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노무 노트 #5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집단은 인력을 재배치하거나 구조조정을 하는 방법 등의 하나로써 그 근로자를 다른 계열회사로 '전적'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컨대, 현대자동차그룹의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하던 직원을 같은 그룹인 현대모비스나 현대건설로 보내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때 그 직원은 회사의 전적명령을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걸까요?
이른바 '전적'이란, 사용자(회사)의 인사권 행사에 따라 근로자가 원 소속 기업과의 근로계약을 종료하면서 다른 기업과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하거나 근로계약상 사용자의 지위가 양도됨으로써 근로자의 소속이 달라지는 경우 등을 의미하는데, 일반적인 인사이동과는 달리 근로계약의 상대방인 사용자가 변경되고 원 소속 기업과의 근로계약이 종료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대법원은 전적의 유효성에 관하여, "전적은 근로자를 고용된 기업으로부터 다른 기업으로 적을 옮겨 다른 기업의 업무에 종사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사용자가 근로자의 동의를 얻지 아니하고 다른 회사로 전적시키는 관행이 있어서 그 관행이 근로계약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야 효력이 새기는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1996. 4. 26. 선고 95누1792 판결).
여기서 '근로자의 동의'에는 사전적, 묵시적, 포괄적 동의까지 포함되지만, 반드시 진정한 의사에 따른 것이어야 하고 적어도 동의의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하므로, 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 '전적명령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포괄적인 근거규정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전적명령에 대한 근로자의 동의를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대법원 1993. 1. 16. 선고 92누8200 판결).
대법원은 위와 같은 '관행'이 인정되기 위한 요건에 대하여도 부연 설명하고 있는데, 관행이 기업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규범적인 사실로서 명확히 승인되거나 기업의 구성원이 일반적으로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아니한 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기업 내에서 사실상의 제도로 확립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여서, 이를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1993. 1. 26. 선고 92다11695 판결). 다만 아직까지 대법원이 실제로 확립된 관행을 이유로 근로자의 동의 없는 전적의 유효성을 직접 인정한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적과 관련된 국내의 다양한 대법원 판례와 하급심 판결례 등을 살펴보면, 전적은 근로조건의 중대한 변경에 해당하는 만큼 '근로자의 동의'의 존부는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심사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형식적으로 전적동의서를 작성하였더라도 제반 사정에 비추어 그러한 동의서가 근로자의 진정한 의사에 따른 것이 아니거나 회사의 일방적인 경영방침 내지 강요 등에 의한 것이라면 이는 무효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근로자가 전적명령에 따라 퇴직절차를 밟고 새로운 회사에서 비교적 장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근무를 하였던 사안에서 이를 전적에 대한 묵시적 동의를 전제로 한 행동으로 평가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본인이 회사의 일방적인 전적명령에 동의하지 않고 다른 계열회사로 소속을 옮기고 싶지도 않다면, 일단 전적에 대해 동의의 의사표시를 하거나 별다른 이의 없이 전적동의서, 사직서, 새로운 근로계약서 등을 작성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며, 함부로 전적대상자에게 주어지는 위로금 등을 지급받아서도 아니됩니다. 나아가 가급적 전적명령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동의를 거부하는 행위를 해두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전적명령 전후의 여러 사정과 사직서 제출 경위 등의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묵시적) 동의 여부가 판단될 수 있는 만큼 근로자에게 유리한 사정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예컨대 전직명령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이메일 내역, 회사가 전적동의서 제출을 독촉하거나 전적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의 불이익에 대해 고지한 내역 등등)를 미리 갖추어 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일방적인 전적명령을 강행한다면 근로자로서는 어떠한 대항수단이 있을까요?
우선 (1) 전적은 사용자의 인사명령 가운데 하나이고 원 소속 기업과의 근로계약 종료를 내포하고 있는만큼 근로자는 전적명령이 있었던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노동위원회에 부당전적 내지 부당해고를 주장하면서 구제를 신청하는 방안을 가장 먼저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2) 나아가 위 구제 신청과 별도로, 근로자는 법원에 전적무효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며, (3) 이를 전제로 하는 이른바 노동가처분의 제기도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수행하거나 혹은 별도로 진행할 수 있는 복수의 구제수단이 있고, 각각의 수단별로 판정과 판결의 결과가 서로 다를 수 있으며,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나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 등 여러 단계에 걸쳐 그 결과에 대해 재차 불복을 할수도 있는 만큼(이는 전체 쟁송이 매우 장기간에 걸쳐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첫 단추부터 전략적이면서도 일관성 있는 어프로치가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