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폭력, 차별
회사에 이야기를 했다. 너무 힘들다는 것과 내 일을 주변에서 너무 하찮게 본다는 게 주를 이루는 이야기였다. ‘다들 이렇게 힘들게 직장생활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문득문득 아버지의 고된 표정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딱 잘라 그만두겠다는 말도 아니었고 그저 일이 힘들다는 투정을 전부 들어주신 선임님은 ‘그래 나도 네 마음 알아’라고만 하시고 말씀을 더 이어가지 않으셨다.
나는 A회사에 파견직으로 처음 근무를 시작했다. 특별히 다른 회사에서 보내준 인력이 아니라, 인력사무소를 통해 고용된 형태로 근무하고 있다. 인력사무소라고 말하니 드라마에서 어르신들이 일을 구하기 위해 난로 앞에 옹기종기 아침부터 모여나가 있는 상황이 생각난다. 나를 고용시킨 인력사무소는 드라마 속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력사무소와는 조금 다른 형태다.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회사가 매번 스스로 인력을 구하기 힘드니, 채용공고를 내고 인력을 구해주고 그리고 계약까지 대신해주는 개념이라고 보면 쉽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A회사에 근무 중이지만 A회사 소속이 아닌 파견직이다.
파견직으로 근무를 처음 시작할 때는 ‘일만 잘하면 되지, 파견직이나 계약직이나 정규직이나 뭐가 다르겠어?”라는 생각을 했다. 일을 잘하는 건 항상 자신 있는 것이었고 능력만 있다면 충분히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어찌 보면 2년 전 나는 좀 순진했는지도 모른다.
정규직 밑에 무기계약직, 무기계약직 밑에 계약직, 그리고 그중 제일 밑이 ‘파견직’이다.-이렇게 글로 적어놓으니 얼마나 아래인지 새삼 실감이 된다- 먹이사슬의 제일 아래 단계가 되어보니 이제야 진정한 ‘차별’을 알게 된 기분이다. 29년 인생을 살면서 ‘차별’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본 경험만 있었지 ‘차별’을 당하는 입장에 놓인 경우가 많이 없었다. 2년의 회사생활을 하면서 크고 작은 차별의 상황 속에 항상 ‘차별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서있게 되었다.
작게는 월급부터, 크게는 상사의 지시까지도 너무 확연하게 달랐다. 약 8명 남짓한 팀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 입사 초반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당장 서비스 민원전화를 받을 인력이 없으니 내게 대신 전화를 좀 받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정말 내 일처럼 열심히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결국 나는 팀 내 회의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뭔가 귀결이 이상하지 않은가?
센터장님은 내게 ‘민원전화받을 사람이 없다. 팀 전체가 받는 거니 너도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열심히 전화를 받는 내게 돌아온 건, 팀 내 회의 불참이었다. 센터장님 말을 빌어 얘기하면 이유는 ‘회의시간에도 전화받을 사람이 없으니, 네가 남아서 받아야 한다’였다. 팀 전체가 받는 전화인데 회의를 못 들어가는 사람은 항상 나로 고정되어 있었다.
팀원이 12명이 됐다. 그리고 14명이 되고 18명이 됐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회의에 들어가지 못한다. 나보다 연차가 낮은 직원들이 들어와도 같았다. 그들은 계약직으로 들어왔고-나는 회사의 마지막 파견직이다. 재수도 없지- 나는 파견직이기 때문에 나보다 윗사람이라고 한다. 아무 경력도 없는 신입이 들어와도 이 회사에 2년을 근무한 나보다 계급이 높다.
회사에서는 보기보다 계급이 깡패다. 대학교를 갓 졸업한 멋모르는 풋내기들이 ‘데이터 시각화’를 명목으로 회사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이 회사를 먼저 입사했고 일도 먼저 시작했지만 나는 늘 제일 아래였다. 심지어 인턴이 들어와도 나는 인턴과 동급일 뿐이었다. 같이 일을 해도 같이 일을 한다는 기분이 들지 않기 시작했다. 점점 더 팀과 나를 분리시켜 바라보게 되었다.
나를 제외한 팀원들은 다들 진정한 한 팀 같았다. 그들은 같이 사업 이야기를 하고, 회의를 하고, 의견을 나누며 업무를 진행했다. 그곳에 항상 내가 있을 자리는 없었다. 나는 항상 온갖 이유들에 쌓여 회의를 가지 못했다. 2년이 다되어가는 지금까지, 이 회사를 다니며 제대로 된 회의 한번 가지 못했다.
물론 회의를 가지 않아도 일은 할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멋모르는 풋내기들이 와서 다짜고짜 ‘뒤로 가기 아이콘 1개 만들어주세요’라고 하면 나는 패스트푸드를 찍어내는 공장처럼 아무거나 적당한 버튼 하나 만들어서 넘겨주면 된다. ‘버튼이 어디 쓰이는지, 왜 필요한지, 만들어준 버튼이 어디에 삽입되었는지’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일을 하다 보면 한계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성장도 없고 발전도 없다.
그래서 이번엔 물어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함께 일을 해줄 상사도, 동료도 없으니깐, 물어보지 않으면 필요할 때만 잠깐 쓰다 버리는 도구가 되어버리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동료들이 대체적으로 내 물음에 호의적인 편이었다. 일할 때마다 묻고 하고를 반복하자, ‘뭐 이런 거 하나 하는데 이유까지 알아야 하냐?’는 말이 돌아왔다. 졸지에 나는 ‘그런 일’조차 혼자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다 아는데 왜 너는 몰라?’라고 할 때마다, ‘저는 회의에 안 불러주셨잖아요’라고 말하면 ‘이런 건 안 들어와도 알아야지!’라고 하셨다. 사업이 어느 정도나 진행됐는지 공유도 안되고 어디에 사용될지 이유도 명목도 없는 망망대해에 놓인 기분이었다. 그들은 제트보트를 타고 바다를 가르며 멀리 가버리는데 혼자 튜브를 끼고 그 제트보트를 따라가 보겠다고 헤엄치는 것 같았다.
하루는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팀 직원분을 만났다. 여러 번 마주칠 때마다 가볍게 눈인사를 주고받았는데, 어느 날 그분이 문득 내게 물었다.
“자네는 어느 팀 소속인가?”
“네 저는 데이터 시각화팀 소속입니다”
“그럼 그 팀 내 이사원과 동기겠네? 무슨 일 하나?”
“아뇨 저는 주임입니다 저는 팀에서...”
여기서 주임이라는 말은, 회사 내 정규직과 파견직을 나눠 호칭하는 직급이다. ‘계약직은 연구원, 파견직은 주임, 정규직은 사원’이다. ‘주임입니다’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분은 나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입을 굳게 다무셨다. 아까 첫 말을 건네면서 보냈던 호의적인 눈빛은 ‘주임’이라는 단어와 함께 사라졌고, 그분의 관심은 오로지 엘리베이터 위 계기 판 뿐이었다.
이후에도 엘리베이터에서 그분을 자주 마주쳤다. 하지만 그분은 그 뒤로 나와 인사를 나누지 않으셨다. 사원인 줄 알았던 내가 주임이어서 였다. 내가 ‘주임’인 것, 파견직이라는 이유 하나면 이 회사에서 배척당하는 건 당연한 문화였다.
차별이라는 단어를 참 가볍게 생각했다. 차별이 폭력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별생각 없이 지나갔었다. 막상 내가 차별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니, 차별은 정말 폭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