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포기러의 끝장 다짐기
나에겐 오랜 병이 있다.
끝가지 못하고 중간에 도망치는 병이랄까.
정말 힘들 땐, 나를 소모하지 말고 도망치라는 사람들의 말이 있지만.
나란 인간에게 도망은 이제 그 어떤 이점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번만큼은 정말로 끝까지 가고야 말겠다고.
들어가는 글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엔딩을 궁금해했다. 소설의 발단만 읽고서도 그래서 얘네가 어떻게 되는 거야? 싶은 마음에 엔딩을 먼저 확인했다. 그렇게나 끝이 궁금한 나의 심장과 달리 몸은 그러지 못했다. 거의 없다시피 한 체력과 끈기, 아니 지구력. 이 모든 것을 안고서 나는 기어이 나의 엔딩을 포기했다. 내가 포기한 숱한 기회의 순간들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수준이지만
언젠가 마음을 먹으면 괜찮은 글을 써낼 것이라고 믿었다. 그니까 그 마음이라는 게 도저히 먹어지지 않는 것이다. 왜? 왜? 이유를 찾으며 마음을 찾아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다시금 들어간 블로그에서 해답을 찾았다. 독서 블로거의 왕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고서 열었던 블로그. 블로그는 배달의 민족 불가지역마냥 텅~하고 비어있었다. 텅? 텅? 왜 없지? 하는 의문이 들 무렵, 과거의 내가 생각났다. 그동안 열심히 쓴 리뷰조차 분서갱유하고 도망친 나 자신이. 아니 도망은 치지 분서갱유는 왜 하냐? 비밀글로 수정해두면 되잖아! 어쩌겠는가. 태생이 도망가는 것에 익숙한 인간인 것을.
그리고 익숙한 블로그가 보였다. 1N 년 전 토익학원에서 만난 제이언니. 그리고 정확히 10년 전에 언니와 만나 블로그 주소를 교환했다. 둘 다 이것저것 쓴 것 없는 블로그였지만. 우리 계속해서 파워블로그가 되어 보자고. 언제나처럼 나는 블로그에 흥을 잃었다. 착실한 제이언니는 블로그를 꾸준히 운영했다! 그리고 언니가 파워블로거가 아니었겠는가! 나는 언니의 블로그를 보며 생각했다. 꾸준함이야 말로 진정한 미덕이라고.
나는 언니에게 십 년 만에 연락을 남겼다. 여전히 착실하고 꾸준한 언니에 대한 부러움을 안고서. 언니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언니의 블로그는 여전히 순항 중이다. 텅 빈 나의 블로그와는 달리.
어린 시절 마지막 페이지까지 풀어본 적 없는 나의 문제집 같이. 내 인생을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만큼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터벅터벅 달려 나갈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내 인생을 반쪽짜리로 만들 수 없지 않은가.
반만 로딩된 프로그램은 구동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완전한 한쪽의 나를 위해. 이번만큼은 끝까지 가도록 할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만큼은 달라지기로 했다. 이 지긋지긋한 나와의 이별을 위해서라도.
쉬어가는 것이 좋다고는 하지만, 나는 왜 쉬어만 가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