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관계에 서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평생 그랬다. 인간관계는 내 가장 큰 약점이고 아킬레스건이다.
초등학교 3학년, 열 살 때였다. 그 전 해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고 새 학기가 시작할 때 전학을 갔다. 그리고 그때 처음 따돌림을 당해봤다. 발표란 발표는 다 하겠다고 너무 나대서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선생님이 뭐 물어보면 매번 손을 번쩍 드는 건 물론이고 그 시절엔 지금은 PPT로 할 법한 걸 전지에다 정리해서 하는 발표가 있었는데 그것도 매번 하겠다고 나댔다. 그리고 손에 난 사마귀도 원인이었을 거다. 애들이 사마귀 옮는다고 내 손에 닿는 걸 질색했었으니까. 은근히 따돌리고 같이 놀아주지 않고 리본을 맬 줄 모르는데 운동화 끈을 풀거나 원피스 리본을 풀어버리거나 내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책상과 의자 간격을 딱 붙여 놓거나. 요즘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지만 그때의 내겐 견디기 힘들었다. 학교가기가 너무 싫었다.
일기장에 애들이 괴롭힌다고 썼는데 선생님한테서 돌아온 말은 애들이랑 잘 지내려는 노력은 안하고 불평만 한다는 일갈이었다. 애들이 괴롭혀서 학교에 가기 싫다고 엄마한테 털어놨을 때 엄마는 장문의 편지로 내가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리지 못해 너무 속상하다고 내가 먼저 애들한테 다가가보라고 했다.
그때 처음 느꼈다. 힘들다고 얘기해봐야, 도움을 청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고. 돌아오는 건 더 큰 상처뿐이라고.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아무런 위로도 받을 수 없었다. 오히려 내가 잘못했다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원체 예민한 성격에 그때 있었던 일이 트라우마가 돼서 그 이후로 인간관계라는 게 항상 불안하고 어렵고 두려웠다.
정말 유치하지만 그때 내 주제가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였다. 뭐 유치할 나이긴 했으니까. 나는 안그래도 눈물이 정말 많은데 그때는 눈물날 일이 너무 많아서 몇 번이고 이 구절을 가슴에 새기면서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디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감정을 나도 받아들일 줄 모르고 그저 억눌렀다. 그러면 없는 게 되는 것처럼. 내가 흘리지 못한 눈물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줄도 모르고.
4학년 때까지 이어지던 소소한 괴롭힘은 5학년 때부터는 없어졌지만 소풍날이, 수학여행이 두려웠다. 따돌림을 당하지도 않았고 같은 반 애들하고도 그럭저럭 지냈지만 버스에서 같이 앉고 같이 돌아다닐 만한 친구가 없어서. 학년이 끝나갈 쯤엔 선생님들이 선심쓰듯 앉고 싶은 대로 앉으라고 했는데 그것도 너무 싫었다. 같이 앉을 친구가 없어서. 어떻게든 친구들 사이에 끼어보려 애를 쓰고 그런데도 정말 친하다고 할만한 친구는 생기지 않아 비참했고 외로웠다. 인기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나는 그애들처럼 될 수 없었다. 자신이 찌질하다고 느꼈다. 찌질해서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고 친구도 사귈 수 없을 거라고. 그 이후로 정확히 그게 뭔지도 모르겠는 그 '찌질함'은 내 콤플렉스가 되었다.
어릴 적에 만화를 정말 좋아했다. 대부분의 만화에서는 주인공 곁에 항상 친구들이 있었다. 같이 즐거워하고 힘들 때는 위로해주고 도와주고 늘 함께 해주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만화를 볼수록 나는 더 작아졌다. 현실에서는 내가 원하는 친구를 만들 수 없어서 만화에 나올 법한 상상의 친구를 만들었다. 그 친구에게 무슨 얘기든 털어놓고 어디든 같이 다녔다. 어디서도 위로를 받을 수 없는 내게 위로를 건네주는 하나뿐인 친구였다. 나름의 생존법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라도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다.
상상의 친구를 만들지언정 내가 내 친구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나는 나를 싫어했다. 한편으로는 친구를 갈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같은 애를 친구로 두고 싶지 않았다. 나도 내 친구가 되고 싶지 않으면서 누군가 친구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중학교 때부터는 착한 척을 한 덕분인지 친구가 제법 생겼고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됐다. 그래도 언제 친구들이 떨어져나갈지 모른다는, 언제 무리에서 제외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매달렸다. 먼저 편지를 주고 연락을 하고 잘해주려고 하고. 하지만 그런다고 친구 관계가 유지되는 건 아니었다. 반이 달라지면서, 학교가 달라지면서 중학교 때 친구들은 점점 멀어졌고 그게 서글펐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됐을 땐 내 마음을 지키려고 선을 그었다. 누구는 저기까지, 누구는 여기까지. 안 그런 척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벽을 쌓았다. 누구도 완전히 믿을 수 없었고 누구에게도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을 다 주지는 않아도 친구들을 곁에 두려 애썼다. 가끔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오히려 더 외롭고 공허하다고 느끼면서도. 혼자여서는 안 되니까.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혼자노는 법을 배우고 혼자가 더 편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릴 때도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그게 가능하긴 한 일인가.
나는 어떤지, 친구들과 있는 게 좋은지 혼자 있는 게 더 좋은지 알기도 전에 친구들에게서 배제되고, 그 결핍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서 혼자 있는 건 이상한 거라는, 아주 비참하고 잘못된 거라는 생각이 뿌리깊이 박혔다. 혼자 있는 게 너무 불안했다.
20대, 30대의 암흑기를 지내면서 중고등학교때가 내 인생에서 그나마 행복한 시기였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래도 내가 보통 애들처럼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 나를 괴롭히던 애가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 됐는데 옛날에 우두머리격이었던 그 애는 그때는 그냥 조용하고 평범했다. 내가 더 밝아보였고 내가 더 친구들이랑 잘 지내는 것 같기도 했다. 이제 그 애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았고 오히려 내심 당당했다. 내가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얄팍한 가면을 쓰고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나를 너무 몰랐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건 여전히 불안하고 겁나고 두렵다. 생각보다 그럭저럭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고 사회생활을 나름 잘 해나가기도 했지만 아직도 어릴 적의 그 사소하다면 사소한 트라우마가 남아있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나와 친하지 않다.