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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ric Dec 07. 2017

갈림길에서 우는 아이

기말고사 공부 중, 잠시 머리를 식히는 중


한달 뒤면 반오십이다. (빠른 년생이지만, 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나의 친구들과 같은 나이로 나를 소개한다. 일명 ‘족보 브레이커’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수능에서 꽤 좋은 성적을 받았고 내가 가고 싶어하던 학과 - 이를테면 영어영문과 같은 어문 계열이나 문예창작, 또는 언론정보, 신문방송 - 에 지원할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멀리 보자는 아빠의 추천으로 취업률은 100%지만 적성에 맞지 않은 간호학과를 가군과 나군에 지원했고 결과는 참혹했다. 꽤 훌륭한 성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꽤 난다하는 지방국립대에서 처참히 떨어진 것이다. 조금 더 높은 학교인 가군에서 먼저 결과가 나왔고 예비 5번을 받았다. 남은 희망을 같은 간호학과이지만 신설된지 얼마 안되어 가능성이 있을 것 같던 나군에 걸었고, 결과는 예비 2-30번대로 더욱 더 참담했다.


수능이 끝나고 대입 전까지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일생에 다시 없을 그 유일한 순간에 나는 재미 삼아 알바를 했다. 어린 손님들을 대상으로 하던 일이었고, 때마침 손님이 없기에 망정이지, 나는 내가 대입의 문턱에서 낙방하는 결과를 일하던 중에 보게 되었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울고 있었다.


결국 나는 등록금의 70%에 해당하는 장학금 수혜를 받으며 모 전문대의 물리치료학과에 들어갔다. 전공부터 학교 분위기, 선배들의 텃세까지 어느 하나 맞는 것이 없었다. 애초에 나는 전형적인 노력을 통해 수학만 조금 잘하는 철저한 문과생이었으므로 생리학과 같은 학과 전공이 나랑 맞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게다가 워낙 우물안 개구리처럼 너무 튀지 않게, 너무 엇나가지 않으면서 자란 내게 온통 드세고 기센 사람들만 있는 학교 분위기는 체한 듯 늘 얹혀있었다. 옷차림에 대한 여선배들의 텃세, 체육대회에 목숨을 거는 이상한 관습. 그것들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더욱 더 튀는 듯 했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날 더 몰아부쳤으며, 사람들이 무서워 자꾸만 기가 죽고 혼자 있는 시간을 더 편안해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그 학교의 중간고사는 물론 기말고사도 보러 가지 않았고 친구도 사귀지 않았으며 한 학기 내내 수능이 끝난 후의 연장선인 것처럼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진 고향 친구들을 찾아가기까지 하며 놀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내내 힘들어하다 1학기가 끝났고 나는 지체 없이 휴학을 신청했다. 휴학을 신청할 때에는 지도교수와 학과장의 확인이 필요한데, 사인 혹은 도장을 받으려고 찾아간 지도교수와 학과장의 반응은 정말 할 말을 잃게 했다. 휴학 사유가 무어냐고 물어보기에, 원래 원하던 학교에 들어가려고 재수를 준비한다고 했더니 코웃음을 쳤다. 마치 ‘여기 들어온 것으로 보니, 그 곳은 니가 재수한다고 갈 곳은 아닌데?’ 라는 듯한 비아냥이었다. 그들의 반응이 날 더욱 자극했고 나는 지체 없이 바로 반수에 들어갔다. 남들보다 대입 공부를 한 학기 더 한 것이다. 결국은 1년을 돌아왔기 때문에 한 번 더 한 셈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나는 지금 원하는 학교, 원하던 어문 계열에 와서 원하던 공부를 했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 자퇴서를 내러갈 때는 부러 원하던 치마를 입고 가서 속 시원히 때려치고 왔다. (당시 아직 재수하여 지원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순식간에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불행한 처지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망설임 없이 그 학교를 때려쳤다.) 그러나 나는 똑같이 이 학과 또한 내 적성에 안 맞는다는 것을 3년차에 깨달았으며, 하고 싶은게 없어 세월을 낭비하면서 아무 소득 없이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고, 마지막 기말고사를 공부하는, 내년이면 반오십인 졸업 예정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선택이었을 ‘대입’과 관련한 휴학, 재수 그리고 자퇴까지 그 어느 하나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적어도 지금 내가 배운 전공 과목에 대해 애정과 관심, 의지와 열망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 학과를 나온 이상 이 언어만큼은 정복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내년부터 내가 해야할 일도 이와 관련한 일들이다. 자격증을 따고, 배우고 싶은 언어들을 정말 제대로 공부를 하는 것. 전공 공부를 학교에 다니는 4년동안 해놨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사람은 늘 후회하는 동물이고, 또 나는 후회 뒤에 일의 능률이 더 잘 오르는 타입이기 때문에 별 후회는 없다. 가장 큰 후회가 있다면 그동안 남아돌던 시간에 책이라도 읽지 않은 것과 남들 다 가지고 있는 스펙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끊임 없이 불안했고 초조했다. 그러나 인생은 길고 나는 늦지 않았다고 시각을 조금 틀었다. 조금 늦은들 어떠할까.


언젠가 한 번 내가 불안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남들이랑 똑같이 달리려니 그랬다. 남들 돈 벌 때 돈 벌고, 남들 여행 갈 때 여행 가고, 남들 다 하는 걸 똑같이 하고 싶은데, 그게 안되니 질투가 나고 마음은 조급했다. 그게 원인이었다. 이제는 좀 다르게 마음을 먹었다. 일명 ‘나는 나대로, 쟤는 쟤대로’. 쟤는 쟤 인생을 저렇게 사니까, 나는 나대로 내 인생을 살자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나 지금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는 고민하는 중이다.


원체 간이 콩알만 하고 꿈이 없던 탓에 졸업반이 되자마자 남들 다 하는 공무원으로 방향을 완전히 틀기로 마음 먹었지만, 내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엄마아빠의 설득에 힘입어 정말 졸업이 코앞인 2학기가 되자 다시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렸다. 엄마아빠는 공무원 준비를 대비해 내가 짜놨던 계획에서 나온 예산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으로 도움을 주기로 했다. 결코 적지도, 그렇게 크지도 않은 돈이지만, 학생인 나에게는 경제적인 문제가 사라져 천만다행이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정말 복 받은 운명임이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 하고 싶은 게 있음에도 나는 이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맞는지, 잘할 수 있는지 너무나 불안하고 초조하고 또 걱정된다. 더하여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는 그 순간부터 나는 필요한 사항과 앞으로의 계획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적어 보고해야했고, 그들로부터 철저히 독립하지 못한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한낱 백수이자 취준생이었으며, 행운임에 분명한 이 모든 일들이 내게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게다가 오늘은 내년에는 공무원 채용인원을 무려 2만 5천명을 늘린다는 기사를 봤다. 하고 싶은 게 없어서 하려던 공무원에 대한 마음이 조금 더 열린 가능성에 다시 흔들리고 있다. 그냥 실패 없이, 재미 없이 그냥 하려던대로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낭비 없이 그냥 공무원 준비를 할까 하는 생각들이 마구 솟는다. (물론, 죽을 힘을 다해서해도 될까 말까지만, 꿈이 없는 내게는 정말 ‘그냥’ 해보는 것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실패할 우려가 있어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볼지, 실패란 오로지 불합격뿐인 공무원 준비를 할지 정말 어렵고 또 어렵다. 이미 마음 먹은 바에 의하면 결과는 물론 전자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두렵다. 실패하고 끝없이 박탈 당할 얼마 없는 내 자존감과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불안감, 시간과 돈을 들였는데도 불구하고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것에 대한 강박과 압박감. 남들보다 늦는 나를 보면서도 계속 내가 나 스스로를 다독이고 응원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향해 계속 정진해나갈 수 있을까. 정말 하고 싶은건 맞을까? 재능이 있긴 한걸까?


나는 아직도 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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