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자리에서는 적당한 시간과 적당한 소비만이 답일까?
이번 주는 제법 약속이 많았던 한주, 그 약속들 중 가장 나가기 싫었던 약속이 바로 오늘이었다.
집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강남역에서의 약속이었다. 동창 5명이 함께하는 자리, 썩 달가운 모임이 아니었지만, 선뜻 가겠다고 했던 건 그저 심심했기 때문이다.
6월 23일 퇴사 후, 제법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매일을 늦잠과 놀고먹기로 반복하며 소비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카톡-"
몇 달에 한 번이나 연락할까 말까 싶은 동창회 카톡방이 갑자기 요란스럽게 울려댔다. 한 명의 친구가 주도해서 약속 날짜를 잡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핑계를 대고 나가지 않았을 모임이지만 백수가 되니 없던 마음의 여유도 생겨나, 동창회쯤 가서 적당히 앉아 웃다가 오면 되겠지 가벼운 마음으로 승낙했다. (지루한 시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내가 퇴사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친한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시간 될 때마다 보자며 연락을 해왔다. 이 약속 저 약속 다 잡다 보니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것만 같았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동창회, 잡지 말걸!" 후회는 이미 늦었다. 발을 빼긴 늦어서 일단 가기로 했다.
동창회 때문에 친한 친구들과의 약속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욕심의 결과는 타이트한 스케줄로 돌아왔다. 이번 주만 약속이 4개, 미션 클리어를 하듯 한 개씩 처리해갔다. 오늘은 대망의 동창회 날, 아침부터 떠올리기만 해도 피곤해졌다. 5명과의 애매한 관계, 오래는 알고 지냈지만 친하진 않다. 7년 가까이 봤지만 진전이 없는 관계라고 느껴진다. 여러 생각을 하며 강남역으로 향했다. 어지러운 머릿속만큼이나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뚫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여러 명이 같이 다니다 보면 그 속에서 묘하게 무리가 나뉜다. 더 친하고, 덜 친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가끔 나는 혼자 상상 속 딴생각으로 빠져든다. 그래도 뚱한 얼굴로 있을 수만은 없으니 적당히 장단을 맞춘다. 형식적으로 묻는 말들, "어떻게 지냈어?"라는 인사에 안부 타임이 시작된다.
몇 달간 하지 못했던 말을 쏟아내고 나면, 얘깃거리는 급격하게 떨어진다. 동창의 말에 적당한 리엑션을 취해주다가 슬쩍, 시계를 본다. 시간 참 안 간다, 언제 헤어지려나 싶지만 오랜만에 만난 모임인 만큼 쉬이 헤어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미리 예약한 식당에서 꽤 비싼 밥을 먹고 잘 먹지도 않는 술을 한두 잔 걸친 후, 막차시간이 돼서야 우리의 모임은 끝이 났다.
애매한 관계 속 사람들과의 모임을 가질 때면, 시간이 참 안 가기도 하지만 아깝기도 하다. 물론, 저마다 시간을 내서 만나준 동창들에게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게 옳지 못한 행위인 것은 안다.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마음은 그 기대치만큼 빠르게 식는다. 마치, 전자레인지를 가지고 단시간에 음식을 데우면 그만큼이나 빠르게 식어버리는 느낌이랄까. 오랫동안 못 봐서 쌓인 할 말을 전부 쏟아내고 나면 급격하게 식어가는 분위기가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든다.
불편한 자리, 아까운 시간들 속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헤매는 나를 보며- 불편한 자리에선 적당한 시간과 적당한 소비만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