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7 시간의 반비례

시간은 한도 끝도 없는 것 같지만, 그래서 더 소중할지 모른다.

by 손바닥

한적한 오후, 한적한 주말, 한적한 시간들에 익숙해져 소중함을 잊어 갈 때쯤, 난 벌써 백수가 된 지 4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3개월에서 1달 연장된 나의 휴식은 첫 달의 소중함과 달리 퇴색되어가고 있었다.


처음 백수가 됐을 때, 시간과 돈이라는 요소가 내게 충족됐을 때 난 늘어지게 늦잠도 자고 갖고 싶었던 화장품과 옷을 사고 한낮의 오후에 카페에서 그림도 그렸다.

꿈만 같았던 시간들은 어느새 익숙해져 당연하게 되어갈 무렵, 난 익숙함에 젖어 들어 처음의 설렘을 잊어가고 있었다.


"바닥아, 여행 갈래?"


익숙함에 지쳐가던 중, 언니는 내게 여행을 제안했다. 사실 내게 여행이란 단어는 그리 친숙하지 않다. 20대 다들 한 번쯤 가는 자유여행, 친구들과의 여행, 그 흔한 기차여행 한번 안 간 내가 여행의 설렘을 알리 없었다.


"그래, 한번 다녀오자"


언니의 물음에 고민 없이 긍정을 한건 무척이나 지루한 시간들 사이를 빠져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들었던 여행에 대한 이야기, 다른 공간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새로운 환경 그 안에서 느끼는 '힐링'을 의연 중에 동경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언니와 엄마,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이 함께 떠나게 되었다. 날짜를 정하고 나라를 정하고 교통편을 알아보고 숙박을 예약하고... 여행 준비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백수라는 타이틀 아래 매일매일을 헤프게 쓰고 있던 내게 '여행'은 말로는 설명할 수는 없는 '새로운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3박 4일의 짧은 여행에 뭘 그리 많이 하고 싶다고, 욕심을 내 쉬는 시간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아다니는 일정을 짰다. 그도 모자라 밤에는 잠도 안 자고 이자카야를 가겠다며 언니와 소란스러운 대화를 나누곤 했다.


여행을 준비하며 내가 깨닫게 된 것은 매일을 헤프게 사용하던 내가 여행의 3박 4일은 어떻게 해서든 많은 것을 보고 느끼려고 한다는 것이다.


사실 백수의 4개월이 여행의 3박 4일보다 길고 많은 시간이었는데 난 길었던 4개월 보다, 여행의 3박 4일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 시간이 주어지니, '내일 하면 되지'라는 말로 자연스레 미뤄지던 일정들. 어쩌면 나는 너무 많은 시간에 파묻혀 시간의 소중함을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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