 알게되었다. 느림 속에서 하나씩, 자신을 만들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시간이 참 빠르다. 어느새 2018년도 겨우 20주 남짓 남은 지금, 시간은 또 쉴새없이 달리기를 해댄다. 그런 급물살에 휩쓸려 더 빠르게만 달리려는 내가 보인다. 24시간도 모자르다고 느끼며 '빠르게 빠르게' 모든걸 끝내려고 한다.


아마 지금의 내가 1년전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건, 빠르게 살아가기 급급했기 때문 일 수 있다. 물론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반증일 수 도있지만, 정작 내게 소중한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잊어버린채, 1년을 보냈다.


느림의 미학, 느림 속에서 찾아야하는 아름다움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게 무엇이 소중했는지를 생각하며, 나를 알아가는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이번 옷장정리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긴팔을 입고 다닐때까지, 천천히 해야겠다.


2018년 7월의 네번쨋날,

일기로 돌아본, 나의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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