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에서, 욕망에 대한 생각
2025년은 95년생의 들삼재라 한다. 그런걸 신뢰하진 않지만, 다사다난한 1분기를 보내며 우스갯소리로 운명에서 원인을 찾아본다.
최근 덮어두고 고민하지 않았던 이슈는 '흘러가는 삶' 이다. 올해의 1/4은 내 시간을 가질 에너지가 전혀 남지 않도록 모든걸 소진해왔다. 일터에서 비효율을 감수하고 몰입했고, 퇴근하면 약속 또는 운동의 이지선다, 집에 도착하면 23~24시니 조금 쉬다 자면 수면부족에 또 회사에서부터 시작하게 되는 하루. 이직 시즌의 자기계발 루틴도 깨지고, 거창한 계획 하에 2025년을 살지는 않는다. 강하게 달려나가기엔 상처가 조금 따끔했어서.
아직은 유체로 남겨진 부분이 많은 인간인 것 같다. 세상의 인간들이 주는 수많은 자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문득 반응해버릴 때가 있다. 아 급발진은 아니고, 그냥 꽂혀서 생각을 하다 이렇게 글로 풀어낼 정도의 경험 말이다.
출근 길 우연히 엄청나게 욕망에 충실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의 글을 봤다. 될까 싶으면서도 부럽기도 하고, 천박해보이지만 영리해보여서 내심 응원하는 마음과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졌다.
가끔은 스스로가 세상을 주인공이 아니라 관찰자로만 살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내가 우주의 중심이란건 아니닌데, 그냥 한 명의 플레이어로 즐겨야하는 게임을 영상으로만 보고 회피하는 것 같기도 해서. 실제로 많은 영역에서 나는 그렇게 실천을 간접 경험으로 대체하곤 한다.
20대 초반에 종결지은듯 했던 고민을 30대 초입에 다시금 하는게 웃기지만, 당장 몇 주간은 가져갈 질문인듯 싶다. 내 욕망은 뭘까? 욕망을 직시하는게 좋나?그것도 아니면 욕망을 덮어두고 게으른 동물로 숨쉬어야 하나? 어쩌면 나는 욕망없는 초식동물이나 어쩌다 경쟁적인 환경에 처해 본성을 의심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스타트업 커리어의 명암 중 좋았던 점을 하나 꼽자면, 나라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과감한 실행력을 얻었단 것이다. 그리하여 비교로부터 생겨난 욕망이 아니라면 그대로 따르고픈데, 일단은 내 욕망의 출처를 모르겠어서 주저하게 된다.
조급함과 불안함 사이에 어중간히 걸쳐 소비되는 생. 인생도 투자도 선택도 과감하지 못하고 미뤄졌다. 십대부터 비선택과 후회, 죄책감을 반복해온 (그렇다고 마냥 게으르지도 않았다) 나의 이상한 면이자 오랜 숙제다. 이미 늦어서 더 이상 미룰수도 없는 것일텐데, 하고 지금 당장은 생각하며 일단은 회사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평소 대화에서 왜? 라는 말을 자주 하는 나, 요즘은 의식적으로 이유 찾기는 빈도를 줄이려 한다. 친구는 그게 내 애정표현이 아니냐고 하는데 그런건 아니고 그냥 습관이다. 정보수집과 반응이라는 일차원적인 대화의 로직. 듣는 사람 입장에서 짜증날 수도 있을 듯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줄이려 한거다. 무튼 왜라는 물음은 일의 이유를 찾게 해주는데, 문제가 복잡할수록 답하기 정말 어려워진다. 그리고 언어 사용의 어려운 점 중 하나는, 그저 흘러가거나 불완전한 생각이었을지라도 남아서 마치 내가 그런 사람인 것처럼,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어가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의 혼란스런 시기에 당위성을 따지기 전에 욕심의 우선순위부터 결정하고자 한다. 내 욕심의 우선순위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