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의 기쁨과 슬픔

by toddle

영어학원을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서 몇 달을 한심하게 놀았다. 놀았다기보다는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 그러다 이제 안 되겠다 싶어서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희망도 기대도 없었다. 어쨌든 내 앞가림은 해야 하니까 월급 200 이상에 워라밸만 보장되는 회사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 내려놓고 포기해도 워라밸은 포기가 안 됐다. 어설퍼도 내세울 건 외국어 능력뿐이라 해외영업이나 해외무역 분야에 닥치는 대로 원서를 넣었다. 그때는 주제파악이 돼 있어서 대기업은커녕 중견기업도 힘들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중소기업에만 넣었다. 외국어 성적 외에 스펙이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나이도 걸림돌이었다. 당시 서른을 훌쩍 넘긴 나를 신입으로 뽑으려는 회사는 별로 없었다.


그래도 몇 번은 서류를 통과해 면접을 봤다. 어떤 회사는 직원들이 다 남자라면서 청소는 잘하냐고 과일은 잘 깎냐고 물었다. 그때 뭐라고 답했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아쉬워서 잘한다고 했을까. 2차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은 걸 보면 그랬나 보다 싶기도 하다. 2차 면접에는 가지 않았다.


처음 들어간 회사는 이상한 회사였다. 대표는 거창한 꿈을 꾸고 있었지만 그래서 대체 뭘 하자는 건지 알 수 없었고 일 년 넘게 일한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일 년을 채우고 나가야 하나 얼른 도망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미처 도망가기 전에 한 달 만에 잘렸다. 사장이 제대로 일하면 연봉도 올려주고 하겠지만 지금처럼 할 거면 그만두라고 했다. 야근도 하고 더 많은 책임을 지라는 얘기였고, 사장 본인은 기회를 주는데도 모른다며 답답해했지만 나는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리고 또 두 달여를 놀았다. 무기력했던 탓이다. 밖에 나갈 때면 보이는 수많은 건물과 회사들을 보면서 저 많은 곳 중에 왜 자리는 없을까 생각했다. 노동시장에서 하자가 있는 상품이 된 느낌이었다.


그래도 다시 어찌어찌 기운을 끌어모아 또 여기저기 원서를 냈다. 기회가 얼마 없긴 했지만 아주 없지는 않아서 두 군데 면접을 봤다. 두 군데서 거의 동시에 합격통보를 받았는데 규모가 더 큰 회사 대신 규모는 작아도 집이랑 더 가깝고 처음으로 면접비를 줬던 회사로 선택했다.


처음에는 회사에 도무지 적응하지 못했다. 처음 몇 달은 위염에 장염을 달고 살아서 제대로 먹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나는 회사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정말 몇 안 되는 친구들 중에도 회사원이 없었다. 나는 분명 해외무역으로 지원했고 그래서 그쪽 일을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신입 막내다 보니 온갖 일을 도맡아 하게 됐다. 그게 그렇게 짜증이 났다. 서류 정리하고 철하고 샘플 소분하고 포장하고 택배 뜯고 택배 보내고. 등기 보내러 회사와는 거리와 먼 우체국에 다녀오는 심부름도 했다. 물론 커피도 타고 설거지도 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들이었고 막내인 내가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해외무역 지원했는데 해외무역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온갖 잡일만 하고 있는 게 사기당한 거 같았다. '너 뭐 돼?'라고 스스로를 질책하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그냥 평온하게 일을 하다가도 어떤 때는 성질이 났다.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노력도 별로 하지 않고 겉돌았다. 식사 시간이나 회식 때는 영혼 없이 앉아 있었고 입사한 지 한 달 후에 있었던 워크숍은 장염을 핑계로 가지 않았다.


사무실에 앉아 있다 보면 온갖 사람들 눈치가 다 보였다. 누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나 때문인가, 내가 뭘 잘못했나 조마조마했다. 대부분은 아무 일도 아니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는데도 다른 사람들 태도나 기분에 휩쓸렸다. 온갖 것이 다 스트레스였다. 퇴근하면 회사 일은 스위치를 끄라는 데 나는 도무지 스위치가 꺼지지 않았다.


가끔 숨이 막힐 것만 같아서 비상구 계단으로 도피했다. 깜깜한 비상구에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는 게 그렇게 좋았다. 점심을 먹고 혼자 주변을 산책하기도 했다. 그렇게 잠시라도 숨 돌릴 틈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체국 가는 건 오히려 좋기도 했다. 회사 밖으로 나갈 기회니까.


두 번째 회사에서도 머잖아 실직의 위기가 다가왔다. 당시 나는 매일 6시 3분에 퇴근을 했다. 사실 여섯 시 땡 하면 퇴근하고 싶은데 그건 좀 눈치 보여서 나름 삼 분을 기다린 거였다. 이번에도 계속 그럴 거면 그만두라는 소리를 들었다. 일이 많아서 늦게 간 날도 있기는 했고 일이 없어서, 퇴근시간 돼서 퇴근할 뿐인데 왜 그걸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정말로 그만두려고 했다. 그래도 상사가 달래는 데 넘어가서 6시 15분에서 30분 사이에 퇴근하기로 합의를 봤다.


처음에는 열심히 다른 회사를 찾아 지원했다. 얼마 없는 월차를 써서 면접을 보러 다녔다. 몇 달을 그러다 그만두었다. 물론 합격한 데도 없었지만 어디로 옮기든 똑같을 거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로 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회사 자체를 떠나지 않는 한 어디를 가든 똑같을 거였다.


도무지 적응이 안 됐고 적응하려는 노력도 별로 하지 않았는데 몇 달이 지나 회사 사람들하고 친해지고 나니 재미있는 일도 꽤 많았다. 유학과 고시 콤보로 십 년 넘게 사회생활 없이 혼자 고립돼 있던 나는 사람들하고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두려웠다. 직장 내 괴롭힘이 요즘 심하다던데 내가 그 대상이 될 것만 같고. 그런데 다행히 직장 내 괴롭힘은 없었다. 사람들은 오히려 내게 호의적이었다. 회사 사람들도 거래처 사람들도. 원래 낯선 사람에게는 말 한마디 못 건네는 극내향인이었는데 회사 다니면서 다른 사람한테 먼저 말도 걸 수 있게 됐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고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건 나한테 안 맞는 것 같았는데 회사생활을 해보니 그렇지만도 않았다. 물론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긴 하지만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것도 꽤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술도 꽤 잘 마신다는 것도, 술자리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중에는 회식이 나름 즐거워졌다. 내가 철 없이 윗분들 신경 안 쓰고 친한 직원들이랑 왁자지껄 떠들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내버려 둔 걸 보면 그런 점에서는 좋은 회사였던 것 같다. 새벽까지 술도 마시고 나보다 열 살은 어린 직원들이랑 술자리 게임도 하고. 정작 대학생 때는 해보지 못한 걸 회사 와서 해봤다.


회사가 끝나고 동료랑 저녁을 같이 먹기도 하고 역에서 한참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때는 퇴사해도 계속 보자던 동료들은 퇴사 후 한두 번 만나고는 연락이 끊겼다. 그게 좀 씁쓸할 때도 있는데 그래도 그 시절 즐거웠으니 그걸로 된 것 같기도 하다. 세 번째 회사에서 다른 회사 팀장으로 만난 언니와는 아직 연락을 주고받고 있으니 아직은 한 사람은 남았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여럿 했다. 양꼬치도 회식에서 처음 먹어봤고 접대로 비싼 한정식집에 가보기도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탈 일이 없을 것만 같던 비행기도 타게 됐다.


첫 출장은 지옥 같았다. 계속 사장을 보필하면서 통역도 해야 해서 스트레스도 많았고 진이 다 빠졌다. 다시는 출장을 오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이후 출장은 그때만큼 빡세진 않았다. 출장이 마냥 좋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좋은 건 돈을 번다는 거였다. 사고 싶은 것을 사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었다. 부모님께 이거 저거 사드리기도 하고 공연도 많이 보러 다녔다.


그렇게 회사 다니면서 나름 좋은 점이 많았는데도 회사생활이 견디기 어려웠다. 내게는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고 내가 의미를 부여할 있는 일이 필요했다. 회사에서는 그게 안 됐다. 나름 잘해보겠다고 무역영어 시험도 보고 관련 분야 공부도 했지만 동기부여가 안 됐고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어디든 월급만 따박따박 나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일해서 돈 벌고 남는 시간을 즐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잘 안 됐다. 애석하게도 나는 자아실현이나 의미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런 것 따위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없으니 견디기가 힘들었다.


스스로를 많이 탓했다. 힘들 게 하나도 없는데 뭐가 힘드냐고, 왜 힘드냐고, 배부른 소리 한다고 자책했다. 오히려 운이 좋은 편인데, 그걸 알고 있는데도 자꾸 힘들어하는 나를 내가 이해할 수 없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돈을 벌기 시작할 때부터지만 회사 다니면서 매일 피아노 연습을 했다. 회사를 마치고 매일 연습실에 가서 두 시간씩 연습했다. 하지만 즐기지는 못했다. 너무 피곤하고 그냥 쉬고 싶은 데도 강박적으로 피아노를 치러 갔다. 영혼 없이 손가락만 움직일 때가 대부분이었는데도 어쨌든 퇴근 후에는 피아노 앞에 앉아있어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니는 것 말고도 무언가가 필요했다. 내가 무언가 하고 있다는, 회사가 내 생활의 전부가 아니라는 느낌을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게 지나쳐서 강박이 됐고 스트레스 해소는커녕 피로만 쌓여갔다.


시간이 갈수록 회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벗어나서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찾은 게 번역이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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