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현대인이라면 주머니 속에 가운뎃손가락 하나쯤은 기본이쥬?>
제목이 너무 길어 짤렸다. 현대인이라면 가운뎃손가락, 마스크 시국엔 메롱 정도쯤은 장착하고 다녀야 각박한 현대 사회를 조금 평온하게 건널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요?
현생에 치여 브런치를 오래 방치했다.
그동안 나는 여찌저찌 프리랜서로서 회사의 소속이 됐고, 나름 소득?이란 것도 벌어봤으며, 글을 직업?으로 삼는 일을 하고 있다. 여전히 삶은 척박하지만..
각설하고, 거지깽깽이 같은 우리네 인생, 삶은 지속되고 내일은 다가오는 오늘 하루를 그럴싸하게 마무리 짓기위해서 필요한 것은 아무래도 글?이 아닐까? 는 농담이고, 웃음인 것 같다. 현대인은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미친 좀비마냥 웃음을 찾아나선다. 안타깝게도 유머를 장착한 창작자들은 여기저기 머무르는데, 주로 인간들이 모여드는 현대인의 우물가가 몇몇 있다. 그럼에도 현대인의 공허는 쉽게 채워지지 않고, 지친 손목을 들어 배달어플을 켜게 되는 것이다. 먹고 후회하는 것은 아 그것이야 말로 현대인의 표본이 아니었던가!
무릇 현대인이라면, 위장장애와 스트레스로 인한 경미한 두통과 우울증, 장시간의 출퇴근 시간을 유용하게 채우기 위해 들여다보는 스마트폰으로 인한 터널증후군(이로 인해 설거지가 어려워지므로 식기세척기를 당근마켓에서 검색한다. 사람들의 손가락이 얼마나 빠른가에 대해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스마트폰을 보느라 한껏 아래로 늘어진 거북목을 장착해야하지 않은가? 웃고있지만 내면부터 끓어오르는 경미하면서도 장대한 분노, 언제라도 이 회사를 때려치울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분(憤; 분노할 분)사심. 애초에 애사심은 자소설과 함께 태워버려야 제맛이쥬. 회사는 닥치고 나에게 안정적인 급여를 달라! 과 같은 소소한 질병을 몸에 달고서야 진정한 현대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무릇 현대인이란 그런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건네고 있으며(믿기지 않겠지만 스티븐 핑거가 1406페이지에 달하는 벽돌 서적으로 이를 증명했으며, 나 역시... 설득당했다.), 우리는 도덕과 질서를 지키는 일이 가장 효율적인 삶이란 사실을 안다. 한국인이라면 효율을 빼고 말할 수 없으리라. 그치만 겹겹이 싸오르는 소소한 분노! 이를 어찌 달랠 것인가. 자기 수련을 하기엔 삶은 지치고 체력이 모자라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명상하며 들을 유튜브 소리를 찾는 당신? 삐빅 한국인입니다.
살다보면 그럴싸한 일도 있고, 개 거지 깽깽이 같은 일도 있다. 전자보다 후자가 압도적이며, 언제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다는게 문제지만.. 가끔은 이 분노가 나의 것인가 사회가 나를 이렇게 만드는 것인가에 대해 쓸모없지 않지만 유용하기까진 못한 생각을 하며 이불 속에 누워 오늘 하루의 거지같음, 이를테면 지옥이나 주옥(두 개의 단어를 빠르게 발음해보시라)같은 일이 생각난다. 아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일을, 그리고 하루를 살아야한다. 순간의 거지같음을 상쾌하게 날려버릴 가운뎃 손가락을 호주머니에 장착하고서! (이정도 분노는 염라대왕도 용서하리라!)
내일을 살아가야한다. 아주 빛나고 반짝이지 않아도 그게 내 인생이고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니까 말이다.
지하철에서, 혹은 직장에서, 아니면 가족 혹은 교우관계 속에서 마주치는 사사로은 거지같음은 우리의 잇 아이템 가운뎃 손가락으로 소소하게 날려버리고, 나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자. 우리는 이렇게 소소하게 버텨내며? 아니 나를 지켜내며 남은 생을 살아가야하니 말이다. 지금부터 쓰는 나의 글은 아마도 100세까지 꾸역꾸역 살아남아 할머니(우리가 흔히 시각적으로 말하는)가 되겠다는 나의 소소한 일지이자 다짐기이다. 늙는 게 죽는 것 보다 무서웠던 철없던 시절이 지나고, 이제는 삶이 조금 좋아진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직 삶이 여전히 많이 어마어마하게 남았다. 평균 수명에 비추어 보아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제발plz) 무려 지금만큼의 두 배 정도를 더 살아갈 것으로 예측된다. 이렇게 평화롭게만 살아가고 싶지만, 삶이란 기울어진 운동장에 아...저 인간은 초등고 교육을 개똥으로 받았나 기본 매너와 교양을 어디로 처먹었나 싶은 인간들과도 함께 살아가야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삶은 아주 조금씩 천천히 좋은 방향을 향해 선회중이라 믿으며 살아가는 나로서는, 내가 할머니가 될 때쯤 저들도 철이 들겠지라며 믿어 살아가는 수밖에...
이제는 손바닥만한 옷과 치마, 바지를 입은 내 모습을 숭하게 여기며, 진한 화장은 지우기가 귀찮아 스킵하고, 매일 머리를 정성스레 말릴 체력이 사라진 삼십대가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삼십대는 물론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하이힐에 명품백을 메고 다니는 신여성을 꿈꿨으나, 수족냉증으로 하이힐을 신으면 미끄러진다는 사실을 스무살에 알았다. 그리고 지금은 손바닥의 30배는 되는 펑퍼짐하고 큰 옷을 사랑하며, 건조기에 돌리고 돌려도 절대 스몰은 커녕 엠이 될 수도 없는 사이즈를 사랑한다. 꿈꾸는 내가 되지 못한 것은 취향이 바뀐 것도 있지만, 나를 일찍 취업시장에서 합격시켜주지 못한 사회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90년대생들은 파이를 미친듯이 쪼개먹어야만했다! 여전히 나의 삶은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좌절하지 않기로 했다. 90대의 나는 John Na 멋질 수도 있잖아요? 인생 살아봐야 끝을 아는 게 아니었던가!
그러니 나의 90대는 지금보다 더 많이 웃고 더 건강하길 바라며, 그리고 그 길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걷고 있길 바라며..!
주변인들의 거렁뱅이같은 조언은 매몰차게 물려치며 우린 이렇게 말하자.죄송한데, 전 100살까지 살 예정입니다만..? 그리고 전 이렇게 100세까지 갈겁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