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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ric Jan 28. 2018

사뭇 다른 날이 있다.

신춘문예와 폐지 줍는 노인


칼날처럼 매서운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공기는 좀처럼 누그러들 줄을 모르고

찬 바람은 날이 바짝 서있어 맞으면 쓰리기까지 하다.


어제도 그런 날들 중 하나였고

나는 그 무서운 날씨에 잔뜩 겁을 먹고 집에만 박혀있다

읽을 책이 떨어진 참에 잠시 바람도 쐴 겸 서점엘 갔다.


내가 쓰는 글이 주로 에세이나 짧은 산문, 간혹 가다 시임에도 불구하고

늘 그랬듯이 비소설 베스트는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쳐

소설 베스트와 소설 신간, 일본 소설 베스트 쪽을 지날 때면 꼭 눈길을 보내기 위해 걷는 속도를 늦추었고

다시 늘 그렇듯이 시를 보지도 않고 지나쳐

세계 명작 코너에만 연신 기웃댔더랬다.


하지만 그 날은 사뭇 달랐다.

시집 코너를 쌩하고 지나치다 그대로 슬금슬금 뒷걸음질쳐 다른 코너에 비해 조금은 협소한 시집 코너 앞에 멈춰섰다.

그날 따라 시들이 나를 끌어당겼고 나는 그에 부응해 몇 개의 시집들을 들춰봤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오던 신춘문예 당선작품들.

옛날 그 언젠가는 나도 신춘문예에 작품을 내겠노라 다짐했었더랬다.

그랬던 그 꿈은 온데간데 흔적도 없이 사라져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춘문예에 당선된 몇몇 작가들의 당선작과 신작들을 훑어보니 다시금 불씨가 지펴지는 느낌이었다.


꺼져가던 불씨에 불을 지피고

이것 저것 기웃거리고 고민하다가

지난 번에 무료 이북으로 재밌게 읽었던 추리소설의 후속작을 발견했다.

엄마에게 원작을 추천해주었는데

나는 이북으로 읽었기에 종이책이 있으면 빌려달라던 엄마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었던 터였고

마침 나란히 있길래 엄마에게 선물할 원작과 내가 읽을 후속작 두 권을 사서 서점을 나섰다.


서점과 집 사이에는 겨우 신호등을 하나 두고 있는데

집에 돌아가기 위해 독일차 전시장 앞에서 신호 대기 중이었다.

그 때 맞은 편에서 커다란 손수레에 폐지를 잔뜩 싣고 서있던 노인을 발견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런 분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가 않다.

게다가 나는 공감대가 과하게 넓고 극단적으로 감성적이며 감정이입 또한 극심해서 그런 분들을 보면 견딜 수 없이 슬퍼져 아예 보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그 날은,

왜인지 시집에 끌렸던 그 날만큼은 또 사뭇 달랐다.


그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깡마른 몸에 옷을 겹겹이 입은 것은 같은데

칼 같은 바람에 저 몸이 무성할지,

추위가 너무도 독하고 엄해서

유난히도 긴 신호에 쌩쌩 달리던 차들이 어서 지나가기를 간절히 빌며

손으로는 수레 손잡이를 꼭 붙잡고 눈을 굴리며

불안한 눈초리로 쉴 새 없이 지나는 차들을 좇던 눈동자.


실제 속사정이야 어떻든간에 나는 알 도리가 없다.

그저 그 날 바라본 그 사람의 모습은

어느 날보다 더 가슴 아팠고

그래서 마주하기 힘들고 견디기 어려웠지만

끝끝내 똑바로 바라보고 이리저리 뜯어보며

그 사람의 인생 한 귀퉁이라도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그 날의 추위는 유독 더 독하고 매서웠으며

돌아오는 길에 느껴지는 바람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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