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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슬 Jan 27. 2021

쿨과 브라질리언 왁싱의 상관관계

죄송한데, 전 100살까지 살 예정입니다만...?

쿨과 브라질리언 왁싱의 상관관계


   

브라질리언 왁싱이 이젠 별로 낯선 단어가 아니게 되었다. 음모에 대해 굳이 사람들과 나눠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뭐 음모에 대해 말하는 게 나쁜 건 아니고, 무튼 그닥 알고 싶지 않은 정말 말 그대로 TMI.     



브라질리언 왁싱의 붐이 불었던 때가 있었다. 갑작스레 마치 모두 핫하고 쿨한 인간들이 하는 것과 같은 분위기로 이 새로운 문명이 쓸려왔을 때, 난 정말로 많이 고민했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유튜브와 블로그 등을 찾아보며 과연 브라질리언 왁싱에 대해 알아보던 도중 마음을 굳혔다. 팔에 있는 털 하나 못 뽑는 내가 그곳의 털을 다 뽑는 고통을 견뎌낼 가능성은 제로일테니깐!



브라질리언 왁싱이 유행하기 이전부터 나는 그것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때 난 숱한 신데렐라 이야기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하던, 이런 신데렐라 스토리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공상 과학 소설의 끝이라 불리우는 마이매드팻 다이어리를 보고 있었다. 우울증과 자살 충동, 그리고 비만의 몸매를 가진(게다가 키도 엄청 크다) 여주인공이 드라마 속 핫가이 재질인 핀과의 연애를 해나간다는 설정 덕에 SF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제목에 대놓고 FAT을 붙인 영드에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아시다시피 한국의 뚱뚱한 여성은 기껏 삼순이 정도에 불과하며-심지어 삼순이는 뚱뚱하지 않다-, 실제로 레이 정도의 체형을 가진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는 고작해야 1화니깐. 그 비만에 가까운 여주인공은 반드시 어떤 충격을 받거나, 조력자를 만나 드라마의 초반부에 갑자기 뼈다구가 되어버린다. 무튼 그 여주인공이 핫가이 핀과의 연애를 나아가면서 그들도 나름 스킨십의 단계를 거쳐나간다. 여주인공은 자신이 너무도 무지한 처녀라는 탓에 친구와 함께 공부를 시작한다. 근데 라이크어 버진?이런 가사는 왜 또 거긴 미국인가 암튼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레이가 교재로 삼은 것은 다름아닌 야동이다.


영국엔 구성애 선생님이 안 계신가? 나는 그들이 야동을 보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진짜 충격은 다음 장면에서 나타났다. 레이는 야동속의 여성과 자신의 몸을 비교한다.      



완벽한 몸매와 얼굴 그리고 섹시한 몸짓과 표정

그리고.....

바로 털...     


야동 속 여성들은 하나같이 너무 매끈매끈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을 보호하는 털을 너무 울창한 숲이라며 좌절한다. 이제 레이는 친구와 함께 벌초원정단이 되어 브라질리언 왁싱샵으로 향한다. 레이는 엄청난 고통을 호소하며 임무를 완수하고서 뿌듯한 마음으로 남자친구와의 섹스를 기약한다.  

    

 오, 나는 그때 영국의 소녀들은 참으로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군 하며 노트북을 닫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한국에도 브라질리언 왁싱이 완전 상륙하고야 말았다.

왜?

굳이?

왜?

왜?

제발 매끈해야할 신체 부위에 그곳이 추가되질 않길 바란다. 겨드랑이털과 같이 금기가 되어선 안 된다. 우선 그건 너무 아플 것 같은데...? 게다가 초심자라면 혼자할 수 없지 않은가? 그곳이 아니어도 이미 매끈할 의무를 가진 부위는 너무도 많다.     



털에게 무슨 죄가 있길래 그렇게 오랜시간 털을 밀며 살아왔는가 생각해보면, 당연히 난 털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리를 시작하면서부터 생리대와 함께 삶의 필수품으로 면도기가 자리 잡았으니 말이다. 케빈이 홀로 남은 집에서 아빠 몰래 면도크림을 바르고 소리를 지르는 것과 달리! 꼭 하고 싶어서 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니, 그건 아마도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중학교 2학년때 같은데, 그때 어떤 남자애가 여자애들의 겨드랑이털을 지적하고 다녔다. 왜 여자애들은 어쩌고 저쩌고하면서! 여자애들의 털을 큰 소리로 지적했다. (제발 이젠 더 이상 그런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음 좋겠다.)

“야 넌 왜 겨드랑이를 안 미냐?”


그것도 교실에서 큰 소리로 모두가 다 들으란 듯이.

“난 여자애들 교복 사이로 털 삐져나오는 게 제일 싫음.”

무튼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적어도 내가 중학생 시절엔 때에는 그런 일이 꽤 있었다. 다리털이 너무 길어서 눈에 보인다느니, 스타킹 너머로 다리털이 나오는데 왜 다리털을 안 미냐는니, 눈 베렸다느니. 하는 그런 말. 옆에서 그 말을 듣던 나는 그날 집에서 겨드랑이를 확인했다. 겨드랑이털 역시 2차 성징과 함께 생겨나는 것이 아니었던가! 의식적으로 겨드랑이를 매끈해야할 부위에 집어넣었던 것 같다.



아 물론, 팔과 다리를 밀게 된 여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데, 옆자리에 앉은 남자애들은 항상 신기하단 듯 나의 긴 털을 만졌다. 선풍기 바람에 털이 날리는데, 여자애가 쯧쯧 징그러우니 제발 밀고 와달라는 부탁까지 들었다. 미친놈이 분명하지만, 그때 난 아마 많이 부끄러웠던 것만 같다. 아 지금이라면 진짜 반쯤 죽여버릴 수 있는데...

그나마 자존심이 있었던 나는 그 친구와 짝이 끝난 다음 털을 밀어버렸다. 그리고 팔 역시도 매끈해야할 리스트에 오르게 됐다.


다리털 역시 비슷한 경위로 밀게 됐다. 살색 스타킹을 신고 등교하던 봄? 아니 가을쯤으로 기억한다. 그때, 어떤 남자애가 나에게 말했다.

“으, 왜 다리털 안 밈? 솔직히 다리털이 삐져나와서 존나 징그러움.”

물론 아주 큰 소리로. 털에 대해 말할 땐,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털에 대해 말할 땐 다들 절대 조용함이나 프라이빗하게 하지 않는다. 나는 남의 다리를 보지 말라고 하고선 그날 바로 다리털을 밀어버렸다. 참고로 그 남자애가 다음날 나를 툭툭 치고선 다리를 가리키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은 일이지만, 그땐 조용히 다리도 매끈 리스트에 올렸다.      



아 물론! 그런 털을 남자들만 지적했던 것은 아니다. 왜 손가락의 털을 밀지 않냐고 묻던 친구가 있었는데 심지어 그 친구는 손가락의 털을 뽑았다. 인중의 털을 지적하던 친구도 여자아이였다. 그리고 주로 눈썹을 지적하는 쪽은 여자다! 게다가 나도 나의 언니와 친한 친구의 눈썹을 종종 칼로 밀어준다.      



우리 몸의 털은 모두 소중하지 않은가!라고 외치고 싶으나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중요한 털은 눈썹과 속눈썹 그리고 머리털 정도인 것 같다. 그래도 그렇게 무례하게 남의 털을 지적하는 건 절대 옳지 않은 일이다. 큰 소리로 놀려대면 얼굴이 빨개진 채로 그저 교실 밖을 나가는 게 고작 내가 가진 옵션이었던 걸 생각하면 분통이 터져서 서른이 된 지금도 기억하고 있겠지. 아, 지금이라면 빨간머리 앤이 석고판으로 길버트를 내려치는 것보다 세게 후렸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결과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 그리고 인중의 털은 매끈 리스트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굳이? 한국인은 유전학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그렇게 시력이 좋은 민족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매번 털을 관리하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번거롭다. 죽기 직전까지 오 그렇게 많은 리스트를 관리할 자신이 없기도 하고 말이다.     



여성에게도 털털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만약 털털한 여자가 싫다면 제발 속으로 속으로 생각하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아니, 여자가 다리에 털이 있으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튼 그때의 기억이 나에겐 너무도 큰 트라우마로 남아 여름이 되면 질레트 면도기를 꺼내 털을 밀어낸다. 까끌까끌하게 털이 자라면 뭔가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아니 그러면 안될 일은 없지만 나는 또 매끈 리스트를 관리한다.     


 

그래도 제발, 브라질리언 왁싱마저 반드시 매끈 영역에 들어가질 않길 바란다. 팔과 다리 그리고 겨드랑이를 관리하기에도 삶의 시간이 너무 촉박할뿐더러, 남은 인생 동안 그런 고통따윈 느끼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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