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기리며
지난 주 연예계에 있었던 일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물론 해외의 많은 이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정신적으로 꽤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친구에게 전해듣고는 믿을 수 없어서 직접 기사를 통해 두 눈으로 확인한 뒤에는, 서점에서 한창 읽고 싶던 책을 찾고 있던 내 눈에 더 이상 책은 들어오지 않았다.
기사를 읽은 뒤 애써 무덤덤하게 다시 책을 찾으려 책장의 책을 살폈지만, 내 눈은 그저 수많은 제목만 그저 읽어댈 뿐 그 제목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어떤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아무 의미 없이 책의 제목들만 좇기를 수십 여 분, 간신히 정신을 부여 잡았다.
스스로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충격이 컸던 것이다.
책 찾기를 포기하고 자리에 앉았지만, 책은 고사하고 그 어떤 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와 관련한 기사를 제외하고는.
이후 늘 그렇듯 당연히 잠을 설쳤고 그럴 때마다 늘 비몽사몽한 상태로 그와 관련된 기사들을 찾아보았다.
갈탄, 베르테르 효과, 유언.
자다가 그의 유언을 보고 도로 잠든 날에는 그 때 한창 같이 공부하며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 큰 일이 생겼는지 내가 무척 슬프게 우는 꿈을 꿨더랬다, 마치 현실처럼.
그리고 한동안은 그가 속한 그룹의 노래는 일체 듣지 않았다. 아니, 듣지 못했다. 사실 그들의 노래는 학창시절에, 특히 고등학교 때 공부하며 들었던 터라 추억 저 편으로 물러나 있었고, 그래서인지 별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내 감정에 그토록 큰 소용돌이를 휘몰아치게 한 뒤로는 그의 노래나 그가 속한 그룹의 노래들이 유독 무척 듣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이 세상에, 나와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하지 않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왜인지 내게는 금기시되었다.
듣고 싶지만 들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의 죽음이 내게 큰 영향을 끼친 만큼,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의 목소리를 현실에서 들으면 나조차도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밤새 그와 그가 속한 그룹이 낸 노래들을 들으며 글을 썼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목소리를 듣기 전에는 막막한 두려움에 무섭고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막상 듣고 나니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왜인지 안정이 되었다.
그가 나를 달래주는 것만 같았고 그만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 같았다.
사실 나는 그의 팬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죽음을 마주한 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가 나온 방송들을 곱씹기 시작했다.
내 기억 속의 그는 그가 쓴 수많은 가사들과 마침내 그가 맞이한 비극의 당연한 귀로였다.
4명의 친한 연예인 친구들을 섭외하여 본인에 대한 4가지 관점을 보여주는 방송이 내 기억 속 그의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는 그 때부터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다. 힘들어보였다. 곱씹어보니 그랬다. 그도 나처럼 힘들었다.
어떤 사람이 이야기했다. 힘들면 손 내밀지 왜 그랬냐고.
그 말을 보니 울컥했다. 그에게 하는 그 익명의 말이 꼭 내게 하는 말 같기도 해서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이내 원망이 더 커졌다. 손 내밀 용기가, 손 내밀 대상이, 도움을 청할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내가 그랬겠냐고, 아니, 그 사람이 그랬겠냐고.
어느새 나는 그가 되어있었다.
그 소식을 처음 알려준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그 사람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마냥 왜 그랬냐고 탓할 수는 없다고.
만약 그게 나였다면, 나는 나를 괴롭힌 혹은 나를 힘들게 한 수많은 것들에 일부러 상처를 내기 위해 그런 선택을 했을거라고 이야기했다. 그정도로 나는 감정에 충실한 어리석은 철부지이다. 하지만 그는 내가 아니기에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완전히 나라는 느낌을 받으니까, 나였으면 그런 선택을 할 것이라는 이입이 되었다.
내가 너무 슬퍼하니까 같이 있던 친구가 걱정하며 말했다.
내가 그런 기사를 보고 그의 죽음에 깊게 공감하고 슬퍼하니까 내게도 정말 큰 일이 일어날 것 같다면서 기사 좀 그만 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야기했다. 진짜 불쌍한 건 사고사로 죽은 사람이지, 그가 선택한 방법은 오히려 편안하게 간 것이라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는 분명 끝까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끝까지 마음의 병에 몸이며 마음까지 다 갉아먹혀 발버둥치려해도 안 되어 힘겨웠을 것이고, 끝끝내 그런 선택을 하면서도 힘들었을 것이다.
만일 내가 그였다면, 나는 서서히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이렇게 무력하기만한 나에게 실망했을 것이고 무심한 내 주변 사람들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이었다면 끝까지 고통스러웠음에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더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그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의 마음이, 그의 선택이 전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그가 사라지자 곧 또 다른 내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아마 내게 목숨이 두 개였다면, 나는 그의 존재가 무의미해짐과 함께 이미 한 개를 쓴거라고 느껴질 정도로 그는 곧 내가 되었다.
또한 나는 그의 가사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그의 고통에 대한 무지에 미안함과 아쉬움을 느낀다는 것을 보고 위안을 받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일기며 다이어리, 여기저기 썼던 글, 무심코 뱉었던 말들도 언젠가는 당장이 아닌 뒤늦게라도 그처럼 위로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가 더욱더 그리워졌다.
그를 직접 만났더라면 나는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내가 그에게 관심이 있었더라면 재조명된 노래들을 미리 들어보며 가사를 보고 그의 마음을 알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저려왔다.
그동안 그의 마음을 내포한 가사들로 이루어진 노래를 나는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그저 그와 함께 갑자기 재조명된 가사를 눈으로 훑어보았을 뿐이다. 그 노래들은 실제로 직접 들으면 정말이지 감당할 수 없을까봐 듣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그저 내가 좋아했던 그의 그룹의 노래와 그의 노래들, 슬프지 않은 노래 속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위로를 받고 있다.
그리고 오늘은 샤워를 하다가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러다 문득 그와 같은 선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게 베르테르 효과인가 싶어 살짝 놀랐다.
그렇지만 나는 우선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와 같은 선택은 나 역시 할 수 있다.
그게 언제가 되었든간에 그 때는 나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견디지 못할 때가 된 것이리라.
그런 때가 오면 내가 그간 써왔던 글들, 내가 뱉었던 말들이 힘을 얻어 지친 내 영혼이 위로 받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 스스로 시한부 인생을 살기로 했다.
우선은 그처럼 정말 죽기 살기로 노력하면서 하고 싶은 거 하고 열심히 살아보자.
그래도 안 되면, 그 때, 그 때가 내 마지막이다.
이런 생각으로 내 인생에 스스로 카운트 다운을 세기로 했다.
나는 그 때 죽기로 했고 지금은 늘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살기로 했다.
그래도 안되면, 그 때도 내가 이렇게 엉망이고 망가져있다면, 그 때도 내 마음이 고장나있다면 그 때 선택하자.
그 때 나는 죽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시한부 인생을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